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탤런트 안재환의 자살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국민스타 최진실의 갑작스런 자살 소식이 전해져 다시 한 번 큰 충격이 되고 있다. 지난 10월2일 탤런트 최진실이 자신의 집 욕실에서 압박붕대로 목을 매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시대의 아이콘’이라 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던 그녀가 왜 자살을 선택해야 했는지, 연예계는 물론 온 국민은 믿을 수 없는 충격에 사로잡혔다. 경찰은 그녀의 사인을 “악성루머에 시달린 충동 자살”로 추정했다. 우리 사회의 자살문제는 이미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유명인의 자살’에 주목하는 이유는, 자살을 미화하고 그들을 따라하는 모방자살을 불러온다는 데 있다.
베르테르 효과 현실화
탤런트 안재환에 이어, 국민스타인 최진실마저 자살을 하자, 전국 곳곳에서 비슷한 방식의 자살사건이 일어나 ‘베르테르 효과’가 현실화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베르테르 효과란 독일의 괴테가 출간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극중 주인공인 베르테르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자살하자, 그를 동경하는 젊은이들의 자살이 실제로 급증했다는 데서 유래했다. 실제로 유명인이나 자신이 모델로 삼고 있던 사람이 자살할 경우 모방자살이 잇따르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최진실 자살 이후 3일 오전 6시경 강릉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이모(30세)씨가 압박붕대로 목을 매 숨졌고 이날 오전 1시경 전남 해남군 박모(55세 여)씨, 낮 12시 30분경 군산 나운동 한 아파트에선 고모씨(56세) 등이 잇따라 자살했다. 이들 모두 최진실이 자살한 직후 비슷한 방식으로 압박붕대로 목을 매 숨졌다. 이날 트랜스젠더 연예인 장채원(26세)씨도 집에서 목을 매 숨져 연예계 베르테르 효과의 우려가 현실화됐다. 특히 자살자 중엔 자살 전날 지인들에게 “죽은 최진실이 불쌍하다. 함께 따라죽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충동적인 모방자살로 보여진다.
이에 앞서 안재환씨가 자신의 차 안에서 연탄불을 피워 자살을 하자, 일명 ‘연탄불 자살’이 잇따라 발생했다. 9월21일 담양군 한 저수지에서 택시기사 김모(48세)씨가 차 안에서, 지난 10월2일 광주에서 김모(37세)씨가 집 안방에서 연탄불을 피워 놓고 숨진 채 발견됐다. 이같은 자살방법은 평소에는 흔하지 않은 방식으로 일시적 베르테르 효과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경찰 관계자도 “최근 잇단 자살사건은 자살방법으로 볼 때 유명인들의 자살사건에 영향을 받은 모방자살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어찌 보면 안재환씨의 자살 이후, 일시적 베르테르 증후군으로 故 최진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연예계 베르테르 효과는 지난 2005년 2월 여성 톱배우로 자리를 잡아가던 故 이은주의 자살 소식 이후 계속됐다. 지난해 2월에는 가수 유니가 자살한 후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연기자 탤런트 정다빈이 남자친구의 집 욕실에서 목을 매달아 숨졌다. 같은 해 5월에는 재연배우 여재구가 역시 자택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이은주 자살 이후 자살자 2.5배 증가
실제로 유명인이 자살한 이후 모방자살이 잇따르고 있다는 분석이 보고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 임두성(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10월5일 보건복지가족부로부터 제출받은 ‘월별·성별 자살자 수(2003~2007년)’를 분석한 결과 “유명인이 자살한 직후 모방자살이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일례로 영화배우 이은주 자살 사건을 들 수 있다. 지난 2005년 2월 22일 이은주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자살자는 큰 폭으로 증가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발표에 따르면 2월 22일 이전 0.84명에 불과하던 자살자가 이후 2.13명으로 2.5배 늘어났다. 특히 여성 자살자 수가 2월 240명이었으나 다음달엔 462명으로 두 배 가까이 됐다. 자살방식도 이은주가 사망할 당시와 흡사한 모방자살이 많았다. 정몽헌 현대 회장이 목숨을 끊은 2003년 8월의 남성 자살자 수는 855명으로 전월 737명 보다 119명 늘어났다. 지난달 탤런트 안재환씨가 자살한 이후에는 복지부에서 운영하는 ‘보건복지콜센터 129’에 접수된 자살 상담자 수가 439명으로 8월(220명)에 비해 급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005년 11월 성인 15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2%가 유명인의 자살이 일반인의 자살에 영향을 미친다고 대답했다.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 1977년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가 죽은 뒤 그를 추모하는 자살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또 1986년 일본 10대들의 우상이었던 오카다 유키코가 투신자살한 이후 2주 동안 청소년 31명이 동조 자살했다. 1994년 그룹 ‘너바나’의 멤버 커트 코베인이 권총 자살한 뒤에도 모방 자살이 급증했다.
필요이상의 자극적인 보도 자제해야
유명인의 자살은 일반시민에게 충동적인 모방자살을 부추긴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의료 전문의들은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은 일반인들에게 강하고 인상적으로 다가온다”며 “이는 곧 베르테르 효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어떤 심리에서 연예인의 자살을 따라하게 되는 것일까. 윤세창 성대의대 정신과 교수는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공인의 자살 때문에 자살에 대하 친밀감을 가지게 될 위험성이 있고 자살한 공인의 정서적 경험이나 자살동기에 대해 동질성을 쉽게 느껴 모방자살과 같은 일이 일어날 위험성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한 다양한 국가들에서 신문이나 TV를 통한 자살보도가 후속 자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되고 있다, 그 결과 유명인사의 자살보도는 일반인에 대한 자살보도보다 후속 자살을 일으킬 확률이 14.3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사건에서 필요이상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언론 보도의 행태도 문제다. 속보성 위주 보도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사실적 묘사가 주를 이루고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도 추측 및 선정적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자살에 이용된 도구와 구체적인 자살 방법까지 묘사하고 있다. 심지어 한 언론은 자살도구의 구입방법과 가격까지 설명한 기사가 떠서 네티즌들의 집단 항의로 삭제되기도 했다.
한국자살예방협회는 지난해부터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마련해 자살예방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잘 지켜지고 있지 않다. 보건복지가족부 관계자는 “자살은 전염력이 매우 강해 매스미디어와 정보화의 발전으로 누구나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 자살방법의 지나친 묘사와 추측성 보도 그리고 악성 루머 등은 자살을 조장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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