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린다”
삼보일배 서울 오던 날
올 3월28일 전북 부안의 해창 갯벌을
떠난 문규현 신부(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 수경 스님(불교환경연대 대표), 이희운 목사(기독생명연대), 김경일 교무(새만금 생명 살리는
원불교사람들 대표) 네 분의 삼보일보 고행이 지난달 31일 시청 앞 ‘새만금 사업중단 결정 촉구 시민대회’를 마지막으로 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해창 갯벌에서 서울까지 760리 길을 ‘세 걸음에 한 차례’씩 땅바닥에 엎드려 절하기를 65일. 목숨을 내놓은 네 성직자의 고행은 “생명을
경시하는 세상을 만든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깨우침이었다.
네 명의 성인
순례단이 서울에 들어오기로 한 지난달 23일, 오전 9시 30분에 과천 관문사거리를 출발한 순례단은 서울의 경계인 남태령을 넘고 있었다.
안개인지 공해인지 구분하기 힘든 희뿌연 연기가 대지를 감싸고 있었으며, 오전부터 후덥지근한 날씨가 순례단의 발길을 더욱 무겁게 했다.
이틀 전 탈진해 쓰러졌던 수경 스님은 다시 순례단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링거를 꼽고 휠체어에 앉아 타인의 힘을 빌어야 했지만 수경
스님은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위하여 제가 먼저 목숨을 바칠 각오로 삼보일배 참회의 기도를 시작한다”는 처음의 기도를 온 몸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문규현 신부는 마치 스님을 지키고 선 것처럼 곁에 있었다. 지난 57일간의 고행을 말해주듯 문 신부의 얼굴은 검게 타 있었다. 일어서고
앉기를 반복할 때마다 그의 얼굴엔 굵은 핏줄이 일어서고, 그 핏줄과 주름엔 굵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검게 타고 까칠해 있지만 그의 얼굴에서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이 떠올려지는 것은 문 신부의 따스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문 신부는 새만금 갯벌에서 십여 년이 넘게 벌어지고 있는 저 소리 없는 총성과 때죽음, 그리고 제발 전쟁을 중단해달라는 이라크 양민들의
피어린 호소를 함께 가슴에 품고 이 길을 시작했다고 한다. 삼보일배 시작에 앞서 그는 “생명과 죽음엔 중립이 있을 수 없다”며 “삼보일배의
여정을 끝까지 갈 것이며 기어서라도 가겠다”고 다짐했다.
문 신부 뒤엔 김경일 교무가 뒤따르고 있었다. 몸이 왜소한 다른 세 명의 성직자와 달리 김 교무는 가장 튼튼해 보였다.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두 팔을 쭉 뻗어 절하는 그의 삼보일배는 가장 힘차고 컸다. 또 붉게 상기한 얼굴을 따라 흐르는 땀방울도 가장 영롱했다.
수경 스님 뒤편으로 십자가를 들고 선 이희운 목사는 길게 기른 수염 때문이었을까, 십자가만 들지 않았다면 도인이라고 느낄 만큼 고요한 모습이었다.
이 목사는 두 손으로 십자가를 굳게 잡은 채로 경건하게 삼보일배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들은 5월 초부터 묵언(默言) 고행을 함께 하고 있다. 여기저기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말을 나눌 수 없고, 순례의 본연의 취지가
손상될까하는 우려 때문이다. 이 목사는 십자가에 새겨놓은 글귀로 자신의 말을 대신했다.
“창조의 하나님, 부활의 예수님, 능력의 성령님, 새만금의 생명을 구원하소서”
생명의 행렬
오전 10시 30분께 순례단이 드디어 남태령 정상에 다다랐다. 행렬의 맨 앞에서 행진을 진행시키던 녹색연합 박인영 간사가 “해창 갯벌에서
떼죽음을 당할 뭍 생명들을 살리기 위해 성직자들이 목숨을 걸고 삼보일배를 시작한지 57일 만에 서울에 들왔습니다”고 외쳤다.
순간 수경 스님과 문 신부는 서로를 얼싸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회한과 기쁨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뒤따르던 행렬도 환한 웃음으로 서로를
축하했다. 행렬로 인한 교통정체로 불편을 겼었을 운전자들조차 “힘내세요” “고생이 많습니다”라고 외치며 이들을 응원했다.
네 명의 성직자 뒤로 100여명이 삼보일배에 동참하고 있었으며, 170여명은 행진으로 순례를 뒤따랐다. 57일 만에 서울에 들어오는 날이기에
그 의미가 깊어, 환경연합, 녹색연합 등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대거 동참했고, 일반인의 참여가 허용됐기 때문이다.
특히 오전부터 삼보일배에 동참한 가수 정태춘 씨는 ‘갯벌의 노래’를 직접 만들어 점심식사 막간을 이용, 순례단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구성진
가락에 묻혀 많은 사람들이 흥겹게 불렀지만 노랫말은 ‘인간의 이기’를 꼬집고 있었다.
“생명의 노래가 들려온다/몸을 낮추면 들린다/온갖 미물이 후, 후 숨쉬는/갯벌은 대지의 허파라//생명의 신음 소리 들린다/사람이 갯벌을
죽인다/수천의 물길, 뻘 속의 생명들/사람이 대지를 죽인다, (중략) 생명의 바다가 갯벌을 만들고/갯벌이 대지를 만든다/갯벌이 사람을 살린다”
노래를 만든 정씨는 “자신의 고향도 평택 바닷가로 갯벌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며 “하지만 지금은 아산호로 막혀, 갯벌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고 아쉬워했다.
남태령 인근의 정각사에서 점심을 공양 받고 오후 2시께 순례단의 고행은 다시 시작됐다. 한 낮에 작렬하는 태양, 끊는 듯 달궈진 아스팔트,
검게 뿜어져 나오는 차량매연도 삼보일배를 막지는 못했다. 네 명의 성직자는 마치 한 몸처럼 세 걸음에 한 번씩 오체투지로 정연히 나아갔다.
남태령을 지나 사당역에 들어선 순례단이 마주한 것은 회색빛 도시의 소음과 공해였다. 도로를 매운 자동차, 빼곡히 들어선 건물들 그리고 그
공간을 횡행하고 있는 소음과 매연. 순례단의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가 왜 필요한지를 도시가 스스로 반증하고 있었다.
순례단이 오늘 하루 동안 걸어온 길은 과천시 관문사거리에서 낙성대역까지 5.2km. 차로 이동하면 5분, 걸어가도 한 시간 남짓한 거리를
하루 종일에 걸쳐 왔다. 답답하리만치 더딘 걸음으로 순례단이 깨우치려는 것은 “빨리 빨리”에 감춰져 있는 현대인의 탐욕이 아니었을까?
고병현 기자 sama1000@sisa-news.com
갯벌의 노래
작/정태춘
물이 들면 바다요
물이 나면 육지라
수천 수만의 섬세한 실개천
갯벌은 대지의 심장이라
생명의 노래가 들려온다
몸을 낮추면 들린다
온갖 미물이 후, 후 숨쉬는
갯벌은 대지의 허파라
생명의 신음 소리 들린다
사람이 갯벌을 죽인다
수천의 물길, 뻘 속의 생명들
사람이 대지를 죽인다
낮은 바람이 불어온다
바닷새들이 날아온다
얌전한 바다가 갯벌을 만들고
갯벌이 또 대지를 만든다
생명의 바다가 갯벌을 만들고
갯벌이 대지를 만든다
갯벌이 사람을 살린다
① 동생 문규현 신부의 땀을 닦고 있는 문정현 신부의 모습.
반백이 다 되었지만 우애만큼은 아직도 풋풋하다.
② 삼보일배 순례단이 서울에 들어선 후, 시민들의 참여가 끊
이지 않았다.
③ 햇살이 유난히도 강렬했던 5월26일. 몸은 지치고 힘겨
웠지만 그들의 후광은 밝게 빛났다.
④ 휠체어를 의지하던 수경스님이 죽기를 각오하고 다시 일어
서 순례에 동참했던 5월26일.
⑤ 65일 동안의 긴 여정은 끝났지만, 새만금 살리려는 그들의
기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⑥ 당신은 정말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⑦ 삼보일배, 말처럼 쉽지 않았다. 하지만 새만금을 살리겠다
는 의지를 꺾진 못했다.
<사진/ 나경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