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 계획돼 있었다!”
30년 연기인생 9회 말 만루안타 친
‘와일드 카드’의 배우 이도경
억센 경상도 사투리의 배우 이도경씨는 "악역을 맡더라도 관객에게 사랑받는 연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
개봉 전 ‘와일드
카드’는 ‘네 멋대로 해라’의 고복수 양동근과 ‘달마야 놀자’의 청명스님 정진영의 영화였다. 개봉 후 ‘와일드 카드’는 양동근과 정진영,
그리고 섬광처럼 나타난 도상춘 역의 너무나 재밌는
50대 신인배우의 영화가 됐다.
“솔직히 낸들 와 안 기다렸겠습니까? 30년을 기다렸습니다. 9회 말 만루안타를 기다렸죠. 사실 이번 연기는 40%밖에 안 보여줘 매우
불만족스럽습니다. 그래도 쬐끔 과장해서 말하면 대한민국이 난리가 나부렸습니다.”
거만하지 않지만 자신감 넘치는,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지한 느낌의 배우 이도경. 그는 올해 한마디로 ‘대박’났다.
연극 ‘용띠 위에 개띠’ 만4년간 개근
신인영화배우 이도경. 하지만 그는 이미 연극판에서는 내노라하는 중견 중에서도 중견, 베테랑 배우다. 히트작 ‘불 좀 꺼주세요’와 ‘용띠
위에 개띠’만으로도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연극계 스타.
“‘불 좀 꺼주세요’와 ‘용띠 위에 개띠’를 하면서 내 청춘은 지나가부렸죠. ‘용띠’만도 벌써 만4년째하고 있습니다. 1660회가 넘는
동안 15만 관객을 동원하는 경이적인 기록도 세웠고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와일드 카드’는 개봉 후 3일만에 30만이 봤다는 거.”
조금은 허무한 듯 말 하면서도 “그렇다고 연극을 안 한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라며 못박는 그는 천상 연극인이다. 30년이 넘는 연극배우로서의
생활, ‘이랑씨어터’ 극장주자 극단대표, 연극에 ‘목숨 바친’ 1인3역의 생활로 그는 평생을 무대 위에서 살아왔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외도를 한 것이다.
“‘불꺼’와 ‘용띠’를 쓴 이만희 작가가 어느 날 부르더라고요. 그리고 보여준 게 ‘와일드 카드’ 도상춘 역할이었습니다. 보는 순간 턱하니
‘할 수 있겠고만’ 싶었죠.”
하지만 줄곧 연극무대에만 섰던 그가 영화시스템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아 처음엔 실수도 많이 하고 연기도 자연스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연기근성이 어디 가겠는가. 곧 익숙하게 되면서 그는 이도경이 아닌 도상춘이 돼 있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실제 성격과 극중 성격이 같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인간은 누구나 다중적이듯 제 안에도 여러 가지 모습이 내재돼 있지
않겠습니까? 도상춘의 모습도 제 모습 중에 하나지만 늘 그 모습은 아닙니다.”
영화 '와일드 카드'의 도상춘 역 |
“내 연기는 오버가 아닌 과장”
영화에서 보여준 “오홍홍홍” 웃는 방정 연기를 “너무 오버한다”는 일각의 평에 대해 그는 “오버가 아니라 과장이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오버는 쬐끄만 감정을 뻥튀기 하는 거지만 과장은 감정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며 “코믹역할이기 때문에 리얼리티를 살릴 순 없었지만 악역이면서도
연민을 끌어낼 수 있는 복합적 인물을 구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오버연기에는 진실이 느껴지지 않지만 과장된 연기에는 진실이 담겨진다는
것이다.
그의 과장되지만 진실된 연기는 연극 ‘용띠 위에 개띠’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콧구멍 양쪽에 두루마리 휴지를 끼우고 무대를 뛰어다니는 모습이나
유치원생 복장을 하고 아내에게 깜짝쇼를 하는 모습 등 ‘과연 저런 남편이 있을까’하고 이성적으로 공감하긴 어렵지만 한편으론 아내를 향한
절절한 진심을 느끼게 한다.
서로 다른 성격의 52년생 용띠 나용두와 58년생 개띠 지견숙이 내기를 통해 결혼하고 살아가면서 진정한 사랑이 뭔지 깨닫는 내용의 연극
‘용띠’는 이씨 본인의 자전적 이야기다. “미인이고 소리를 빽빽 지르는 것은 비슷하지만서도 극중 아내에 비해 실제 제 아내는 여성스럽고
참합니다”라며 입가에 미소를 띄며 이야기를 꺼내는 그는 그야말로 ‘애처가’다. “12살 띠동갑인 아내가 언제나 저를 믿고 따라줬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이라며 “지랄 맞고 유별난 놈이랑 사는 것도 대단하다”고 자랑했다.
연극 '용띠 위에 개띠'의 나용두 역 |
완벽주의자의 인생 도박
연극 ‘용띠’의 나용두처럼 내기를 죽 먹듯 하지는 않지만 이씨는 누구보다 도박을 즐긴다. 라스베가스에 갔을 때 돈도 따봤다는 그는 잘 하지는
않지만 어떤 도박을 해도 잘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인생의 도박에서도 선점을 따고 있다. 사실 까놓고 말해 그리 호남형이 아님에도 배우로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한 것만 봐도 그는
운대가 트인 사람이다.
또 하나, 2000년 5월26일 모두가 “미쳤다”며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폐관한 소극장을 인수한 것도 그에게 있어서 행운을 믿고 승부수를
띄운 최대 도박이었다.
“연극판은 예나 지금이나 늘 불경기죠. 하지만 제가 하면 될 것 같더라고요.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겠지만 결국엔 해내지 않았습니까?”
특유의 개성있는 소리로 웃어 재끼는 이씨의 표정에 자신감이 아른댔다. 마치 지금까지 보여준 건 빙산의 일각이라며 아직 보여줄 게 많다는
표정이었다.
“도박도 머리싸움이에요. 상대의 패를 읽을 줄 알고, 모든 것을 계획 하에 실행해야죠. 눈치와 감도 남달라야 하고요.”
한마디로 ‘뜬’ 지금, 그는 영화와 CF에서 수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섣불리 행동개시하지 않는다. 모든 검토를 마친 후에
‘이거다’ 싶은 것을 할 계획이다.
“저에게 맞는 배역이라면 비중에 상관없이 할겁니다. 돈도 상관없죠. 작은 배역을 하더라도 얕은 배우가 돼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화면을 꽉
채울 수 있는 연기를 해야죠. 악역을 맡더라도 관객에게 사랑받을 수 있고 정감가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CF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연기를
해서 구매욕을 땡길 수 있고 상품이미지가 소비자 머리에 콱 하고 백힐 수 있는 광고를 할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안 하는게 낫지요.”
모든 것을 세세히 따져보고 계획한 후 행동하는 그는 철저한 완벽주의자다. 그의 오늘은 30년을 준비한 결과다.
“완벽주의자요? 맞습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연기인생에 오점을 남기는 건 정말로싫습니다.”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