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국방의 꿈! 혹은 몽상?
노 대통령, 10년 내 자주국방 역량 토대 마련 공약 열흘 후 “예산 없다” 난색
“자주독립국가는
스스로의 국방력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10년 내에 우리 군이 자주국방의 역량을 갖출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
노 대통령이 지난 8월15일 광복절 축사를 통해 ‘자주국방 건설’을 언급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 과연 주한미군이 완전히 철수하게
되는 것인가, 그 대체 전력과 비용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등 ‘자주’라는 말이 주는 기대와 함께 걱정의 목소리도 높았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 대통령이 이날 내세운 ‘자주국방’은 주한미군의 철수 등과는 전혀 무관한 모호하기 그지없는 개념에 불과하다. 개념자체가 모호하고
현실적인 사정도 고려되지 못 하다보니 그저 한갓 ‘깜짝쇼’로 끝나고 말았다.
자주국방???
자주국방 건설 계획은 박정희 전 대통령 때 처음 시작됐다. ‘방위의 일차적 책임은 자국에게 있다’는 닉슨 독트린에 따라 1971년 3월
한국에서 주한 미 제7사단이 철수하게 된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73년 4월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을지훈련을 참관한 자리에서 △자주국방을
위한 군사전략 수립 및 군사력 건설에 착수할 것△작전지휘권 인수에 대비한 장기군사전략을 수립할 것 △고성능 전투기와 미사일 등을 제외한
소요 무기 장비를 국산화할 것 △1980년대에는 한국에서 미군이 모두 철수했다는 가정 하에 독자적인 군사전략, 전력증강 계획을 수립할 것
등을 지시했다. 완전히 미군의 원조를 벗어난 ‘자주국방’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현재의 논의는 성격이 다르다. 노무현 대통령이 언급한 ‘자주국방’은 한반도 내에서 우리 군이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을 봉쇄할 정도의
힘을 갖추는 자위적 방위(self-defense)의 성격이 강하다. 주한미군이 철수한 완전한 자주국방의 개념이 아니다.
노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자주국방과 한미동맹은 결코 서로 모순되는 게 아니라 상호보완 관계이므로 더욱 단단하게 다져나가야 하고
동북아에 평화와 번영의 질서가 자리잡을 때까지 (주한미군은) 평화와 안정의 지렛대 역할을 할 것”이라며 이 점을 강조했다. 즉, 주한미군은
동북아의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는 뜻이다.
주한미군과 관련해서 노 대통령은 또 “주한미군의 실질적 전력이 약화되지 않는 것을 전제로 부대 재조정도 수용하려고 한다”면서 “용산기지의
최단시일 내 이전, 주한 미2사단의 재배치 등은 안보상황에 맞춰 시기를 조절 시행토록 부시 미 대통령과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내용은 이전에 발표됐던 것에서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신무기 도입 위한 자주국방론
노 대통령이 언급한 자주국방론의 진의는 전력증강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국방예산을 증액하겠다는 데 있다. 국방예산을 외환위기 이전 수준인 국내
총생산(GDP)의 3.2∼3.5%대로 회복시키겠다는 것은 노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었다.
이 공약은 그간 국방부가 자주국방에 필요한 각종 첨단전력 확보를 위해 앞으로 10년 간 국방 분야에 GDP의 3.2~3.5% 투자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해온 것과도 맥이 맞아 떨어져 국방부로 하여금 큰 기대를 갖게 했다.
지난 5월6일 조영길 국방부장관은 자위적 방위 역량 구비 및 상호 보완적인 한·미동맹 발전 등의 내용을 담은 ‘자주국방 비전’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국방부는 이와 함께 자주국방을 달성하려면 첩보위성, 공중조기경보통제기, 3,000t급 중(重)잠수함, 공중급유기, 대형상륙함, 장거리 지대지
미사일 등 새로운 전력 무기를 조기에 확보해야 한다고 노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특히 국방부는 이를 위해 현재 국내총생산(GDP) 2.7% 수준인 국방예산을 오는 2020년까지 최대 3.5%선으로 증액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러한 신무기 도입은 정황 상 미국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6월 초 방한했던 폴 월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은 “미국이
(주한미군의) 군사능력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므로 한국도 그렇게 해야 한다”면서 “한국의 현 국방비가 GDP 2.7% 수준이지만
더 많은 투자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국방비 증액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그의 말은 곧 국방비를 증액해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구입하고 전력을
증강하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정부는 이에 즉각 팩3형 패트리어트 미사일 48기를 10년 동안 1조9,000억원을 들여 도입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1조 원 이상 힘들다”
국방부는 내년 예산으로 GDP의 3.2% 수준인 22조3,495억 원을 제출했다. 경상운영비로 14조2,030억 원, 전력투자비로 8조1,465억
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상운영비에는 인력, 부대, 장비 운영비 등이 포함된다. 전력투자비는 각종 무기 도입과 연구개발비 등을 합한 비용이다.
전력투자비 중에서 무기 도입과 관련해서 증액되는 비용은 2조 원이 넘었다.
국방부는 그간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국방비를 증액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안보위협이 높은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GDP 대비 국방비가 너무 낮아 전투력 증강의 기회를 갖지 못 했다는 것이다.
국방부가 제시하는 시대별 국방비 배분 실태를 보면 1980년대 전반 GDP 6% 수준에서 1980년대 후반에는 4~5%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1990년대 3% 수준으로 더 떨어져 2000년대는 2.7~2.8%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국방부는 1997년부터 2003년까지 정부재정이 67% 증가한 것에 비해 국방비는 26%만 증가했고, 같은 기간 중 물가상승률 23%를
고려한다면 국방비의 실질구매력은 1997년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2001년 기준으로 우리의 GDP 대비 국방비는 세계 평균인 3.5%에도 미치지 못 하고, 특히 분쟁이나 대치국 평균인 6.3%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라는 게 국방부의 주장이다.
그러나 국방부의 부풀었던 꿈은 이제 사라지고 말았다. 노 대통령이 자주국방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한 열흘 뒤인 8월25일 4개 경제일간지와
가진 합동회견에서 “국방예산을 내년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임기 중에 3.2%까지 올리려고 했는데 내년 예산이 빡빡해 아무리
짜내도 방법이 없는 것 같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국방예산을 GDP 대비 3% 이상 올리면 내년 예산증가분이 모두 국방비에 포함돼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판단에서였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내년 국방예산을 1조 원 정도 증액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1조 원은 올해 국방예산 인상분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2003년 국방예산은 17조4,264억 원으로 지난해 16조3,640억 원에 비해 1조624억 원이 증가했다.
전력증강의 큰 그림을 그렸던 국방부로서는 난감하기 그지없게 됐다. 1조 원을 가지고 2 조원 이상의 신무기 구매와 군복무 단축으로 인한
추가소요 1조7,000억 원, 사병봉급인상 소요분 2조8,000여억 원을 충당한다는 것은 넌센스이기 때문이다.
8·15 경축사를 통해 전 세계에 공표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자주국방론’은 발표 직후부터 무기구매를 위한 전략이라는 비판을 받아오다 그렇게
열흘만에 공수표가 됐다.
김동옥 기자 aeiou@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