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의 기억을 모조리 잃은 ‘깔치’
드라마와 액션의 조화로운 구성 실패한 ‘조폭 마누라2 : 돌아온 전설’
2001년
가위 하나로 전국 극장가를 접수했던 ‘조폭 마누라’가 ‘돌아온 전설’이라는 화려한 부제를 달고 다시 나타났다. 전편의 명성만으로도 주목받기
충분한 ‘조폭 마누라2’는 세계적인 배우 장쯔이의 카메오 출연과 실명 위기에도 몸을 던진 신은경의 액션 연기 등으로 일찍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흥행신화 재창출의 기대를 달구었다.
이 기대의 배경에는 연출을 맡은 장흥순 감독의 존재도 빼놓을 수 없다. 감독의 전작 ‘가문의 영광’은 작년 최고의 흥행영화이자, ‘조폭
마누라’와 같은 장르인 ‘조폭 코미디’의 성공작중 한편이다.
과연 ‘조폭 마누라2’는 또 다시 극장가를 평정할 것인가? 장흥순은 흥행 불패 신화를 구축할 수 있을까? 그리고 ‘조폭 코미디’ 신드롬은
부활할 것인가?
에피소드들의
무의미한 나열
언니에 대한 사랑 때문에 평범한 여자가 되기로 결심하는 조폭 두목의 헤프닝이 전편의 큰 줄기였다면, 속편은 그 조폭 두목이 기억상실증에
걸린다는 이야기다. 세력 다툼 끝에 머리를 다쳐 기억을 잃어버린 주인공 차은진은 우연히 중국음식점 주인의 손에 구해져 철가방을 들고 스쿠터를
운전하는 ‘배달의 기수’가 된다.
기억상실증이란 소재는 진부하지만, 주인공이 조폭 두목인 만큼 재미있는 사건들을 빚기가 용이한 것은 사실이다. 싸움도 잘하고, 체력도 남자를
능가하며 칼질도 ‘경지’에 이른 중국음식점 여자 배달원이라는 상황 자체가 유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조폭 마누라2’는 그 상황의 아기자기한 에피소드가 전부인 영화다. 전편이 액션과 드라마, 코믹을 비교적 균형 있게 섞어놓은
반면, 속편은 장르에 상관없이 재미있는(혹은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장면만 나열한 듯한 인상이 강하다.
에피소드들은 즐겁지만 전혀 연결되지 않으며, 스토리의 균형은 완전히 무시된다. 기억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드라마’가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액션’은 후반부에 잠깐 나왔다가 성급히 마무리된다. 그마저도 연결이 껄끄러워 두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분열감은 통쾌한 웃음도 시원한
액션도 어느 것 하나 ‘완성’에 이르지 못하게 방해한다.
이 때문에 신은경의 터프한 캐릭터나 현란한 액션 등 전편의 매력은 거의 살리지 못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전편에서 신은경의 상대역이었던
박상면이 속편에 출연하지 않음으로 최소한의 개연성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이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다. 박상면이 빠져나간
구멍을 메우듯이 익숙한 캐릭터들을 구석구석 배치했지만 전편의 감각을 살리기는 역부족이다. 전편에서 웃음 폭탄이었던 ‘성교육’ 담당자 ‘세리’는
스토리의 흐름과 관계없이 등장하는 ‘떨떠름한 양념’으로 전락한다.
대부분의 캐릭터는 존재 가치가 없다. 고사채 역의 주현이나 금은방 역의 조미령, 준만으로 분한 최준용 등은 스토리나 ‘가족애’라는 주제의
맥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않는다. 그 절정은 이원종이 맡은 여사랑 캐릭터. 이 인물은 이원종의 이름이 안타까울 정도로 스토리 밖에서 ‘쓸모
없이’ 부유한다. 몇 장면의 단편적 웃음을 포기하더라도 완성도를 위해서는 이원종의 분량을 뺏어야 옳았다.
결점 전혀 고치지 못한 장흥순 감독
‘조폭 마누라’는 개봉 당시만 해도 조폭을 미화했다는 비판과 함께 저질코미디라는 혹평을 받아야 했다. ‘조폭 마누라’가 흥행돌풍을 몰고
간 딱 1년이 지난 후 나타난 ‘가문의 영광’은 같은 요소들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비판을 받지 않았다.
최소한 조폭을 미화했다든지 은어가 난무한다든지 하는 소재 자체에 대한 비난은 드물었다. 1년의 시간동안 ‘조폭 코미디’는 충무로를 지배하는
시류가 됐고 폭력배, 욕, 액션 등의 요소는 한국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흥행원칙이 됐다. 쏟아지는 아류작 속에서 상업 코미디의 저질화에
대한 평단의 비평 감각도 무뎌졌다.
‘조폭 마누라’ 전편과 후편의 차이는 한국 코미디 2년간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소재나 전반적인 가벼움을 비난할 만큼 상업적
영화에 인색했던 면도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평단과 관객의 요구조건이 까다로웠다. 이제는 더 이상 ‘웃음’에서 스토리나 메시지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코미디 전체의 시대적 흐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짜임새를 갖춘 코미디가 더 큰 ‘웃음’을 준다는 명제는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다. 전편도 전개 방식이 진부했고,
이데올로기도 모순적이었다. 하지만, 여자 조폭의 ‘진짜 여자’가 되기 위한 고전분투나, 조폭을 마누라로 둔 박상면의 전전긍긍은 폭소를 터뜨리기에
충분했고, 액션도 짜릿했다. 적어도 속편에 비한다면 그렇다.
‘조폭 마누라2’가 흥행에 성공한다면 이 색다른 ‘여자 조폭’ 시리즈는 3편으로 쉽게 이어질 것이며, ‘조폭 코미디’의 맥 또한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한국 코미디는 질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영화의 완성도와 흥행이 무관하다는 또 하나의 선례를 남길 것이기 때문이다.
이 논리는 장흥순 감독이 ‘가문의 영광’의 단점을 전혀 고치지 않고 ‘조폭 마누라2’에 고스란히 드러낸 것과 같다. ‘가문의 영광’이 흥행에
성공했기 때문에 감독은 연출 스타일의 단점을 반성할 필요가 없었다. ‘조폭 마누라2’가 관객에게 사랑 받는다면 한국 코미디의 운명도 장흥순
감독과 마찬가지로 ‘딱 그 지점’에 머무를 것이다. 다시 돌아온 ‘조폭 마누라’는 ‘전설’의 부활은커녕, 카메오로 출연하는 장쯔이의 이름값
만큼이나 전편의 명성이 아까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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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