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 씨가 우리 곁을 떠난지 벌써 3년째로 접어들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입구에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만든 백남준의 대형 비디오 타워 ‘다다익선’이 설치돼 있는데 여기에 설치미술가 강익중 씨의 작품을 총망라한 ‘삼라만상’이 ‘다다익선’을 감싸는 형태로 설치된다. ‘삼라만상’은 1984년부터 최근까지 제작된 약 6만여점의 3인치 작품과 오브제, 음향설치, 미디어 작업 등이 집대성된다. ‘멀티플 다이얼로그∞’라는 이름으로 만나는 이번 전시는 내년 2월7일까지 1년간 관객과 대화한다.
2인전 형식의 후속전시
‘멀티플 다이얼로그 ∞’는 흥미로운 전시제목에 못지않게 그 의미가 다중(多重)적이다. 우선, 1980년대 초반부터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작가 강씨의 4반 세기에 걸친 ‘3인치’ 작품들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지는 일종의 회고전인 동시에, 작고 3주기에 즈음하여 자신의 예술적 조언자(mentor)였던 고인이 된 백씨에게 헌정하는 일종의 오마주(hommage)이자, 지난 1994년 휘트니 미술관 챔피언 분관에서 역시 백씨와의 2인전 형식으로 열렸던 ‘멀티플/다이얼로그’의 후속전시기도 하다. 또한, 올해 개관 40주년을 맞는 국립현대미술관으로서는, 과천 미술관과 오랜 세월을 함께 해 온 백남준 작 ‘다다익선’과 램프코어 공간을 새롭게 해석하게 되는 ‘멀티플 다이얼로그 ∞’의 의미가 자못 새롭다.
18미터 높이의 웅자(雄姿)를 뽐내는 비디오 타워 ‘다다익선’을 감싸고 올라가는 램프코어의 나선형 벽면(총연장 200미터)에 ‘삼라만상’이라는 제목으로 강씨의 3인치 작품 6만여 점이 오브제, 영상, 음향, 관객참여를 위한 미디어 설치작업 등과 함께 선을 보인다.
예술세계 총망라
1984년 초기 유학시절부터 뉴욕 지하철을 화실 삼아 제작했던 캔버스 작업(제1호 작업도 이번 전시에 선을 보일 예정이다.)에서부터 문자 그림, 부처 그림, 목각 작업 등을 거쳐 최근작 ‘달 항아리’ 연작까지 강씨의 예술세계를 총망라하는 작품들이 선별되어 재조합된다. ‘다다익선’ 역시 백남준의 대표적 영상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비망록과 같은 작품임을 고려하면, 비록 출품작은 단 두 점이지만, ‘멀티플 다이얼로그 ∞’는 세대와 매체, 심지어 생사의 간격을 넘어서 이어지는 두 대가의 인간적 교감과 미학적 대화를 집대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램프코어는 관객들과 현대미술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는 상징적인 공간이자 전시실과 전시실들을 다채롭게 연결해주는 허브 공간이다. 이 첫 공간에서 열리는 전시의 주제가 ‘대화’라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다. 단순히 일방적인 연설이나 폐쇄적인 독백이 아닌 작가와 대중이 한데 어우러지며 주고받는 대화, 그것이야말로 현대미술이 오랫동안 추구하여온 소통의 한마당이 아닐까. 관객들은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명멸하는 백남준의 영상 메시지를, 다른 한편으로는 끝없이 이어지는 강익중의 3인치 작품들을 하나 둘 읽어가면서, 이들의 대화에 초대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