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도 정부, 그 누구도 지금의 답답한 현실을 속시원하게 풀어주지 못할 때 인터넷 상에서 ‘미네르바’가 등장했다. 그의 날카로운 비판과 족집게 같은 전망에 많은 네티즌이 열광했고 그는 ‘인터넷 경제 대통령’으로 떠올랐다. 베일에 가려진 채 ‘현대판 홍길동’으로 활동해 온 그의 실체는, 검찰이 그를 허위 유포 험의로 체포하면서 벗겨지는 듯 했다.
하지만 검찰에 의해 체포된 미네르바의 주인공, 박모씨의 이력은 적지 않은 실망감을 줬고 급기야 박씨가 아닌 제2의 미네르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됐었다. 전문적인 경제지식과 예리한 전망에 견주어 미네르바는 50대 전직 증권맨일 가능성이 높게 점쳐 졌었다. 하지만 체포된 박씨가 ‘전문대를 졸업하고 경제학을 배운 적이 없는 31살의 무직’으로 밝혀지면서 미네르바 진실 공방이 가열됐다.
긴급체포 혐의 논란 많아
검찰이 주장한 박씨의 혐의는 두가지. 지난해 12월29일 포털 사이트 다음에 “정부가 7대 금융기관 및 주요 수출입 기업에 달러 매수를 금지하는 긴급 공문을 전송했다”는 내용의 허위 글을 올린 것과, 지난해 7월 30일 `드디어 외환보유고가 터지는구나’ 라는 제목으로 “외환 예산 환전 업무 8월1일부로 전면 중단”이라는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다. 검찰은 박씨의 혐의 근거를 ‘전기통신법 47조1항’을 적용했다. 전기통신법 47조1항에 의하면 ‘공익을 해칠 목적으로 전기통신 설비를 이용해 공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했을 때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박씨의 글이 과연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쓰여졌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또한 박씨의 혐의가 ‘허위 유포’가 아닌 결과적으로 ‘사실’로 드러남으로써 야당과 대다수 여론은 검찰이 주장한 박씨의 혐의 자체가 ‘억지’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진중권 중앙대 교수는 “검찰은 미네르바를 긴급체포한 이유로 12월29, 30일에 쓴 글이 환율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면서 “그러나 이 당시 조중동 신문 보도를 보더라도 미네르바의 글보다는 정부가 종가 관리에 나섰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고 지적했다.
미네르바 박씨가 혐의가 있다, 없다를 놓고 설전을 벌이고 있을 때, 월간 신동아 측은 “진짜 미네르바는 따로 있다”고 밝혀 미네르바 진실 공방 2라운드에 불을 붙였다. 신동아 측은 2월호에 “미네르바는 박씨 아닌 금융계 7인그룹”이라는 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신동아 측은 지금의 박씨가 미네르바로 밝혀지기 전,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체포된 박씨도, 신동아 측 모두 ‘서로 다른 미네르바’를 말하고 있었다.
미네르바의 실체 의혹 증폭
결국 신동아는 미네르바의 실체 의혹이 증폭되는 가운데, 자신들이 인터뷰했던 ‘미네르바 K씨‘를 설득해 2월호에 공개하게 됐다고 밝혔다. 신동아는 자신이 진짜 미네르바라고 주장한 K씨와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미네르바는 금융계 7인의 전문가 그룹으로 박씨는 우리와 무관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K씨는 박씨가 썼다고 주장한 ’리먼 브러더스 파산 예측‘과 ’절필 선언‘, ’주가전망 예측‘ 등이 모두 자신이 속한 7인의 전문가 그룹이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K씨는 검찰이 박씨가 사용했다고 결론을 내린 IP 주소 2개에 대해 “7명의 구성원이 함께 공유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또 “정확히는 모르지만 박씨가 IP 주소를 조작하지 않았겠냐”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물론 구속된 박씨와 그의 변호사인 박찬종 변호사는 “미네르바는 박씨 1명”이라며 “박씨가 ‘미네르바’로 올린 모든 글을 썼다”고 반발했다. 박씨의 변호인 박찬종 변호사는 “K씨가 미네르바 박씨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고 있다고 증명하지 않는 한 더 이상 가짜 논란은 의미가 없다”며 “특히 박씨는 비밀번호를 한차례도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K씨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고 있다면 다음 아고라에 아무 글이나 한 번 작성해 보라”고 요구했다. 박 변호사는 신동아 보도가 나간 뒤 “(박씨가) 신동아 보도에 대해 충격을 받고 자기를 가짜라고 모는 것에 대해 격분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신동아 측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1월22일 `미네르바 ‘로 지목된 박모(31)씨를 인터넷상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전기통신기본법 위반)로 구속 기소했다.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는 “K씨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단정 지었다. 구속된 박씨와 IP(인터넷 주소)로 등록된 모든 게시글이 박씨와 박씨 여동생 아이디로 작성됐다는 것이 그 이유. 검찰은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게재한 글 280여건을 모두 박씨 혼자 올린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K씨 등 다른 사람이 박씨와 아이디를 공유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미네르바 지인 “제3의 미네르바가 진짜”
박씨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남아있던 로그인 기록의 시간정보과 박씨가 다음 아고라에 접속한 시간이 일치하고 미네르바라는 이름으로 올린 글이 박씨 집에 있던 컴퓨터였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렇다면 신동아가 보도한 K씨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 된다. 이에 대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지만 K씨의 정확한 실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후속 취재를 더 한 뒤 3월호 기사를 통해 입장을 밝히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미네르바’ 진위 논란과 관련해 국민들은 검찰 보다는 신동아 측을 더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1월21일 발표한 주간 정기여론조사에서 어느 쪽 주장에 더 신뢰가 가는가라는 질문에 ‘현재 구속된 박모씨는 진짜가 아니라는 신동아측 주장’이라는 응답이 32.4%로 ‘현재 구속된 박모씨가 진짜가 틀림없다는 검찰측 주장’ 응답 25.2%에 비해 7.2%p 높았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무려 42.4%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50%에 육박해, 양측 모두를 그리 크게 신뢰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진짜 미네르바가 ‘박씨냐, K씨냐’를 두고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진짜 미네르바는 제3의 인물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다음 토론방 아고라에서 필명 ‘readme’‘란 네티즌은 1월20일 올린 “그래도 지구는 돌고 그래도 미네르바는 하나다”란 글에서 “진짜 미네르바는 산업은행이 추진했던 리먼 브라더스의 인수합병 추진 과정을 가장 잘 아는 인물”이라며 “신동아에 보도된 K씨 등 7명도(검찰에 구속된 박씨처럼) 가짜”라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그는 “무엇 때문에 (가짜)미네르바를 잡아들여 난리치고 엉뚱한 (가짜)미네르바 7공자 클럽까지 만드는지 모르겠다”며 (진짜)미네르바인 K를 건드리지 말라“고 검찰과 신동아를 싸잡아 비판했다.
진짜 미네르바가 제3의 인물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지만 정작 검찰은 관심이 없다. 인터넷에 허위사실을 담은 2건의 글 작성자가 구속된 박씨가 확실한 이상 검찰은 범죄자만 처벌하면 된다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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