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논쟁 ‘후끈’
‘더 내고 덜 받기’식 개정안 … 연금 가입자 불안 높아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19일 연금수급액은 줄고 보험료율은 올리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 국민연금 개정안을 입법예고함에 따라 이에 대한 반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개정안은 평균소득의 60% 수준인 연금 수급액이
내년부터 55%로 낮아지고 2008년부터는 50%로 줄어드는 반면, 보험료율은 현재 9%에서 2010년 10.38%, 2030년에는 15.9%까지
올리도록 돼 있다. 국민연금 재정 안정화를 명목으로 이미 지난 98년에 국민연금법을 한 차례 개정했다. 그런데 5년도 채 안 돼 또다시
부담은 높이고 받는 급여율을 낮추는 방향으로 개편하는 제도 개선안을 발표해 더욱 파장이 클 것이다.
노동부·재계·시민단체 반발
정부의
이번 국민연금 개편안은 재정 건전성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에 따라 보험료를 낼 사람은 줄고 연금을 탈 사람은 늘기
때문에 미래 세대의 부담을 덜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국민연금 발전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예를 들어 가입 기간 40년을 다 채우고
월 평균소득이 136만원인 사람의 경우, 연금수급액은 81만원에서 67만원으로 14만원이 준다. 국민연금 평균 가입자에 해당하는 20년
가입 평균 소득자가 받는 연금액은 월 34만원이 된다. 정부는 현행 연금 급여율과 보험료율을 그대로 유지할 때 2036년에 수지적자, 2047년에
재정 고갈을 맞게 된다며 재정 합리화 방안으로 이번 개정안을 내놓았다고 밝히고 있다.
국민연금 개정안이 발표되자, 노동계는 물론 재계와 시민단체 등에서 거세게 항의하며 반론하고 나섰다. 노동계는 이번 개정안으로 재정은 안정되겠지만,
노후 연금액이 줄게 되므로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연금의 본래 정신이 퇴색한다고 주장한다. 재계는 직장인들의 보험료 절반을 기업주가 부담하는데
보험료율이 올라가면 기업 부담이 늘기 때문에 반대한다. 보험료를 올리지 말고 대신 노후에 받을 연금액을 평생 소득의 60%에서 40%로
낮추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보험료율-정부는 소득의 9%를 내도록 돼 있는 현행 보험료율을 2010년부터 5년마다 1.38%포인트씩 올려 2030년까지 15.9%로
인상하는 방안을 개정안에 명시했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국민연금의 정책실패를 고스란히 국민에게 떠넘기려는 발상”이라며 “적정한 수준의
국고지원을 통해 11%선에서 보험료율 인상이 억제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재계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이 올라가면 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며 “현행 9%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소득대체율-정부는 평균소득 대비 60%로 돼 있는 지금의 소득대체율을 2004∼2007년에는 55%로 낮추고 2008년 이후엔 50%로
줄일 방침이다. 기금이 줄어 연금 가입자가 받는 돈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것. 소득대체율은 연금가입 기간중의 평균소득에 비해 받는 연금액이
얼마인지를 보여주는 비율을 말한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소득대체율을 50%로 내리면 중간소득자의 연금액이 최저생계비 정도 밖에 안돼
현행 60%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경영자총협회 김정태 상무는“직장 가입자 법정 퇴직금 제도와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해 이들의 국민연금 급여를 합치면 선진국 수준”이라며 소득대체율을 40%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민주노총·한국노총·참여연대 등은 개정안 발표 직후인 지난달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개정안은 국민연금의 노후 소득보장 기능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라며 “이번 방안을 전면 폐기하고 가입자의 입장에서 새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마련하라”고 강하게 촉구했다. 또한 “정부 개정안은
재정고갈 위기를 지나치게 부풀리고, 연금재정을 오로지 가입자의 보험료로만 메우려 한다”며 “무리하게 보험료를 인상할 게 아니라, 국가가
국민연금을 살리기 위해 세제 개혁, 국고 지원 등 적극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독일, 스위스, 스웨덴 등의 국고지원금은
연금 급여 지출비의 약 20%에 달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의 경우 최저 소득등급의 농어민에 대한 보험료 지원과 국민연금관리공단 관리운영비
지원을 제외하면 지원이 전무한 상태라는 것. 이들은 또 △취약계층 가입자를 위한 국고지원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 가입자단체 참여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놓인 600만명을 포괄할 수 있는 제도 마련 △출산·육아·군복무 등에 따른 공백기간 보전 △출산장려제도 등 출산율 상향정책 등을
제시했다.
국민연금 제도와 관련, 민주노총은 최근 발표한 국민연금 개편 정책보고서를 통해 “국민연금 재정추계 기간을 현실성이 떨어지는 현행 70년이
아닌 60년으로 낮추고 국고지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국민연금을 개혁할 경우, 현행 급여율 60%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보험료율도
3.1%포인트 낮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
네티즌 불만 폭주
네티즌들도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는 글이 폭주하고 있다. 국민연금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는 ‘안티 국민연금(www.antinpc.liso.net)’
에는 국민연금 제도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벌여 지난 27일 현재 3만1,600여명이 서명했다.
실명제로 운영되는 국민연금관리공단 자유게시판도 최근 국연금제도 개편안을 성토하는 글이 폭주하고 있다. 김아무개씨는 “월급이 많아지는 것도
아닌데 허구헌 날 세금은 올라가고, 수급액이 많아지는 것도 아닌데 국민연금 납부액을 소득의 15%까지 올리면 대체 생활은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따졌다.
하지만 ‘더 내고 덜 받는’식의 국민연금 개정안이 모든 해결책이 될 수는 없으며, 형평성에도 문제가 따른다는 비난도 있다. 지난달 2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은 “자영업자 등 327만명이 소득을 축소신고하고 116만명은 60% 이하로 신고한다”고
지적했고, 이원형 한나라당 의원도 “연금혜택을 못받는 사람이 565만명으로, 지역가입자 의 60%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연금 가입자인 김영균(서울 구로구)씨는 “국민연금은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나라에서 서민들의 노후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가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노후를 보장받기는커녕 용돈 수준에도 못 미친다. 공무원·군인·사학연금 등 이미 기금 고갈로 정부의 도움을
받고 있는 공적연금의 수령액은 14%나 올려주고, 유독 국민연금만 삭감한 것은 연금 성격의 차이를 인정하더라도 결코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트린다. 그는 또 “ 정부는 우선‘유리 지갑이라는 직장인만 봉이냐는 얘기가 나오지 않도록 국민연금법을 개정하더라도 이 같은 형평성의
문제를 먼저 해결 한 뒤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국민연금 가입 기피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올 7월부터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도 국민연금 가입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가입을 기피하는 사업장도
속출하고 있다. 국민연금 납부는 근로자와 사업주가 반반씩 부담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영세사업장 같은 경우 국민연금이 부담이 돼 가입을
기피하고 고용계약서를 아예 쓰지 않는 곳도 생겼다. 생활이 빠듯한 근로자 입장에서도 사실상 ‘세금’과 같이 생각되는 국민연금을 내고 싶지
않은 것은 고용주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 몇 달전 한 중소업체에 취업을 한 황모씨는 “내 월급이 100만원인데 국민연금을
내게 되면 4만5,000원이라고 한다. 나같은 서민한테는 그것도 부담이다. 처음부터 회사가 국민연금에 가입돼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유소를 경영하는 김아무개(45)씨는 “직원들은 국민연금을 안들겠다고 버티고,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선
‘직원들 빨리 들게 하라’고 들볶는데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김씨는“국민연금에 안들기 위해 고용계약서 작성도 않아
결과적으로 갑근세도 내지 않는 조건으로 사람을 쓰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소득이 불투명한 자영업자의 경우 국민연금 가입을 기피현상이
더 많고 신고를 하더라도 소득을 낮추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때문에 ‘유리지갑’이라는 직장인의 불만이 터져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홍경희 기자 khhong04@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