[시사뉴스 김성훈 기자] D램 반도체에 이어 메모리 분야에서도 우리 기업이 세계 시장을 선도하게 됐다. 지난 20일 SK하이닉스는 미국 인텔의 낸드 메모리와 저장장치 사업을 10조3104억원에 인수한다고 깜짝 발표했다.
이번 인수가 마무리되면 SK하이닉스는 키옥시아를 제치고 낸드플래시 부문 2위 업체가 된다. SK하이닉스는 글로벌 D램 시장에서는 20%대의 점유율로 삼성전자에 이어 2위지만, 낸드플래시 시장에서는 5위권에 머물러 있었다.
국내 M&A 사상 최대 규모… 세계 2위 도약
SK하이닉스의 이번 인수는 지난 2016년 삼성전자가 하만을 인수했을 때 쓴 80억달러(약 9조원)를 뛰어넘는 국내 M&A(인수합병) 사상 최대 규모다.
이번 인수 대상은 인텔의 SSD 사업 부문과 낸드 단품 및 웨이퍼 비즈니스, 중국 다롄 생산시설을 포함한 낸드 사업 부문 전체다.
옵테인 사업부는 포함되지 않는다. 인텔의 메모리 사업부인 NSG(Non-volatile Memory Solutions Group) 부문 중 낸드 사업의 올해 상반기 매출액은 약 28억달러, 영업이익은 약 6억달러 규모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인수로 낸드플래시 분야에서 기업용 SSD 등 솔루션 경쟁력을 강화해 글로벌 선두권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방침이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낸드플래시 시장은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연평균 13.2%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낸드 기반의 저장장치인 SSD 시장도 꾸준한 성장세가 예상된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SSD 시장은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연평균 18%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 중 기업용(Enterprise) SSD가 연평균 23.9% 성장해 전체 SSD 시장의 확대를 견인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석희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은 이날 CEO 메시지를 통해 “오늘 SK하이닉스는 인텔의 낸드 사업 부문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며 “SK하이닉스의 37년 역사에 기록될 매우 뜻 깊은 날”이라고 밝혔다. 이 사장은 “글로벌 반도체 1위 기업인 인텔은 특히 SSD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향후 인텔의 기술과 생산능력을 접목해 SSD 등 고부가가치 솔루션 경쟁력을 강화한다면 SK하이닉스는 빅데이터 시대를 맞아 급성장하고 있는 낸드 사업에서 D램 못지 않은 지위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SK하이닉스와 인텔의 인수합병 배경에는 인텔이 시장 점유율 1위인 삼성전자로 인해 전망이 밝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태 블룸버그통신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는 20일 ‘인텔은 메모리 게임을 삼성에 맡길 수 있다’(Intel Can Leave Memory Games to Samsung)란 제하의 칼럼을 통해 “인텔이 당장 큰 이익을 기대할 수 없는 메모리 사업 포기를 고려한 것은 현명한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수익을 도모하는 메모리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 1위인 삼성전자를 밀어내는 것이 힘든 만큼, 차라리 인텔이 중앙처리장치(CPU) 칩과 같은 핵심 사업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0년 2분기 매출 기준 업체별 낸드 점유율은 삼성전자(45억4190만달러, 31.4%), 키옥시아(24억8800만달러, 17.2%), WDC(22억3800만달러, 15.5%), SK하이닉스(16억9440만달러, 11.7%), 마이크론(16억6500만달러, 11.5%), 인텔(16억5900만달러, 11.5%), 기타(1억7660만달러, 1.2%) 순이다.
최태원 회장의 승부수… 후발주자에서 글로벌 선두권 기업으로
이번 인수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과감한 베팅으로 해석된다. SK하이닉스는 현재 D램 부문에서는 세계 2위지만, 낸드 부문에서는 후발주자로 뛰어든 까닭에 줄곧 4 ~ 5위에 그쳐왔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인수로 낸드플래시 분야에서 글로벌 선두권 기업으로 도약하며 D램 편중을 벗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올해 2분기 기준 SK하이닉스 전체 매출 중 D램 사업 비중은 73%에 달한다. 낸드 시장에서 선두 업체와의 점유율 격차를 좁히고 수익성을 개선하는 것이 SK하이닉스의 주요 과제로 꼽혀왔다.
재계에선 이번 M&A를 두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12년 SK하이닉스 인수, 2018년 도시바 메모리 지분 인수에 이어 또 한 번 통 큰 ‘승부수’를 던졌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SK그룹은 그동안 SK하이닉스를 비롯해 SK머티리얼즈, SK실트론 등을 인수해 반도체 수직 계열화를 완성하는 효과를 봤다.
여기에 2018년에는 도시바 메모리를 인수했고, 이번에 인텔 낸드 사업까지 인수하며 경쟁력 강화에 속도를 내게 됐다. 이를 뒷받침하듯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도 “안정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D램 사업만큼 낸드 사업이 성장한다면, 기업가치 100조원이라는 목표 달성은 반드시 앞당겨질 것”이라며 “D램과 낸드라는 든든한 두 날개를 활짝 펴고 4차 산업혁명의 중심으로 함께 비상해 나가자”고 말했다.
한편 업계에서는, SK 하이닉스의 인텔 낸드 메모리 사업부 인수에 대해선 긍정적인 판단을 하면서도 인수가액과 재무부담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시너지 상승이란 기대와 대형 딜에 따른 재무적 부담의 우려가 공존하는 모습이다.
SK하이닉스의 현금성자산은 단기금융상품과 단기투자자산을 포함해 총 5조3000억원 수준으로, 최영산 이베스트증권 연구원은 “차입과 향후 캐시플로로 대응이 가능한 상황에서, 시장이 우려하는 유상증자 등의 움직임은 현재까지는 제한적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최도연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팹 건설 비용과 장비 투입비용을 감안하면 10조3000억원은 적정한 금액으로 판단된다”라며 “대규모 금액이 일시 지출된다는 측면에서 리스크가 존재하기는 하나, 인텔의 SSD 솔루션을 활용해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번 딜에 대한 리스크는 대규모 금액 일시 지출”이라며 “NAND 업황 턴어라운드가 디램(DRAM) 대비 다소 지연되고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는 일부 우려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이는 현금 자산 3조9000억원, 키옥시아에 투자한 4조원, 내년 기업가치 / 상각전이익(EBITDA) 등으로 충분히 조달 가능한 금액”이라며 “호황이 아닌 불황에 경쟁사를 인수한 것은 묘수”라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