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적 오컬트에서 역겨운 괴물로
어색한 장르 혼성, 스티븐 킹과 헐리우드 흥행 공식의 부조화 '드림캐쳐'
스티븐 킹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에는
일정한 ‘색’이 있다. 이를테면 평온한 마을이 등장하고, 유년시절의 기억과 상처 혹은 우정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며, 선과 악으로 양분되는
선명한 캐릭터들은 보상이나 응징의 결론에 이른다. 특히 호러물의 초자연적이고 기이한 분위기는 ‘스티븐 킹적’이라고 명명할 만한 특징적 구석이
있다.
그의 작품을 영화화 한 대표작 ‘캐리’ ‘샤이닝’ ‘미저리’ ‘쇼생크 탈출’ ‘스탠 바이 미’ ‘돌로레스 크레이본’ ‘그린 마일’ 등에는
이러한 공식들이 크건 작건 존재하며, 스티븐 킹의 팬들은 그것을 즐긴다. 그런 의미에서 ‘드림캐쳐’는 그의 팬에게 일차적으로 반가운 영화다.
성장영화에서부터, SF, 초능력, 외계인, 괴물 등의 장르가 뒤범벅된 이 작품은 ‘일단’ 스티븐 킹 특유의 공식이 복합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 공식들은 진행될수록 산만해지고 헐리우드 흥행 공식과 조잡하게 뒤섞이면서 처참한 양상으로 변질된다.
드라마와 캐릭터, 시각효과에 파묻히다
영화는 ‘스탠 바이 미’를 연상시키는 4명의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메인 주의 작은 마을에 사는 평범한 꼬마 존시(데미안
루이스), 헨리(토머스 제인), 피트(티머시 올리펀트), 비버(제이슨 리)는 우연히 더디츠라는 저능아를 불량배의 위협에서 구해주면서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된다. 비범한 능력의 공유는 4인조를 끈끈한 관계로 묶어주지만, 성인이 된 그들에게 남과 다른 능력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여기까지 영화는 휴먼드라마에 오컬트가 뒤섞인 흥미로운 분위기로 전개된다. 하지만, 매년 떠나는 숲 속 사냥여행에서 4인조가 기괴한 이방인을
만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 한다. 인간의 몸을 숙주로 삼아 번식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외계인이 나타나고, 존시의 신체를 강탈한 외계인과 아귀가
안 맞는 혐오스러운 괴물이 피범벅을 만드는 상황은 진부하다. 하지만, 결정적 문제는 단지 진부한 소재가 아니다.
‘쇼생크 탈출’도 모티브는 여러 번 우려먹은 것이었다. 사실, ‘에일리언’ 이후로 숱하게 등장한 몸에 기생하는 외계생물체는 공포를 극대화시키기에
너무도 좋은, 버리기 아까운 매력적인 소재다. 기생외계생물 모티브는 바이러스와 외계인, 미지의 땅에 대한 인류의 공포, 타아가 자아에 침투하는
공포, 부패하기 쉬운 나약한 육체에 대한 공포 등 인간의 무수한 근원적 공포를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림캐쳐’의 우주생물체는 심리적 공포를 담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뛰어난 시각효과로 태어난 거머리 같이 끈적한 몸에 무수한
이빨을 가진 괴물은 오직 그 형상이 보기 싫다는 이유로 영화 내내 긴장하게 만들만큼 압도적인 비주얼을 자랑한다. ‘보디히트’로 유명한 로렌스
캐스단 감독은 캐릭터와 탄탄한 구성 대신 시각적 현란함을 선택하는 실책을 범했다. 인간 심리의 통찰이라는 모태 없이 탄생한 괴물의 두 눈뜨고
보기 힘든 끔찍한 형체는 공포스럽기보다 짜증스럽다.
버려지긴 아까운 독특한 감각들
평생 외계인과 싸워온 커티스 대령(모건 프리만)은 평면적 캐릭터로 카리스마와 거리가 먼 개성 없는 역할을 맡았다. 훌륭한 배우를 기용하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이다. 배우가 아까운 경우는 데미안 루이스도 마찬가지. 엑센트와 표정을 바꿔가며 외계인과 존시의 1인 2역을 훌륭히
소화했지만 영화의 허술함으로 빛을 발하지 못했다.
흥행 공식에 따른 듯한 커티스 대령과 헨리와의 갈등은 전혀 납득이 안 되고, 더디츠가 외계인과 맞서면서 신격화되는 장면은 무성의하고 엉뚱하다.
장르는 충돌하면서 어정쩡하게 뒤섞이고 스토리는 설득력이 없으며 캐릭터는 낭비된다. 안타까운 것은 이 엉성함 속에서도 독특한 B급 분위기와
창의적 아이디어는 살아있다는 점이다.
외계인과 존시의 사투는 특히 인상적이다. 외계인에게 몸을 점령당한 존시는 ‘기억의 창고’로 도망가 파일들을 뒤지며 외계인에 맞선다. 흔히
말하는 ‘기억의 창고’를 실제 공간으로 묘사한 것이다. ‘두 명의 존시’가 서로 대화하고 대상화 시켜 지켜보는 설정 또한 재치 있고 신선하다.
그나마 재앙에 가까운 산만함과 지루함에서 영화를 구제해 주는 힘은, 영적 교감으로 서로를 지키는 네 남성의 ‘우정’이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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