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는 ‘기무치’를 이길 것인가 ?
세계로 진출하는 한국음식의 국제화 현황과 전략 중국 저가 공세, 과다경쟁으로 위기
맞벌이부부가 증가하면서 외식과 인스턴트 식품의 선호 경향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를 타고 음식의 상업화와 함께 국제화가 가속화되는 추세다. 월드컵 등 국제행사로 한국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며
최근엔 ‘김치가 사스를 이긴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한국의 대표음식 김치가 세계 무대에 재조명되기도 했다.
시장 확대를 모색하고 있는 한국음식 국제화의 현주소와 나아할 길은 무엇인지, 삼성경제연구소 민동원 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알아보았다.
중국 저가 공세, 과다경쟁으로 위기
한국음식의
상품화와 국제화의 시작은 김치다. 1987년부터 생산된 종가집 김치의 ‘진공포장김치’로 김치의 상품화가 본격화됐다. 포장김치의 해외시장
판매는 88올림픽을 계기로 본격화돼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하지만, 최근 중국산 저가 공세 및 업체간 과다경쟁으로 단가가 하락해 매출성장은
정체상태다. 2002년 국내 김치의 수출액은 전년대비 15.4% 증가한 7억8,000만 달러를 기록했으나, 이는 1999년에 비하면 500만
달러 증가에 그친 수준이다.
대일 수출금액은 2002년 전년비 14% 증가한 7억4,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것은 1999년 7억7,000만 달러에 비해
3,000만 달러가 감소한 수치다. 중국산 저가 김치의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 김치 수출업체 간 경쟁으로 인해 일본 김치시장
내 가격덤핑이 심화된 것이 매출 하락의 원인이다. 일본 수입업체들도 중국산 김치 가격을 기준으로 한국산 김치 가격을 깎아 단가가 계속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내 김치 가격은 400g 기준으로 1980년대 후반에 2,300엔 선이었으나, 1990년대 후반 800엔 선으로 하락했고, 현재는
400엔 정도로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중국산 김치의 해외시장 잠식은 경제적 손실뿐만 아니라 ‘김치 맛’과 ‘김치 종주국’에 대한 외국인의
편견을 이끌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2001년 7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코덱스) 제24차 총회에서 ‘김치(KIMCHI)’는 국제식품규격을 최종
승인 받았다. 코덱스는 유엔식량농업기구와 세계보건기구가 운영하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로 코덱스 인증은 국제간에 공통 적용되는 식품 규정으로
채택되고 있다. 따라서 김치는 국제규격에만 맞으면 누구나 ‘KIMCHI’라는 상품명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쓰케모노(절임)’로 만드는 일본식 ‘기무치’도 김치로 인정받았고, 오이소박이 등 배추 이외의 재료를 사용한 김치는 국제기준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코덱스 규격 획득을 ‘기무치’가 국제적인 인정을 받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라면, 스낵, 두부 등 다양한 음식 해외시장 공략
김치 이외에도
다양한 상품이 세계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대표적인 업체가 농심, 풀무원, 우리음식이야기, 제일제당 등이다. 농심은 교포 뿐 아니라 미국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 판매도 급증해 2002년 3,400만 달러의 라면과 스낵을 수출했다. 농심은 이 같은 상승세를 타고 최근 2,800만
달러를 투자해 미국 LA에 라면공장을 짓고 2004년부터 이를 북미지역 공략의 거점으로 삼을 계획임을 발표하기도 했다.
풀무원은 LA, 뉴욕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으로 2002년 미국시장에서 전년 대비 33% 증가한 600만 달러의 매출을 달성했다. 풀무원의
특징은 건강보조식품이라는 컨셉으로 건강에 좋은 식품을 위생적으로 생산한다는 것이다. 해외시장에서 풀무원의 주력 상품은 ‘풀무원 두부’다.
우리음식이야기는 편의점 등에서 볼 수 있는 패스트푸드화 된 한국음식을 생산하는 업체다. 해동 후에도 품질변화가 거의 없고,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냉동덮밥 시리즈로 국내 및 해외시장에서 호평 받았다. 해외 식품박람회에 참가해 164만 달러의 수출계약을 맺는 등 해외박람회를
마케팅의 장으로 적극 활용하는 것이 주목할만하다. MSG(인공감미료)를 넣지 않고 천연조미료로 양념해 특히 외국인 바이어들의 관심을 끌었다.
제일제당의 ‘햇반’도 국내 성공에 힘입어 현지인의 입맛에 맞춘 제품과 포장, 광고 등 적극적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1997년 수출을
시작해 첫해 5,800만원 매출에 그쳤으나, 1998년 1억92만원, 2000년에 9억원을 기록하며 급성장하고 있다. 제일제당은 최근 ‘크런치
김치’라는 미국인의 입맛에 맞춘 김치를 출시해 ‘햇반’과 함께 미국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퓨전음식으로 현지인에게 인기 끄는 한식당
한식당의 해외 진출 또한 증가하고 있다. 1992년 이후 해외 투자이민에 대한 투자제한 폭이 확대되면서 대형 한식당의 해외 진출이 대폭
늘어났다. 1992년까지는 투자한도액이 30만 달러로 제한돼 해외에 대규모의 고급 한식당을 투자하기 어려웠지만, 현재는 해외 한식당 개업을
위해서 개인이나 법인에 상관없이 공식적으로 100만 달러까지 투자가 가능하다.
현지인을 대상으로 하는 해외 유명 한식당은 대개 한국 고유의 음식과 함께 현지인의 입맛에 맞춰 변형을 가한 일명 퓨전음식 형태로 진출한
상태다. 패스트푸드도 한국음식을 응용해 국내에서 개발한 퓨전메뉴를 해외로 역수출해 인기를 얻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롯데리아는 올 2월 중국시장 철수 전까지 국내에서 개발한 팥빙수·새우버거·불고기버거 등으로 중국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특히 팥빙수의 경우
팥을 좋아하는 중국인의 특성을 고려해 한끼 대용정도로 양을 맞춘 전략으로 계절에 상관없이 매출의 15% 이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고급화된 한식메뉴로 미국에서 인기를 얻었던 ‘우래옥’ ‘한가위’ ‘초가’ 등의 한식당에 이어 최근에는 중국에 진출해 성공한 한식업체가 늘고
있다. 1997년 7월 영업을 시작한 북경의 한국음식점 ‘수복성’은 중국 정부로부터 ‘중국 국가 특급식당 인증’을 획득하기도 했다.
일본시장 의존 줄이고 다변화 급선무
한국음식의 국제화가 이처럼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한계를 뛰어넘고 세계시장에 폭넓게 진출하기 위해서는 식품산업 기술개발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 식품산업의
연구개발비는 국내 전체산업 연구개발비의 1.2%, 연구기관의 수는 전체 연구기관의 2.6%에 그치고 있다.
이는 음식의 국제화 가능성과 기대효과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치다. 연구비 지원과 원료 수급의 안정화를 위한 국가적 노력, 음식 산업의 물류
및 판매, 정보 공동화 없이는 김치가 중국김치의 저가 공세와 일본 ‘기무치’의 치밀한 상업적 전략을 이겨내기 어렵다.
한국음식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지화 전략이 강화돼야 한다. 메뉴를 현지의 식문화에 맞춰 차별화 하는 것은 물론, 한식당의 경우
인테리어나 서비스까지 현지화할 필요가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식당 ‘놀부명가’의 경우 남기더라도 풍성한 상차림을 선호하는 중국인의 기호에
맞춰 메뉴의 양을 구성했고, 미국의 한식당 ‘우래옥’은 냄새가 많이 배는 숯불구이 대신 바비큐 형태로 불고기 갈비 등 한국식 고기요리 선보여
현지인의 식습관을 고려했다. 반대로 한국문화를 소개하거나 접목시키는 마케팅 또한 필요하다.
한국음식의 진정한 국제화를 위해서는 일본시장 의존도를 줄이고 시장을 다변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를 위해서는 해외 식품박람회 및 판촉전
참가 등을 통한 신규시장 확보를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한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