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특소세 인하 개정안, 정당간 의견 불일치…업계만 ‘골탕’
지난 10일. 계약 연기와 해약사태가 빚어져 개점휴업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
지난 4일, 정부가
승용차 특별소비세 인하 조치에 대한 법안을 추진중이라는 내용이 보도된 후, 소비자와 관련업체들은 두 손 들고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경기침체에
빠져 내수부진에 노사문제 등의 이중고를 겪고 있던 자동차 업계는 매출 신장을 노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왔다며 들떠있었다. 몇번을
망설이며 고민하던 소비자들에게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결정적인 대안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기쁨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특소세 인하 놓고 여·야 팽팽히 맞서
정당간 서로 다른 주장으로 ‘특소세 인하 개정안’은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한 채 난항을 겪고 있다. 최근 정부는 경기부양을 목적으로 승용차
특소세율을 인하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지만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서 인하폭과 특소세 면세 대상을 놓고 여야간 절충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
정부와 민주당은 현행 1,500cc 미만은 7%, 1,500cc~2,000cc 미만은 10%, 2,000cc 이상은 14% 등 3단계에서
2,000cc 이하는 6%, 2,000cc초과는 10% 등 2단계로 하향조정하자는 안을 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2,000cc 초과 차량은
10%, 1,500cc 초과~2,000cc 이하 차량은 5%로 인하하고 1,500cc 이하 소형차의 경우 특소세를 전면 폐지하자고 주장했다.
결국, 가전제품에 대한 특소세 인하는 에어컨을 제외한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TV와 프로젝션 TV만 고려하고, 자동차 특소세 인하는
10%, 5% 인하에 합의했다. 적용시점은 개정안이 재경위에 회부된 지난 7일부터 소급하거나 재경위를 통과하는 시점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하지만 소형차 특소세 면제에 대해서는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세수감소와 한미통상문제를 고려해 소형차 특소세 면제는 불가하다는
게 민주당측의 설명이다.
국내 상황만 고려하면 소형승용차 특소세율 인하폭이 더 커야지만 우리나라가 미국을 대상으로 자동차의 47%를 수출하고 있고 100억 달러
이상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현실을 감안해, 소형차 특소세 폐지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겉으로는 경기진작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대형차에 경쟁력을 갖춘 미국의 통상압력을 의식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한나라당
장광근 의원은 “특소세 인하 목적이 내수 진작을 통한 경기대책이냐 아니면 이런 명분을 내세워 이미 통상 현안 해결에 초점을 둔 것이냐”며
“국내 등록차의 40%를 차지하는 1,500cc 이하의 특소세를 면세하지 않는 것은 미국의 입맛을 맞추기 위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민주당 임종석 의원도 “현 개정안은 소형차를 권장하는 정부의 정책 추진방향과 맞지 않다”며 “과연 1,500cc 미만 자동차를 과세대상에서
제외할 경우 통상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답변을 요구했다.
이는 지난해 말 정부가 미국 자동차업체의 압력에 밀려 ‘무쏘 스포츠’에 대한 특소세 부과 문제로 혼선을 빚었던 경우를 들며, 승용차에 대한
특별소비세 부과기준과 인하폭도 사실상 미국의 입장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결정됐다는 비판이다. 그 결과로 중대형차에 대한 세율 인하폭이 훨씬
높아 서민들은 거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반면, 대형차 및 수입차 구입자들은 상당한 이득을 보는 역진성이 나타나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로
특소세 인하방침이 내려질 경우 소형차는 약 8~11만원 가량 떨어지는 반면 수입차의 경우 최고 1,000만원까지 떨어진다는 계산이다.
자동차 특소세 인하 정책 추진과정도 사건의 발단으로 지적됐다. 자동차 특소세 인하정보가 사전에 유출돼 허겁지겁 법개정을 추진하게 됐고 이로
인해 시장에 혼란만을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핵심 관계자는 “정부와 야당이 특소세법 인하 방침을 미리 흘려 자동차 판매시장을 얼어붙고 있는데 이는 지난 2001년 특소세 인하때도
써먹은 수법”이라고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즉 자동차 시장이 죽어가고 있는데 야당이 딴죽을 걸고 있다는 여론을 만들어 야당을 압박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특소세 인하 문제에 대해 일각에서는 정부와 여야간 경기진작 효과에 대한 시각차가 있고,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와 여당
한나라당 간에 미묘한 역학관계까지 얽혀있어 복병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있다.
가전제품도 특소세 인하가 될 것을 기대하고 벌써부터 업계는 인하된 가격으로 판매하는 등 판촉에 총력을 기울였고 소비자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
차 업계, 사실상 ‘개점휴업’
특소세 인하에 대한 국회 입법절차의 지연으로 자동차, 전자제품 판매가 마비되는 등 관련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특소세가 인하될 때까지 구입을
미루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유통업체는 아예 특소세가 인하된 가격으로 판촉에 나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경기침체와 노사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동차업계는 “특소세 인하 결정이 계속 지연될 경우 막대한 손실을 떠안을 수 밖에 없다”며
정부와 국회의 특소세 인하 처리방법에 불만을 터트렸다.
실제로 지난 4일, 정부의 특소세 인하 방침이 발표된 이후 계약연기와 해약이 잇따르면서 사실상 출고가 마비된 상태며 영업소도 ‘개점휴업
상태다’ 대기수요자의 급증으로 재고량이 적정재고수준의 두 배에 가까운 11만대를 상회해 하루 평균 563억원씩, 발표이후 현재(8일간)까지
총 3,500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장애인 등록차량 등 평소 특소세를 물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면 신규계약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업계는 이런 사태가 지연될 경우 정상적인 조업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조업단축이나 라인 가동중단 등의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또 이로 인해1200여개의 1차 부품업체는 생산을 중단하게 되어 그 피해는 날로 확산될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까지 자동차업계의 피해액이 3,500억원을 넘어섰다. 경기진작을 위한다는 게 오히려 내수경기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회장 김동진)는 “정부가 즉시 시행할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 놓지 않은 상태에서 특소세 개편 보도를 성급히 발표함으로써
이에 따른 부작용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전자업계, 특소세 인하 오리무중
전자업체들도 프로젝션TV와 PDP TV, 에어컨 등에 대한 특소세 인하가 보류되자 대책 마련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유통업체가 특소세 인하에
앞서 미리 할인해주면 나중에 할인폭을 보상해주는 방안과 일단 평소처럼 판매한 뒤 특소세 적용 시점에 따라 소비자들에게 특소세를 환급해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LG전자도 특소세가 인하될 때까지 PDP TV, 프로젝션 TV, 에어컨에 대해 20~30일 정도 예약판매를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부 업체는 벌써부터 특소세 인하분만큼 가격을 인하하고 나섰다. 볼보자동차는 지난 7일부터 특소세 인하를 감안, 170만~210만원의 차값을
내렸다. 하이마트는 9일부터 에어컨은 5%, PDP TV는 1% 할인 해준다. 전자랜드21도 에어컨 판매가의 5%를 전격 인하했다. 테크노마트는
지난 7일 이후 가전제품을 구입한 고객에게는 특소세율 인하가 확정된 후 차액을 전액 환급해주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신세계 이마트도 PDP
TV 일부 모델에 대해 8일부터 100만원권 상품권을 끼워주는 방식으로 사실상 가격인하에 들어갔다. 한편 LG홈쇼핑은 특소세 인하가 결정될
때까지 아예 프로젝션 TV와 PDP TV의 판매 방송을 중단하기로 했다.
홍경희 기자 khhong04@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