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 인간의 합작품
한 세대에 한 명, 현존 옥새각장 민홍규 선생
자연에
파묻혀 살기란 모든 현대인이 꾸는 꿈이지만 사실상 그렇게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풀만 먹고살기엔 이미 입맛이 서구화됐고, 책만 보며
지식을 구하기엔 이미 컴퓨터에 익숙해져버렸다. 장작불은 잠깐의 낭만일 뿐, 실생활에서는 불편함 그 자체이며, 가끔은 도시의 탁한 매연이
그립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이 삶을 너무나 온전히 받아들이고, 오히려 매일매일 어떻게 하면 자연에 더욱 순응하며 살 수 있을까 고민하는
이가 있다. 내부의 끼를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그 끼를 자연에 적절히 조화시키는 기인, 이천시 설성면 장천4리 작은 시골마을에 묻혀 사는
민홍규(49) 선생을 만나보았다.
조각은 기본, 최소 일곱 분야 능력 필요
하얀 찔레꽃이 사방을 둘러싸고, 소나무 세 그루가 입구를 장식한 아담한 황토집. 마당을 가득 메운 풀냄새 사이로 미소지으며 서 있는 민
선생이 눈에 들어왔다. “이 방이 가장 시원한 방”이라며 안내한 그는 “이 곳 물맛은 국내 최고”라면서 냉수 한 컵을 대접한다. 소박한
세간들, 나무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기둥… 그리고 그곳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민 선생의 모습이 너무나 조화로웠다.
그는 매우 평범한 인상을 풍기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아니 반대로 너무나도 특별한 빛깔을 발산하고 있었다. 내재된 끼들이 그의 몸밖으로 스물스물
새어났다. ‘비범’. 그는 어쩌면 평범하지 못하기 때문에 속세를 버리고 이곳 산야에 머무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그가 하는
일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일까? 한 세대에 한 명, 현재 국내 유일, 전수자 미정. 바로 최고의 장인만 할 수 있다는 ‘옥새각장’이다.
옥새 제작은 최소한 일곱 분야의 능력이 요구된다. 조각은 기본이고 서예 회화 전각 합금 주물 도예에 능통해야 한다. 또한 글자의 조합과
그 안에 자연의 이치를 담기 위해서는 문자학과 동양학에도 조예가 깊어야 한다.
“옥새각장의 자격이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다”는 민 선생은 지난 1988년부터 1998년까지 10년간을 “능력을 가늠해 본 시기였다”고
말했다.
결론은 “할 수 있겠다”. 그는 한국청년작가 1회 초대전에서 새로운 서예기법을 선보여 주목받았고, 전각과 서예에 관한 새로운 원리를 제시해
이후 패션이나 캐릭터산업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 문자를 이용한 문화운동이 활성화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또, 독일을 비롯한 해외에서 다수의
초대전을 가졌고, 1996년에는 ‘랍아트’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가장 한국적인 문화란 하늘, 땅, 사람의 통일 문화, 즉 천지인 사상입니다. 한계에 다다른 서양미술이 그 대안으로 동양적 문화를 찾을
때 당당히 내놓을 수 있고, 미리 기반을 마련하고자 이 천지인 사상으로 인류문화의 원리를 해석한 것이 ‘랍아트’입니다. 천지인 사상은 모든
세계문화에도 접목할 수 있는 보편성을 띕니다.”
다양한 모양과 재료의 옥새들. 금으로 주조하기도 하고(左), 옥이나 나무, 청동으로 제작하기도 한다(中). 임금이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인장은 금장이라 한다(右) |
조선조 옥새 전부 복원
자기시험이 끝나자 민 선생은 옥새제작에 몰입했다. 1998년 고종황제 옥새 5과를 그대로 복원해 경기도 박물관에 기증했고, 일제가 빼앗아간
조선조 옥새 73개를 당시 설계도에 근거하여 복원중에 있다. 1∼2년 후면 모든 복원이 끝날 것이라 한다. 정부 지원금 없이 개인이 ‘국보’를
제작하고 있는 것이다. “나 좋으라고 만드는 것도 아니고 나라에 기증할 보물인데 너무 관심들이 없다”며 아쉬움을 토로한 그는 “하지만 이 일은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라며 자긍심도 내비쳤다.
옥새는 밀랍으로 조각한 뒤 그 위에 진흙을 입혀 거푸집을 만든 후 합금을 부어 주조하는 방법으로 만든다. 애써 힘들게 만든 밀랍은 주조과정에서
녹아 없어진다.
“극도의 긴장감과 스릴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했다해도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기포나 구멍이 나있는 일이 허다하죠. 그럴
땐 ‘하늘이 날 갖고 노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그냥 웃어요.”
10년간의 시험과정이 자신과의 싸움이었다면, 지금 그는 운명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옥새제작의 마지막 과정은 그도 어쩔 수 없는 하늘에 맡겨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일은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덮어야만 할 수 있다”며 이어 그는 “내 손끝을 떠난 후에 느껴지는 기다림의 고통이
즐겁다”고 말했다. 고통조차 순순히 받아들이는 그이기 때문에 옥새전각을 할 수 있는 것일 게다. 매우 엄했다는 석불 정기호(1989년 작고)
선생의 가르침을 16세부터 20년간 받고, 현재 한·중·일 3국에서 유일하게 전통 옥새제작의 맥을 잇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후대에 남을 옥새 제작 소망
민 선생의 실력은 일본에서도 유명하다. 일본 유수의 기업체가 공증까지 붙인 초청장을 보내올 정도로 그의 명성은 대단하다. 일본 최고의 옥새각장도
못 만든다고 시인한 금장을 그는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초청을 받아들일까도 고민했지만 그는 마음을 다잡고 지금의 초야에 머무르고 있다.
대신 자신의 비법을 전수할 제자를 물색하고 있다.
“예술가는 二能之士(이능지사)여야 합니다. 두가지 능력이 필요한데 첫째는 재능이고, 둘째는 지능입니다. 지능이 있어야 자기화된 창작이 가능하지
재능만 있는 사람은 모방만 있을 뿐 더 이상의 발전이 없습니다. 덕이 없고 재주만 있는 사람들만 많은 시대라 아직 제자를 못찼았습니다만 어딘가에
꼭 있을 거라 믿습니다.”
대신 그는 언젠가 꼭 만날 제자를 위해 ‘영화로운 옥새를 만드는 방법’이란 뜻의 ‘영새부’를 기록해뒀다. 닥종이에 한문으로 적은 이 책은 한마디로
‘비법전서’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천천히 기다리다 보면 이루어지겠죠.”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민 선생의 삶을 아우르는 가치관이다. 자연의 변화속도에 맞춰 물 흐르듯 잔잔히 흘러가는 것, 그는 느림의 미학을 몸소
실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과 땅, 인간의 정기를 온몸에 받고 있었다. 옥새전각은 그의 모든 것이 압축돼 탄생하는 ‘분신’이다.
“오늘은 어떻게 하면 어제보다 더 자연스러워질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또 주변의 모든 것을 즐기려고 노력하죠. 그러다보면 생이 끝나기 전 자연의
섭리가 담긴 최고의 옥새를 창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