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협 현대아산이 지속해야”
현대 대북사업 남북관계 개선에 일조, 남북경협 범국민운동 확산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의장의 갑작스런 자살이 정치권의 초대형 비자금파문으로 번지면서 정 회장이 주도했던 대북사업이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사실 남북경협이 민족 분단의 현실에서의 당위성은 인정받고 있지만, 기업의 사업으로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현대아산의 발표에
의하면 98년부터 2001년까지 약 6,000억 원의 손실이 났다. 때문에 현대의 대북 사업이 밑 빠진 독에 물 붙기라는 비난 여론도 높다.
그러나 남북경협이 남북 관계개선에 큰 역할을 했다는 데는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다.
대북사업 누가 맡나?
남북경협이 지속돼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가운데 故 정몽헌 회장이 주도했던 대북사업을 누가 이어야 하느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정 회장 사건 직후 현대家인 현대자동차그룹이 남북 경협사업을 이어야 한다는 의견과 국내 제1기업인 삼성그룹이 참여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었지만,
두 회사 모두 ‘계획없음’을 분명이 했다. 이후 마지막 카드로 범정부 차원에서 대북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었다.
최근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조율 안 된 경협방안으로 혼선을 초래하는 것은 대북 협상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며 여러 의견에 대해 일단
자제를 당부하고 나섰다.
한편, 정부와 여당은 故정몽헌 회장의 뒤를 이을 남북경제협력사업의 주체 논란에 대해 “현대아산의 사업 주도권 유지가 바람직하다”며 “현행
대북경협 틀을 고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세현 통일부 장관은 8월8일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초청 강연회에서 “금강산관광 사업주체를 지금 이 상황에서 변경하는 것은 이득이 없다”며
현대아산 중심의 대북경협사업 추진을 확인했다.
정 장관은 이날 “대북경협사업 부진의 책임에는 북한측이 약속을 안지킨 측면도 크다”며 “사업주체 변경은 협상에 어려움만 줘 특구와 육로관광을
지연시키므로 수익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 장관의 발언은 북한쪽 사업주체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가 법률상 민간기구라는 점에서 우리 정부가 현대아산을 대신해 전면에 나설 수
없다는 견해를 나타낸 것으로 대북경협사업에 정부 참여를 촉구하는 일부의 주장을 거부한 것으로 해석된다.
여당인 민주당도 이날 정세균 정책위의장이 기자간담회를 갖고 “남북교류 및 경협사업이 지속 추진돼야 한다는 원칙 아래 사업의 주체는 재정적
어려움이 있지만 현대아산이 맡아야 사업의 일관성이 있다”며 현대아산의 사업권 유지에 무게를 뒀다.
그러나 정 의장은 현대아산이 재정적 어려움으로 대북사업을 포기할 경우에 따른 3가지 대안도 제시했다.
정 의장은 “현대아산이 어렵다면 ‘현대 패밀리’ (옛 현대그룹 계열사)가 맡아서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다음 차선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대안은 대북사업 계승기업으로 유력하게 지목됐던 현대자동차그룹이 거부의사를 명백히 표시했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은 낮다.
한편, 민주당은 같은 날 여의도당사에서 남북교류 및 경협 관련 부처인 통일부 재경부 건교부 문화부와 당정협의회를 열고 현대아산의 사업추진권
유지 방침을 확인했다. 또 중단된 금강산관광경비지원 200억원도 이른 시일내 재개하는데 협력하기로 했다.
현대아산
“컨소시엄 구성해 대북사업 진행”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의 지원 움직임에 대해 현대아산 김윤규 사장도 8월10일 “대북사업은 현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지금까지는
현대아산이 대북사업을 이끌어 왔으나 이제는 사업별로 필요하다면 국내외 다른 기업들과 컨소시엄 등을 구성,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북사업은 현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이제는 사업별로 필요하다면
국내외 다른 기업들과 컨소시엄을 구성, 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또 “북한도 투자자들이 매력을 느낄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면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경공업 단지 등에 관심을 갖는 해외 투자자들이
많기 때문에 북한핵 문제 등 대외적 환경이 안정되면 투자유치가 곧 가시화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김 사장은 또 “지금의 경직된 분위기가 바뀌고 더 많은 관광객들이 금강산을 찾으려면 금강산 관광 보조금이 조속히 집행돼야 한다”고 정치권의
협조를 촉구하면서 “앞으로는 대북 비밀송금 같은 사건은 절대 없을 것이며 대북사업을 투명하게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남북경협에서 새로운 모델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당의 대북정책을 재검토할 뜻을 밝혀 여당과의 논란이 예상된다. 홍사덕
총무는 8월8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당의 대북정책 전반에 걸쳐 짚어야 할 원칙을 앞으로 밝힐 예정”이라며 “사안별 대응이 아니라, 모든
국면에서 지켜야할 원칙을 검토해 밝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식 제2정조위원장도 이날 회의에서 “(금강산관광 지원을 위해) 남북협력기금 199억원을 주느니 마느니 하는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의
논쟁을 할 것이 아니라, 남북한의 협력모델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해 정부와 여당이 주장하는 남북협력기금 지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국내 기업 ‘현대 대북 사업 긍정적’
우리 기업들의 상당수가 금강산 관광이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현대의 대북사업에 정부차원의 지원이 지속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국내 6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지난 7월2일부터 11일까지 조사한 ‘2003 주요 기업의 남북경협 현황 및 개선과제’에
따르면 현대그룹이 주도한 금강산 관광이 남북관계 개선에 미치는 기여도를 묻는 질문에 대해 응답업체들은 ‘어느 정도 기여하였다’(65.0%),
‘매우 기여하였다’(10.9%)고 답해, 전체 응답자의 4분의 3인 75.9%가 현대 대북사업의 기여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같은 결과는 지난 8월4일 정몽헌 회장의 자살이전에 조사된 것이어서, 최근 여론은 한층 높아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경련은 이를
근거로 “현대아산이 추진중인 금강산 관광은 수익성이 제고될 때까지 일정한 범위 내에서 정부차원의 지원이 지속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전체 응답기업의 41.7%가 향후 남북관계 개선 여부에 따라 경협사업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밝혀 그동안 중소기업 위주로 이뤄지던
남북경협 사업에 대기업의 참여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남북 경협 범국민운동 시작
한편, 남북경협을 지속하기 위한 범국민적 운동이 젊은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일고 있다. 신계륜·송영길·임종석 의원, 이인영·우상호·허인회
위원장 등 민주당의 젊은 원내외 위원장 26명은 8월10일 ‘남북경협 지속발전을 위한 범국민 운동’을 제안했다.
신 의원 등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이제 막 숨통이 트이기 시작한 남북의 교류와 화해 협력이 중단된다면 우리 민족의 평화와 국가경제의
번영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라며 △금강산관광 참여하기 △현대아산 주식 10주 갖기 운동 등을 제안했다.
이들은 또 “정부는 남북교류협력기금을 조성한 본연의 취지대로 조속히 집행해야 하며, 국회 역시 지체없이 집행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인회 위원장은 “‘한글과컴퓨터’사 살리기 운동이나 <한겨레> 창간 운동처럼 현대아산의 자사주인수와 유산증자 등에 국민이 참여하는
방식이 가능할 것”이라며 “민화협 등 여러 시민단체와 연대해 범국민운동으로 발전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범수 기자 skipio@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