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부동산과 같은가?
미술품 종합소득세를 둘러싼 논쟁, 재경부 과세방침에 미술계 반발
미술품은 부유층의 재산증ㅅ기 수단인가? 국가의 문화재산인가? 미술품 양도세과세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롯데백화점 갤러리(좌) 쁘라도 갤러리 내부 |
내년 1월부터 2,000만원을 넘는 미술품 골동품에 대해 양도세과세를 시행한다. 재정경제부는
미술품 골동품을 팔아 양도차익이 생기면 이듬해 5월 종합소득세 신고 때 다른 소득과 합산해 신고하고, 금액에 따라 9~36%의 소득세를 내야
한다고 밝혔다.
미술품에 대한 양도차익 과세방침은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재경부의 논리에 따라 지난 1990년 입법화됐지만 미술계의 반발로 수차례
시행이 유보돼온 해묵은 과제로 올해 말까지 법 시행이 유예돼 있는 상태다.
이 법은 1988년 88올림픽 시행 이후 일시적인 경기의 고조 성장으로 사치풍조가 만연하고 부동산 투기로 인해 경제기반이 흔들리게 되는 심각한
위기를 바로잡기 위해서 ‘부동산 양도소득세법’을 제정 실시함으로서 그 실효를 얻게 됨과 맞물린다.
정부는 부동산에 몰렸던 악성투기자금이 고가의 서화 골동품 쪽으로 몰린다는 판단 아래 미술품에 대한 양도소득세법을 제정했고, 1995년 개정
소득세법에 따라 일시재산소득으로 분류돼 종합소득세 적용을 받게 됐다.
과세 대상 미술품은 개당 또는 점당 금액이 2,000만원을 넘는 것으로 회화 데생 판화 인쇄 조각 등이 포함된다. 골동품은 제작한지 100년
이상 넘는 것에 한해 과세된다.
“재산
증식, 상속 증여의 수단으로 악용된다”
재경부 관계자는 “13년이나 시행을 유보한 미술품 과세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조세형평차원에서 과세는 당연하다는
논리를 보이고 있다.
경실련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도 같은 주장을 펴고 있다. 고가의 미술품 골동품이 부유층의 재산 증식 또는 상속 증여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만큼 과세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술품 골동품이 상속 수단인 측면도 없지 않다. 미술품을 되팔지 않는 이상 상속세가 유예했기 때문에 미술재산은 세금 한푼 내지 않고
온전히 후손에 대물림할 수 있어 탈세의 방법으로 악용된 사례가 종종 있다. 골동품이나 고가의 미술품을 통한 상속은 세무 당국의 추적 조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미술계는 과세가 곧 ‘미술계 붕괴’라는 극단의 논리로 반발하고 있다. 미술계는 “미술품에 양도소득세를 부여하는 것은 선진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악법”이라며 “10년간 눈엣가시가 돼 온 이 법을 아예 이번 기회에 폐기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술품 투기 대상 아니다”
조선화랑의 권상능 대표는 “미술시장의 입장에서는 미술 애호가들은 가장 중요한 후원자다. 애호가가 미술품을 외면하면 시장기능은 말할 것도 없으며
작가들의 창작 후원 역시 중단된다”며 “미술품을 구매하면 공연히 세무상의 불이익이나 부담을 느끼게 됨으로 수요자들이 미술품 구매를 기피하게
된다”며 과세로 인한 미술시장의 황폐화를 우려했다.
미술품을 투기 대상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미술계는 반발한다. 권 회장은 “미술품의 구매행위는 감상목적과 작가의 창작을 후원하며 문화발전에
기여하는 건전한 투자행위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미술평론가 이경화 씨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미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미술품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투기대상으로 미술을 접하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미술품이 실제로 투기대상으로 이용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설명했다.
이목화랑 임경식 대표는 “소장된 미술품 총 분량이 투기를 일으킬만한 분량이 못된다. 또한 생산이 불가능한 부동산에는 투기가 일어날 수 있고
개인이 필요 이상 부동산을 소유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피해가 가니까 당연히 규제를 해야 한다. 하지만 미술품은 역량있는 작가가 한없이 생산할
수 있는 창작품이며, 어느 누가 많이 가져도 타인에게 전연 피해가 없는 예술품이다. 미술품을 많이 남기면 그것이 곧 문화유산이요 우리나라의
국부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며 폐지를 촉구했다.
“세금
부과하는 만큼 지원책도 내놓아라”
‘소득있는 곳에 세금있다’는 원칙 또한 사실상은 예외가 많다는 것이 미술계의 지적이다. 권 대표는 “수백억원의 시세차익으로 벼락부자를 양성하고
있는 주식시장의 매매소득에 대해서는 비과세 혜택을 주고 있으며, 이자소득에서도 4,000만원 이상의 이자소득에만 금융소득세를 적용시키고
있다. 연예인 모델 운동 선수 등이 수시로 발생하는 수억원대의 소득의 경우에도 일시재산 소득으로 지정되지 않고 있으며, 향락업소 귀금속
의류 가구 등 고가 수입상품에 대해서도 일시소득이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행법이다”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정준모 학예실장은 “세금을 부과하는 만큼의 지원책을 내놓아야 하는거 아니냐”며 양도소득세의 모순을 지적했다. “한국의 미술품은
신문지상에서 천문학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라고 보도되는 작품들마저도 은행의 융자를 위한 담보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한
면만을 확대해석해서 세금을 부과하려는 것은 마땅히 철회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실장은 “양도소득세의 무리한 시행은 경기를 죽이는 것은 물론 세금부분이 작품가에 얹혀져 더욱 고가의 미술품만을 양산하게 될 것이다”고
꼬집는다. 얼 듯 보기에 2,000만원 이상에만 적용되니까 서민층 애호가는 관련 없는 것 같지만 화가들이 대작을 기피하면 작품의 규모와
수준이 하락한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이것은 결국 미술계 전체의 몰락을 가져와 미술품의 가격상승을 부채질하게 되고 더욱 소수 애호가들의
소장품으로 한정된다는 것이다.
과세여건부터 정비해야
이경수 경제전문가는 “미술품 골동품은 공정한 평가금액을 산정하기 어려워 과세가 쉽지 않다. 경매를 활상화시켜 거래투명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며
“유통구조 가격산정 보유명세 등 과세여건부터 정비한 뒤 양도세를 과세하면 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시행되더라도 납세신고 의무화에 따른 음성거래가 예상되며 가격 선정 등의 문제들로 혼란이 예고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김재준 국민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문화예술의 기반이 무너질 때 경제성장에 제동이 걸린다. IMF의 위기는 우리 문화의 위기였다. 아직도
우리는 한국의 이미지를 세계인에게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미술품 과세는 정부의 세수증대 효과는 거의 없고 혼란만 생기며 무엇보다
문화적 입지를 축소시킬 것이다”며 과세 반대 주장에 힘을 실어 주었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