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사회 한국, 새로운 패러다임 필요”
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
김정현 상임집행위원장 인터뷰
한국에서
문화는 ‘말로는 존중하되 실제로는 박대하는 것’이다. 문화적 사안들은 ‘배부른 고민’으로 치부돼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고, 중고등학교의
예술 교육은 형식적인 시간 채우기로 근근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 언론의 문화면 또한 ‘구색 맞추기’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이런 풍토를 고치기 위해 많은 노력들이 있었지만, 문화적 개혁 움직임은 산더미 같은 과제에 비하면 여전히 미풍에 불과하다. 시민의 ‘문화주권’을
찾고 ‘문화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 ‘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이하 문화연대)의 김정현 상임집행위원장을 만나, 문화적 개혁이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시민이 문화의 주인이 되기 위한 방법과 대안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문화 발전을 위해 가장 시급히 개혁돼야 할 부분이 무엇이라고 보나.
문화의 주체를 구태여 생산과 소비로 나눈다면, 생산은 문화예술 종사자, 소비는 시민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생산자의 입장에서 보면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상황이다. 하루빨리 고쳐야 한다.
다음으로 제도나 법을 소비자의 문화적 권리를 도울 수 있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 현재의 형식적인 제도로 시민의 문화적 삶의 질을 높이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순수예술을 육성할 수 있는 방안이나 대안을 제시한다면.
예술이 전체적으로 위기다. 이런 상황은 순수예술의 위축에서 왔다. 기초학문과 같은 순수예술의 위기는 곧 예술 자체의 위기를 뜻한다. 이렇게
되기까지 예술인들이 스스로 자초한 바가 크다.
예술인들은 그동안 국가의 문화정책, 예술 지원정책에 대해 간단히 줄여 말하자면 무식했다. 예술의 사회적 맥락을 등한시 해왔다. 그 결과
부익부빈익빈이 아니라 절대 빈익빈 쪽으로 가고 있다.
미국은 1965년에 이미 연방예술기금(NEA;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을 창설했다. 이에 반해, 우리의
공공 프로젝트와 예술가 지원정책은 한참은 뒤떨어져 있다. 문예진흥원의 예술지원정책은 재정립·재편 돼야 한다. 개인이나 예술 단체에게 분배하는
현재의 형식은 예술가에게나 예술의 발전에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된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돼야 할 시점이다.
“예체교과, 변두리에서 낭떠러지로 밀고 있다”
현재의 문화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문화관광부가 국가문화정책을 수행하는 최고기관인데 지금까지 관제적 발상에 치우쳐 제대로 된 정책이 없었다. 시민의 문화권을 확보하고 창조적
생산활동이 보장될 수 있도록 큰 틀을 새로 짜야 한다.
김대중 정부에서 정부재정의 1%가 넘는 문화 예산이 확보됐다. 이제는 어떻게 분배해서 가치 있게 쓰느냐를 고민할 때다.
문화연대는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보여왔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예체교과 내신제외에 대한 입장은?
문화연대는 작년부터 문화교육위원회를 발족해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각 교과별로 토론회·세미나를 열고 문화교육총서 자료집을 냈다. 이번 교육부의
예체교과목 내신 제외 방침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동안 예체교과목의 입지는 점차 줄어드는 양상을 보였다. 배정 시간도 7차 교육과정 개편으로 현재 음악, 미술의 경우 주당 1시간밖에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예체교과 내신제외 정책이 실행된다면 변두리 과목으로 설움 받던 예체교과목은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질 것이 자명하다.
사교육비 절감 대책으로 예체교과목을 내신에서 제외한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사교육비는 국영수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지, 예체교과목
때문이 아니다. 그런 논리라면, 사교육비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국영수 교과목을 내신에서 빼야 한다.
문화교육은 전인교육을 위한 필수적인 것이다. 입시 경쟁이 치열한 교육 환경에서 예체교과목을 지금보다 더 축소한다는 것은 문화적 권리를 성장단계에서
아예 없애겠다는 처사다. 문화부도 나서야 한다.
주5일 근무제의 정착이 문화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나.
주5일 근무에 대한 경제적 손실을 우려하는데, 문화적 소득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생각을 해보라. 하루를 쉬는 사람은
집에서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틀을 쉬게 되면 밖으로 나가게 돼 있다. 문화적 창조에 가까운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 발생하는 부가가치는 엄청나다.
최근 미국 상공회의소가 ‘스크린쿼터 문제 해결’을 주장하면서 스크린쿼터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한국영화가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췄다며 스크린쿼터
철폐 축소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에 대한 견해는?
현재 한국영화가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영화인들조차 불안해하는 상황이다. 순수예술의 기초 위에 영화산업이 단단하게 성장하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의 인기는 거품일 가능성이 많다.
스크린쿼터는 한국영화산업에 엄청난 기여를 했을 뿐 아니라, 문화종다양성을 지켜낸 대표적 사례로 세계적인 모범이 되고 있다. 스크린쿼터가
없으면 헐리우드 영화가 판을 칠 것이 뻔하다. 아직은 시기가 아니다.
“아직 멀었다. 하지만 희망은 보인다”
시민운동의 한계를 느낄 때가 있다면.
흔히 ‘시민없는 시민단체’라는 말을 하는데, 문화연대가 대표적인 경우 아닌가 한다. 회원이 현재 1,500명이 넘어선 것으로 아는데 회비를
내는 회원은 1/5밖에 안 된다. 재정자립도가 아직 많이 낮다. 시민이 내는 회비에 의해 움직일 때, 살아있는 시민단체가 된다. 문화연대는
아직 그 부분에서 미흡하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문화적 환경의 간단한 윤곽을 제시한다면.
문화의 다양성·차이들이 공존하면서 서로 인정받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현재 너무 획일적이다. 문화적 가치가 실현되는 사회가 ‘문화사회’라면
지금 우리사회는 ‘위험사회’다.
‘문화사회’로의 진입 전망은?
쉽지 않다. 아직 멀었다. 하지만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다. 나는 낙관주의자에 속한다. 지난 월드컵 때 광장을 가득 채운 젊은이들을 보고
희망을 느꼈다. 젊은층에서는 감성혁명이 작년에 벌써 일어났다. 그것은 억압에 대한 감성혁명이라는 점에서 유럽의 ‘68혁명’에 비견될 수
있다. 기성 가치관을 뒤엎고, 뭔가 바꿔보려는 의지가 싹트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