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위원, 충남도지부장 당선돼 노익장 과시
12대 때에 ‘정당 후원법’마련해 깨끗한 정치구현에 크게 기여
직제개편으로 새로
마련된 한나라당 운영위원에 당선된 유한열(柳漢烈)의원(65)이 지난 7월22일 충남도지부 회의에서 충남도지부 위원장으로 당선된 일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유 의원이 비록 얼마 전까지 충남도지부 위원장직을 역임했으나 중앙당 운영위원 경선에서는
충남지역에서 2위에 머물렀기 때문에 도지부 위원장 경선에서 불이익이 되지 않겠나 우려하는 측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우려와는 달리 유 의원은 12대7, 기권3으로 지부 위원장에 재선됐다.
유 의원은 5선의 중진이다. 전통 야당인 신민당 총재를 역임 일세를 풍미하며 숱한 화제를 남겼던 옥계 유진산(柳珍山)선생의 자제로서 정계에
입문 후 많은 화제를 낳았던 인물이다.
그는 선친인 유 총재가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의 이른바 40대 기수론으로 자칫 야당이 분열될 위기에 빠졌을 때에 자신의 꿈을 접고 정통야당을
끌어갔던 위업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정치적인 영광보다는 당과 나라를 생각해야 한다는 원칙을 우선”했던 선친의 정치신조를
좌우명으로 삼고 정치역정을 걸어왔다.
3당 통합에 크게 실망, YS 비판 시각
1973년에 선친이 별세하자 당시 국무총리였던 김종필씨가 세 번이나 찾아와 국민장으로 치루자고 권유했으나 선친의 유언대로 아끼고 애환이
서렸던 신민당 당장으로 치룬 일은 유명하다. 유 총재 사후 선장을 잃은 신민당은 걷잡을 수 없는 정쟁으로 휘몰렸다.
유 의원은 신민당 사무차장으로 재직하면서 이른바 YH사건으로 경찰이 당사에 난입 불법탄압한 일을 몸소 체험한 후 반독재 투쟁에 앞장서기도
했으나 김영삼, 김대중 씨 등 야당지도자들과는 일획을 긋는 등 독자노선을 걸었다.
두 김씨의 갈등이 심해지자 뜻이 맞는 사람을 규합 ‘민중민주당’을 창당 총재직에 취임하였고 그후 신민당에 입당, 13대 총선에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JP의 신민주공화당이 충남일대를 휩쓰는 와중에서 유일하게 무소속으로 당선돼 화제를 모았다.
13대 국회가 들어선 후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 씨 등이 3당 통합을 하자 크게 실망했으나 그후 민자당에 입당했고 김영삼 씨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어도 비판적인 시각을 버리지 않았다.
그후 이회창 씨를 만나 차세대를 끌고갈 인물은 이 사람밖에 없다는 확신을 갖고 적극 지원하였으며 정계를 비롯 각계 원로와의 중개역할을 맡았다.
북한 대표에게 폭주 먹여 ‘녹아웃’ 시켜
이회창 씨가 정계은퇴하고 한나라당이 새 지도자를 선출함에 있어 그는 최병렬 의원을 새 대표로 적극 밀어 당선시키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자신은
운영위원, 충남도지부 위원장 선거에 출마 당선되었다.
그의 의정사에서 가장 높이 평가할 업적은 12대 국회의원으로 민한당 사무총장 재직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정당 후원법’을 만들어 깨끗하고
투명한 정치에 기여했던 일일 것이다.
그의 여느 사람과 다른 배포와 기개의 한 단면을 엿보이는 애피소드 한 토막. 12대 국회 때인 1980년 9월에 동독에서 IPU총회가 열린
저녁에 북한대표 박형규와 그 일행의 초청으로 유 의원을 비롯한 한국의원들이 함께 모여 술잔을 돌릴 때에 북한 대표가 술 몇병을 주문하는
것을 가로막고 박스로 가져 오라고 해서 스트레이트로 20여 잔을 이북대표에게 먹였더니 ‘선친은 아주 훌륭하신 분인데 의원은 이렇게 거치냐’고
말했는데 그 대표는 술병이 나 며칠 나오지 못했다는 것.
아무튼 이제 유 의원의 노익장이 바야흐로 열린다고나 할까.
학력 및 경력 연세대 중퇴, 미 시카고루즈벨트대 졸, 동대학 명예법학박사, 미 일리노이 주 정부 사회복지국장, 국회의원 10,11,12,13,16(5선),IPU국제이사, ALPO한국대표이사, 민한당 사무총장, 한미의원 친선협회장, 민자당 당무위원, 국회동력자원위원장, 신한국당 논산 금산지구당 위원장, 한나라당 충남도지부 위원장, 운영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