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이면 이봉창 의사가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투척한 의거가 77주년이 된다.
(사)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회장 문국진)는 일제의 심장부인 동경에서 한민족의 자존과 독립의지를 만천하에 알린 '이봉창 의사 의거 77주년'을 맞아 기념식을 8일 오전 11시에 백범기념관에서 열린다.
이날 기념식은 이병구 서울지방보훈청장, 남만우 광복회 부회장, 김을동 국회의원, 김신 백범기념관장, 김우전 광복회 고문을 비롯한 독립운동관련 단체 대표와 광복회원 등 2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기념식은 기념사업회장의 식사(式辭)에 이어 광복회장과 국가보훈처장 기념사, 헌화의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봉창 의사의 의거는 그 대상이 일본 제국주의가 신격화 해 놓은 일왕이었고, 거사 장소가 적의 심장부인 동경이었다는 점에서 비록 일왕 폭살에는 실패하였으나 그 의미가 크다.
이를 계기로 우리 민족에게 광복의 신념과 의지를 일깨워 침체상태에 빠져있던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전선에 새로운 활력소로 작용하였으며, 같은해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커우공원(虹口公園) 의거가 일어나는 기폭제가 되었다.
1946년 6월 30일 김구 선생에 의해 일본에 있던 이봉창 의사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여 효창공원(삼의사 묘역)에 안장하였으며,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이봉창 의사(1901.8.10∼1932.10.10)는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며, 1931년 1월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하고자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를 찾아가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의 김구 단장을 만나 일본 생활의 경험을 토대로 일왕 폭살계획을 세우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철공소에서 일하면서 한달에 한번씩 김구 단장을 만나 거사를 계획·준비했다.
1년여의 준비를 거쳐 1931년 12월 13일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1931년 12월 17일 김구 단장의 전송을 받으며 일본인으로 위장하여 동경으로 갔다.
이봉창 의사는 일왕 히로히토가 1932년 1월 8일 동경 대대목(大大木) 연병장에서 신년 관병식(觀兵式)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 날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상해 김구 단장에게 전보를 보냈다.
1932년 1월 8일 앵전문(櫻田門) 앞에서 일왕 행렬이 나타나길 기다렸다가 행렬이 나타나자 일왕을 향해 수류탄을 투척하였으나 일왕 폭살에는 실패하였다. 현장에서 체포된 이봉창 의사는 같은 해 9월 30일 동경 대심원(大審院)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0월 10일 오전 9시 2분 시곡형무소(市谷刑務所)에서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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