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됐던 경인운하를 재개할 것으로 보여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경제성이 없고 심각한 환경파괴가 우려된다는 우려로 중단됐던 경인운하를, 정부의 일방적 야욕에 의해 재개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이유 때문이다. 정부의 경인운하 사업 재추진,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의 한반도대운하 발언, 이명박 정부의 최근 ‘몰입’정책인 저탄소 녹색성장, 한반도 대운하 관련 시민단체, ‘한반도 대운하 전도사’ 이재오 전 의원 등의 최근 행보가 마치 잘 짜여진 시나리오처럼 진행되는 것이 의혹에 불을 붙인다. 경인운하 추진은 대운하 건설로 가기 위한 수순이며, 이는 대국민과의 약속을 무시한 처사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이 대통령과 정부가 쇠고기 정국에서 대정부 반발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대운하 포기’로 입장을 선회한 지 3개월 만에 대운하가 또다시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대운하 재개를 위한 시나리오
환율은 1150원을 돌파하고 주가는 1400대로 내려앉고 있는데,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공약인 대운하 건설은 관철시키겠다는 의도로 해석되면서 국민들의 원성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대선 공약으로 내걸렸던 대운하는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6월 특별담화로 이미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최근 정부와 한나라당의 심상찮은 분위기가 대운하 재개를 위한 미리 짜여진 시나리오라는 인상을 풍긴다. 최근 대운하 건설 발언과 움직임을 보이는 인물들이 대통령 측근이라는 것도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촛불정국에서 대국민담화를 통해 대운하 사업 포기 의사를 밝힌 이 대통령과 정부가 전열을 재정비, 정국 주도권을 잡자 다시 대운하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는 논리다.
첫 총대는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맸다. 지난 7월 경질설이 돌때 몸을 사리며 ‘노코멘트’로 일관했던 정 장관은 최근 한반도 대운하 사업과 관련해 연일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2일 정 장관은 “(대운하 사업은) 취소된 게 아니라 ‘중단’된 것”, “요건이 조성되고 국민이 필요하다고 하면 다시 할 수도 있다”는 잇단 폭탄 발언으로 정국을 들썩이게 했다.
이날, 국토해양부는 준비했던 것처럼, 중단됐던 경인운하 사업 추진을 처음 공식화했다. 국토부는 현재 사업계획 용역결과를 토대로 경제성과 재무안정성 등을 면밀히 검토해 기본계획 변경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검증과 관계기관 협의 등을 거쳐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경인운하는 대운하의 본류라는 점에서 그간 경부·충청운하의 전 단계 사업으로 인식돼 왔다. 특히 경인운하는 한반도 대운하와 연결되는 마지막 구간이라 이명박 정부 들어 공사를 재개할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한반도대운하 중단을 선언하면서 경인운하도 물 밑 아래 가라앉았다. 그런 경인운하가 수면위로 떠오른 것이다.
이 대통령 ‘저탄소 녹색성장’ 발언 이후
이튿날 정 장관은 한국시장경제포럼 초청 강연에서 “하천의 효율적인 이용 측면에서 대운하 진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한반도 대운하를 긍정적으로 재검토 하자는 관점을 분명히 했다. 논란이 점화되자, 정 장관은 국회에서 “분명히 말하지만 대통령의 특별담화 이후 운하 사업은 중단된 상태”라고 했다. 경인운하 사업이 추진되긴 하지만 한반도 대운하의 일환으로 해석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벌써부터 대운하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군불 지피기’란 관측이 잇따른다. 항간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이 일정 부분 반영된 것’이란 얘기가 오가고 있다. ‘제2의 취임식’이라 불리는 8.15경축사에서 대대적으로 발표한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 역시 한반도대운하의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때문에 정 장관의 폭탄발언이 잘 짜여진 시나리오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설’이라고 하기엔 절묘하게 떨어지는 부분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정 장관의 발언에 힘을 실어주듯 ‘대운하 전도사’ 이재오 전 의원은 지난 9월2일 워싱턴 특파원들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파나마 운하가 파나마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고 말해 대운하 건설의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피력했다. 이에 앞서 지난 9월1일에는 한나라당 친李 초선의원 ‘MB정책 복원’ 모임에서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공론화 추진문제에 대한 얘기가 오갔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여기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당시 한반도대운하 TF팀장을 역임했던 장석효 한반도대운하연구회 대표도 “대운하는 계속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장 대표는 최근 언론을 통해 4대 강 정비사업과 경인운하는 계획대로 추진하고, 운하를 서로 연결하는 개념의 한반도대운하만 ‘국민이 찬성할 때까지’ 미뤄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관성 없는 정책… ‘대운하 안하겠다더니’
한나라당 소속의 광역단체장들도 대운하 건설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태호 경남지사와 김범일 대구시장 등 영남권 광역단체장은 “한반도대운하와 관계없이 낙동강 운하(정비)는 추진해야 할 과제”라고 했으며, 안상수 인천시장도 “경인운하는 반드시 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청와대 역시 한반도대운하연구회와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함께 정리한 대운하 계획서를 이미 지난 4월에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하반기 대운하사업이 본격 추진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토목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비판하고 나서 대운하는 다시 국민적 논란거리로 부각되고 있다.
정치권 밖에서는 대운하 지지세력이 결집하고 있다. 지난 4월 설립된 한반도대운하재단은 인터넷 신문과 방송을 통해 본격적인 대운하 홍보에 나섰다. 재단의 김주성 이사장은 지난 대선에서 한반도대운하특별위원회 서울 본부장을 지냈다. 한반도대운하연구회, 친환경 물길잇기 전국연대 등의 단체들도 움직이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이 대통령이 지난 광복절 축사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을 선포한 후 여권이 일제히 대운하 불씨 살리기에 나섰다는 해석을 낳고 있다. 대운하의 친환경성을 효과적으로 홍보하고, 재추진되는 경인운하의 성공사례를 앞세워 부정적 이미지를 해소하고 여론의 반전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대운하 건설을 다시 꺼내든 것은 건설경기 활성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이 대통령은 재건축, 재개발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까지 들고 나왔다.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통한 경기 회복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국회 개원에 즈음해 공기업 선진화 방안과 부동산 규제 완화, 세제 개편 등 경기부양책을 연이어 발표하며 개혁 드라이브를 내건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환경단체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치수사업이 사실상 대운하의 사전 작업”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지난 9월3일 논평을 통해 “정종환 장관의 대운하에 대한 이번 발언도 부적절하다. 대운하는 차분히 논의할 시간이 없어 국민이 반대한 것이 아니라 사업 자체가 타당성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이명박 정부가 경인운하와 대운하를 다시 추진해야 할 명분은 조금도 없다”고 정부를 강력히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