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은 반항이야”
화투를 민중미술이자 팝아트로 해석한 화제의 미술가 김점선
천진난만한 동화적 세계를 구축해 온 영원한 자유인 김점선 화가. 이번 전시에서 김씨는 화단의 엄숙주의에 대항하는 화투 그림으로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
“소외된 계층에게
화투만한 소통의 수단이 있나. 화투는 민중미술이자 아름다운 놀이 문화야.”
반항적 야인, 기인적 기질의 화가 김점선(57) 씨가 이번엔 화투를 동화적 그림으로 재창조해 한국화단에 화제를 뿌리고 있다.
우비 입은 아이와 개구리가 함께 만세를 외치고, 홍싸리에 파묻힌 말은 눈웃음을 치면서 뛰어간다. 둥근 달은 핑크 빛 하늘 위에 휘영청 떠올랐고,
그림 가득 ‘빛’ ‘해라 해’ ‘부귀영화’ 등의 낙서 같은 글귀들이 가득하다. 김씨의 화투 그림은 하나같이 해학적이고 포근하다. 화투에
대한 김씨의 기억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혼자서 화투를 가지고 놀던 외할머니를 보고자란 김씨에게 화투는 평온함 그 자체였던 것. 화투를 통해 친구 어머니와 교감을 나눈 기억도 있다.
아픈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친구 집을 방문한 김씨는 종일 친구 어머니와 화투를 쳤다. 그날 친구는 김씨에게 ‘어머니를 웃게 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고스톱을 치다가 목단 청단 그림이 들어오면 너무 예뻐서 내놓기 싫다”는 김씨는 화투에 대한 애정을 담아 컴퓨터로 작업한 화투 그림을 포함,
강남 역삼동 스타타워갤러리에서 8월23일까지 열리는 개인전을 통해 300여 작품을 선보였다. 개인전에 맞춰 김씨는 산문집 ‘나는 성인용이야’를
내놓기도 했다. 73편의 산문과 57편의 화투 그림을 담은 이 책은 편견을 거부하는 자유인 김점선 씨의 자의식과 미술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 담겨있다.
“화가는 손재주보다 ‘철판’ 되는게 중요”
단순한 선과 색채로 동화적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김씨는 이번 전시회에서도 가식 없고 소박한 ‘김점선표’ 작품들을 보여준다. 그림마다 큰 글씨로
‘점선’이라고 장난스럽게 적은 서명이나 그림에 화살표를 넣어 ‘외할머니’ ‘언니’ ‘나’라는 식으로 설명을 단 부분은 초등학생 그림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밝게 웃고 있는 동물 그림이나 머리를 풀어헤치고 하늘을 나는 사람 그림들도 그렇게 천진해 보일 수가 없다.
김씨의 그림은 위선에 가득한 세상에 대한 항변이다. “화투 그림을 시작한 것도 반항이야”라는 김씨는 문화의 엄숙주의에 상당한 거부감을 표했다.
“이런 단조로운 그림은 누구나 그릴 수 있어. 하지만 발표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지. 화가라는게 손재주가 중요한게 아니라 철판이 되는게
중요한 거야. 자기세계에 몰두해야 이렇게 치졸한 그림이 나오거든.”
인물들마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머리 빗기 싫어서 다 헝클어 놨어. 학교 다닐 때 학칙에 왜 머리 몇 센치 길러라
그런거 있잖아. 그게 너무 싫었거든. 어릴때 부모님도 악랄하게 외모에 대해 스트레스를 줬다고. 나는 머리를 헝클어 다니는게 좋아.”
그림 속처럼 김씨의 차림새는 늘 헝클어져 있다. 머리도 직접 가위로 아무렇게나 자르고 옷도 아들이 입던거나, 죽은 남편이 남기고 간 것을
입는다. “화가는 내 시간이 많아야 해. 예쁜 옷 많으면 나가고 싶어. 그러면 안돼. 세속적으로 자신을 소외시켜야지. 화가가 되기로 맘먹고
겉모습에 신경 쓰면 죄야. 부정타지.”
1. '비는 빛이다' 2. '팔월빛꽝산' 3. '홍싸리 말' |
결혼의 업적, 남편의 공헌
비린내나 느끼함을 전혀 찾을 수 없는, 절대 순수의 경지에 서 있는 듯한 김씨의 작품세계는 삶 전반에 걸친 고단한 수행의 결과다. 타인에게
기생하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 김씨는 가난한 청년과 결혼했다. 동네에서 얻은 된장에 산에서 캐온 풀을 넣고 끓여먹을 정도로 배고픈 삶 속에서
오로지 그림에 몰두했다. 하지만 김씨는 남편을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다. 원망은커녕 김씨는 남편을 너무도 사랑했다. 남편이 사망한지 6년이
넘었지만 남편에 대한 기억은 지금까지 김씨의 정신적 자산이다.
김씨의 그림에는 외할머니와 부모, 남편과 아들, 그리고 함께 살았던 동물과 꽃에 대한 애정어린 추억들이 가득하다. 아들을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하는 김씨는 “내 아들은 결혼의 업적이며 남편의 공헌이야”라고 자랑한다.
따지고 보면, 김씨의 근작들도 남편의 공헌이다. 오십견으로 더 이상 작품 활동이 어려울 때, 컴퓨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 아들이기
때문이다. 재작년 겨울 김씨는 40일 동안 쉬지 않고 18시간씩 드로잉 작업을 하다가 오십견의 극심한 어깨 통증을 얻었다.
“6시간 동안 쉬지 않고 작업하는데 팔이 저절로 꺾여져 내려가. 그러면 그만 하라는 신호로 알고 일을 멈춰야 했는데, ‘그런다고 내가 안
그리나 봐라’하는 심정으로 꺾여진 자세 그대로 아랫부분에서 작업을 계속한 거야. 56살인데 청춘이냐. 너무 혹사시킨 거지.”
오십견으로 컴퓨터 그림 시작
김씨는 통증을 이기기 위해 전기 전자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아들(24)에게 컴퓨터 설치를 주문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신기함과 배운다는
기쁨에 푹 빠져 새벽 2~3시까지 정신없이 컴퓨터에 매달렸지.”
처음에는 워드나 이메일을 익히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호기심 많은 김씨는 곧 컴퓨터의 미술적 활용법을 터득했다. “하루는 어린애처럼
컴퓨터를 헤집고 다니다가 우연히 그림 그리는 프로그램에 들어갔어. 선도 죽 그어지고 색깔도 선택되더라고. 그림을 못 그리는 불만에 가득
차 있던 중이었는데 그걸 만나니 너무 신났지. 종일 컴퓨터를 갖고 놀았어.”
마우스를 작동하는데는 팔꿈치 아래 부분만 움직여도 충분했기 때문에 어깨가 아픈 그녀에게 컴퓨터는 해방구였다. ‘밤새 즐긴’ 김씨의 결과물을
본 아들은 “이렇게 단순한 선으로도 이렇게 멋있는 그림이 나올 수 있구나”며 감탄했다.
아들은 포토샵과 펜마우스를 설치해 김씨에게 디지털 그림이라는 신세계를 본격적으로 열어주었다. “펜마우스를 잡고부터는 아프다는 사실을 잃어버렸어”라는
김씨는 새벽 3~4씨까지 작업에 몰두해 끊임없이 작품을 만들어냈다.
“우울하면 그림 못 그려. 기분 좋고 평온할 때만 그림을 그리지.” 김씨의 그림 속 동물과 인간들이 한없이 행복해 보이는 이유다. 시류와
유파를 넘어서, 세속적 욕심과 타성을 버리고 홀가분하게 의식의 밑바닥을 헤엄치는 김씨의 그림에는 진정한 자유를 위해 고행을 감내한 삶의
흔적이 보인다. 김씨는 자신을 기인이라고 부르는 세상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나를 두고 이상하다고 말해. 내가 볼 땐 사람들이 너무 이상한데 말이야.”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