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내용을 '수정권고'와 '추가수정' 등을 통해 모두 206곳을 수정·보완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안병만)는 18일, 2009학년도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6종)의 수정·보완 결과를 발표하면서 "청소년의 바람직한 역사인식 및 국가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의의 및 정통성, 우리역사에 대한 자긍심 등을 교과서에 올바르게 기술하는 것을 목적으로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교과부는 지난 3일 사단법인 한국검정교과서로부터 2009학년도 한국 근ㆍ현대사(6종) 교과서 수정·보완 내역을 제출받아 국사편찬위원회의 역사교과서 서술 방향 제언을 근거로 '역사교과전문가협의회'의 검토를 거쳐 최종 승인한 것이다.
지난 2008년 6월 기획재정부, 국방부 등 정부부처와 금융감독원, 대한상공회의소, 한국소비자원, 전경련 등 관련 단체가 포함된 33개 기관으로 구성된 '교육과정ㆍ교과서 발전협의회'및 교과서포럼 등 6개 단체으로부터 253개항의 역사교과서 수정요구(안)을 제출받았다.
이에 교육과학기술부는 한국근현대사(6종) 교과서에 대한 분석을 국사편찬위원회에 의뢰하여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한국사교과서심의협의회'를 구성, 역사학계의 의견 등을 수렴, 검토해 개관 12개항, 단원별 서술 방향 37개항 등 총 49개항에 대해서 서술 방향을 제시했다.
그 결과 '수정권고' 53건, '자체수정' 102건, '추가수정' 51건 등 총 206곳이 수정ㆍ보완된다.
교과부는 내년 1학기 교과서가 적기에 공급될 수 있도록 12월말까지 교과서 발행준비를 마무리하고 내년 1월 중순부터 각급 학교에 공급될 수 있도록 한다고 덧붙였다.
교과서 발행사별로 수정·보안 사항을 살펴보면 금성출판사가 73건으로 가장 많고 중앙 40건, 두산과 천재교육이 각각 26건, 법문사 25건, 대한 16건 등의 순이었다.
특히, 교과부가 금성출판사에 대해 교과서 수정 압박을 강하게 요구해왔고, 금성출판사는 교과부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해 일단락될 듯 보였다.
하지만 교과서 집필진들이 저작권 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맞불을 놓았다.
만일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일 경우, 교과부의 발표로 금성출판사 교재를 택한 학교들은 다른 출판사의 교과서로 교체해 학교 수업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주요 수정·보완 사례를 살펴보면 교과부가 "8·15 광복과 연합군의 승리에 대해 부정적으로 기술하거나 분단의 책임을 대한민국에 전가한 부분을 수정했다"며 "북한 정권을 우호적으로 기술하거나 미군에 대해 부정적으로 표현한 부분을 수정했다"고 덧붙였으나 사실적 관계에 대해 의문점이 많았다.
특히, 금성출판사의 수정사항을 꼽으며 ‘좌편향’을 강조했다. 미ㆍ소 군정과 관련하여 "미군의 포고령은 군정 설립이라는 현실적 상황에 직면하여 한국인에게 주의 사항을 전달한 것이다"라고 기술하게 되어 있고, "소련의 포고문은 그들의 이념을 선전하기 위해 고도의 미사여구를 구사한 선동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라고 기술했다.
8ㆍ15광복에 대해 "연합군이 승리한 결과로 광복이 이루어진 것은 우리 민족 스스로 원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데 장애가 됐다"는 부분은 "우리의 힘으로 일본을 물리치지 못한 것은 통일 민족 국가를 건설하는 데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원인이 됐다"로 수정됐고, "광복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역사적 순간은 자주 독립을 위한 시련의 출발점이기도 했다"는 내용은 "자주 독립 국가가 시작된 것은 아니었지만, 광복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고 수정됐다.
이어 "저는 함흥의 한 중학교 최우등 학급의 학생입니다. 김일성 종합대학에 진학하여 당이나 국가 기관의 간부가 되고 싶습니다"라는 한 학생의 말을 인용한 서술은 삭제하며 "북한에서는 중학교를 졸업하면 크게 대학 진학, 군 입대, 그리고 직장 배치 등 3개의 진로가 있다. 대부분은 군대에 가거나 직장 배치를 받으며, 곧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는 10% 정도에 불과하다. 직장 생활 혹은 군대 생활 중에 추천을 받아 대학에 들어가기도 한다. 직장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배치된다"라는 글로 북한사회에 긍정적인 서술을 못하게 했다.
또한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라는 이념적 명분을 가지고 있었으며,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던 김일성측은 세력 분포의 우위를 토대로 오히려 이 사건을 계기로 반대 세력에 대한 본격적인 숙청에 나섰다"라는 표현은 "그러나 충분한 준비 없이 거행된 이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미 탄탄한 권력을 구축하고 있던 김일성측은 이들을 반종파 분자로 몰아서 제거하고, 이어 반대 세력을 광범위하게 숙청했다"라고 바뀌어 김일성 정권에 대한 우호적인 기술을 쓰지 못하게 했다.
미군에 대해서도 자료사진 밑에 "미국 측 점령군 사령관 하지 중장"이라고 표현된 부분은 "미국 측 위원 사령관 하지 중장"으로 부정적 표현을 바꾸었다.
분단의 책임을 대한민국 책임이 아닌 "유엔 소총회의 결의로 마침내 우리 민족의 정부가 세워지게 되었다. 그러나 통일 정부 수립이라는 희망은 이루어지지 못했다"며 책임은 북한으로 전가됐다.
친일파 청산은 "이로 인해 민족 정기를 바로잡기 위한 친일파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끝나고 말았다. 광복 이후, 우리 민족은 친일파 청산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서술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뉘앙스를 흐르게 했다.
금성출판사 집필자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는 "교과부가 교과서 검정심사과정에서 사전에 집필진과 상의해 수정을 지시하고 내용을 논의하는 것이 보통 관례인데 합격시킨 뒤에 뒤늦게 내용을 수정하라는 것은 경쟁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교과서 '검정제'의 기본 취지에도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어 "말이라는 게 앞뒤를 바꾸면 비중이 실리는 부분이 달라지는데 그런 차이 때문에 교과부가 바꾸려고 하는 것 같다"며 "약간의 해석이나 평가 같은 부분인데 '검정체제'라면 그 정도 표현의 자유는 인정해 줘야한다"고 토로했다.
전국역사교사모임 윤종배 회장은 "이번 교과서 수정 과정에서는 민주적인 절차나 합리성, 토론 등이 실종돼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서글픈 생각이 든다"며 "교과서 집필진에 이어 교과부 등을 상대로 법적 소송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과거 정권이 입맛대로 교과서 내용을 바꾼 적이 있는데 결국 이후 역사에서도 심판을 받을 것"이라며 "이번 행위도 언젠가 역사에 분명히 올바르게 기록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보도자료를 통해서 "대승적 차원에서 수용하여 교과서를 둘러싼 갈등과 혼란이 종식돼야 한다"며 "교과부가 교과서 논란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을 촉구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국교총은 "이번 교과서 논란을 거울삼아 교과부가 초정권적이고 초이념적인 관점에서 보다 엄정한 심사를 통해 현재의 논란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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