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계산, 한갓
희망이었나
150억 의혹 남긴 채 특검 활동 시한 종료…
한나라당 새 특검 7월 임시국회서 강행 처리 방침
노무현
대통령이 6월23일 대북송금 특검에 대한 기한 연장 요청을 거부하면서 150억원 비자금 의혹 부분은 별도의 특검이나 검찰이 조사토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개혁세력과 민주당 의원들이 특검 연장을 눈에 불을 켜고 반대하는 상황에서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즉각, 내용을 더 보강시켜 새로운 특검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밝힘으로써 정가에 회오리가 일고 있다.
노 대통령, “150억원 수수 건은 특검과 별개”
노무현 대통령은 6월23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특검의 보고를 받고 검토한 결과, 대북송금 의혹사건은 수사가 거의 완결된
상태이며 150억원 수수의혹 사건이 새롭게 불거졌지만, 대북송금과는 법률적, 정치적으로 별개의 사건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노 대통령은 150억원 수수 건에 대해 “검찰에서 수사할지, 새로운 특검에서 수사할지의 판단이 남아있는데 새로운 특검으로 수사하는
문제는 국회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수사를 덮어 버리려고 하는 것이라는 일부의 비난을 의식한 듯, “150억원 수수 건은 국민 앞에 한 점 의혹 없이 철저하게
밝혀야 한다”고 강변했다.
특검 연장 요청이 노 대통령에 의해 공식 거부됨에 따라 70일 동안 활동한 송두환 특별검사팀은 6월25일 공식 해산했다. 특검은 관련자
소환조사와 압수수색, 계좌추적 등을 통해 현대그룹의 5억달러 대북송금에 청와대와 국정원 등이 깊이 개입했음을 밝혀내는 성과를 일궜다. 그러나
수사 막판에 터져 나온 박지원 전 장관의 150억원 수수에 대한 수사를 앞두고 특검을 종료하게 됨으로써 영 찜찜한 표정이었다.
김종훈 특검보는 6월23일, “특검수사가 정치적 고려에 의해 중단된 게 아쉽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6월 18일 박지원 전 장관이 대북 송금과 관련,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
민주 ‘환영’, 한나라 ‘반발’
노 대통령의 특검 연장 반대 소식을 접한 민주당은 이를 크게 환영했다. 문석호 민주당 대변인은 6월23일 논평을 통해 “국민여론을 충분히
고려하고 향후 남북관계의 지속적 발전과 민족의 장래를 위한 노 대통령의 고뇌에 찬 결단을 크게 환영한다”고 밝혔다.
의원총회에서 김옥두, 이윤수 의원 등 동교동계는 “오랫만에 청와대가 당론을 수용했다”며 밝게 웃었다. 특검 수사 기한 연장 반대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섰던 김근태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이미 특검을 통해 밝히고자 했던 사실들은 다 드러났다”며 “대통령의 올바른 결정으로
그간 경색됐던 남북 관계가 다시 진전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크게 흥분했다. 박희태 대표는 특검 연장 거부 사실을 전해 듣고 의원총회에서 “입으로는 대화를 말하고 발로는 국민을 짓밟는
것이 대통령의 정체인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박 대표는 이어 “이제 겨우 진상에 접근해가기 시작한 특검의 문을 닫게 한 것은 반민주적
독단”이라고 비난했다.
이해구 대북송금진상특위원장도 “대통령이 순전히 정치적 고려에 의해 특검 수사 기간 연장을 거부한 것은 사법부에 대한 폭력이며 국민을 우습게
보고 야당과 막가자는 것이자 진실과 실체규명을 덮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노 대통령이 수사 기간 연장을 거부한 것을 “김대중 전 대통령 조사를 피하고 박지원 전 실장이 받은 것으로 알려진 150억+α의
행방을 감추고자 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신당을 고려한 결정
일단 큰 틀에서 볼 때, 노 대통령이 특검 연장을 거부한 것은 남북정상회담의 의미를 폄훼하고, 앞으로의 남북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유뿐일까? 특검 연장 요청을 수용할 경우, 민주당 내분이 심화되고 지지세력이 이탈할 것을 우려한 현실적 선택의 측면도 분명
있다.
이는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의 말에서도 드러난다. 문 수석은 대통령의 특검 연장 거부 발언 직후 기자들에게 “민주당 신주류 등 너무나 많은
정치적 요구가 있었고, 여론의 요구도 적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신주류는 특검법안을 찬성, 결과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옥죔으로써 전통적 지지기반인 호남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이번 특검 연장 요청
거부와 관련, 신주류는 호남에서 전통 지지층 이탈을 막아 신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결국 노 대통령은 자신과 함께 갈
신당을 챙긴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특검연장과 관련 의견이 나뉘었다. '평화통일을 사랑하는 사람들' (좌), '자유시민연대' (우) |
1차보다 더한 2차 특검이 기다린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계산은 단지 희망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한나라당이 새 특검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국회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밝히면서 새 특검의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은 한나라당에게 큰 구실이 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특검 연장 발언 후 즉각, 새 특검법안을 마련해 6월30일이나 7월1일 본회의에서 처리키로 했다. 새 특검법에는
△현대비자금 의혹 △산업은행 대출금 4,000억원 중 송금여부가 밝혀지지 않은 1,700억원의 행방 △5억달러 외 추가 대북송금 의혹 △대북송금의
대가로 정부가 제공한 공적자금 등 현대에 대한 특혜 의혹 △16대 총선 직전 현대상선 비자금 200억원의 정치권 유입 의혹 등이 포함될
예정이라고 한나라당은 밝혔다.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박지원 씨 150억원 비자금 수수 의혹이 포함됨은 물론이다. 한나라당은 수사기간도 기존
특검 기한과 상관없이 최소 120일 이상으로 잡았다. 이러한 내용은 최초의 특검법안 이상이다.
이 특검법안이 통과될 경우, 다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와 남북관계 훼손 등의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민주당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적 우세를 점하고 있는 한나라당에 대응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한나라당은 미리부터 새 특검법 국회 통과를 기정사실화하고 새 특검법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나라종금, 대통령 친인척 땅 투기
의혹 등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키로 결정, 청와대와 민주당을 압박하고 있다.
김동옥 기자 aeiou@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