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파병 정지작업 중?
미, 5,000명 10월24일까지 파병 요구…
정부, 파병 선물 주고 무엇 받느냐 고민
미국이
구체적인 숫자까지 제시하면서 이라크 파병을 요청했다. 한국 정부는 파병과 관련, 공식적인 결론을 내리지는 않은 상태. 여론의 추이를 살핀
다음 결정하겠다는 게 표면에 내세우는 정부의 입장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여론을 수렴하고 참고하겠다는 것이지, 각종 여론조사나 직접
국민투표에 부쳐 도출된 결과를 따르겠다는 것은 아니다. 이는 지난 4월 1차 파병을 하면서 홍역을 치른 것을 염두에 둔 정치적 계산이다.
실제로는 이미 파병 쪽으로 정부가 방향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혁 갈등 첨예
2차 파병안을 두고 갈수록 진보와 보수간 갈등이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 9월27일 ‘이라크 파병반대 비상국민행동’(이하 비상국민행동)은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인천 부평역 광장, 부산 서면 등지에서
국제반전공동행사를 열었다.
비상국민행동은 전국민중연대, 참여연대 등 351개 진보 시민·사회단체들로 결성됐다. 이들은 “이라크전쟁은 이라크에 평화가 아니라 보복과
테러의 악순환을 가져왔을 뿐”이라면서 “미국의 파병 요청은 이라크전쟁의 책임과 뒷수습을 국제 사회에 떠넘기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행사가 열렸던 9월27은 국제반전행동의 날로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지역과 미국, 이라크, 팔레스타인 등에서 파병반대 시위가 동시에
개최됐다.
한편 보수단체들은 그 하루 전인 9월26일 서울 광화문 열린시민마당에서 반핵반김청년본부가 주관하는 ‘이라크 파병지지 국민대회’를 열었다.
민주참여네티즌연대, 북핵저지시민연대, 자유시민연대 등 보수단체들은 “국제적 위상과 국익을 위해 파병해야 한다”면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파병을
서두르라고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9월28일에도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이라크 파병지지 집회를 개최했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이 수복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이날을
행사일로 잡았다고 주최측은 설명했다.
국익
고려해 파병 이미 결정?
지난 4월, 파병반대 여론이 득세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제안과 거의 동시에 파병을 결정했던 노 대통령은 지지세력의 이반이라는 대가를 치렀다.
노 대통령은 이번에는 시간적인 여유를 두고 여론의 향방을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9월25일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국내 여론과 국제상황, 국익 등 주변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조사, 검토한 이후에
판단해야 하므로 서둘러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확고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윤 대변인은 “청와대와 국가안전보장회의가 파병문제와 관련해 아직까지 판단의 근거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면서 “국민여론을 모으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현단계에서 파병 여부와 파병 결정 시기 등과 관련해 특정한 판단을 갖고 있지 않다”며 이같이 밝혔다.
하지만 정부는 파병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9월24일 부산·울산·경남지역 언론 합동회견에서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와 관련해 “실리와 국익을 위해 (파병)한다면 한반도 안정이
핵심적인 국익이라고 생각한다” 고 말해 파병을 북핵 6자회담과 연계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파병을 하는 대신 한반도의 평화를 선택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정부는 파병이라는 선물을 주고 무엇을 받느냐를 두고 고민하고 있는 것. 북핵으로부터 안전한 우산을 제공받는 것 외에 정부는 현대건설
등 국내기업이 이라크에 공사를 해주고 못 받은 미수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키로 했다.
이를 위해 10월4일 이라크 전후 복구사업 민관 대책반 회의를 열어 이라크 미수채권의 회수 방안과 전후 복구사업 참여 방안을 논의키로 했다.
현재 이라크 미수채권은 민간기업 16억3천7백만 달러, 수출보험공사 등 공기업 6천4백70만 달러 등 총 17억1백70만 달러 정도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미 이라크 정권이 해체된 마당에 미수금을 그냥 돌려달라는 것보다 파병을 한다면 명분이 서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한 정부는 이후 250억~1,000억 달러에 이르는 이라크 전후복구사업에도 파병 후 쉽게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국익과 관련해 연세대 정외과 김기정 교수는 “경제적 이익보다 무형적이면서 장기적으로 미칠 국익을 추구해야 한다”면서 파병 움직임을
비판했다. 김 교수는 경실련이 9월23일 주최한 ‘이라크 전투병 파병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에서 “명분이 없는 전쟁에 전투병을
파병하고 얻을 단기적인 이익이 있을지 모르지만 잃을 것이 보다 많다”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김 교수는 파병에 드는 경제적 비용(연간 약
4.000억원), 인명피해, 도덕성의 추락 등을 우려했다.
정현백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도 “현재 부시 미 대통령의 재선은 힘들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라면서 “미국의 정부가 곧 바뀌는데 그 때도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파병 전제로 한 현지조사단”
이라크로 현지조사단을 보낸 것도 파병을 위한 정지작업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라크 현지조사단은 9월24일 9박10일의 일정으로 이라크로 떠났다. 문제는 이 조사단의 구성. 조사단은 국방부 관계자 6명과 외교부 3명,
국가안전보장회의 1명 등 정부측 인사 10명과 국제관계전문가, 국방안보관계전문가 등 민간측 인사 2명으로 구성됐다. 이 조사단의 단장은
강대영(육군 준장) 국방부 정책기획차장이 맡고 있다.
강 단장은 “이라크와 주변국의 정세파악과 외적요인, 안전실태를 조사에 역점을 두는 한편, 이라크 재건계획과 향후 전망, 동맹국에 대한 인식
등도 파악할 것”이라며 “조사 내용은 차후 정책결정에 기초자료로 사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민노당 등은 조사단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문제삼았다. 대부분이 정부측 인사로서 파병을 위한 현지조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
참여연대는 이어 “한두 명의 민간인사를 상징적으로 참여시키는 수준이 아닌 다양한 분야 전문가가 참여하는 종합적 조사단 구성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동당도 성명을 통해 “이미 파병을 전제로 조사단을 구성한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현지에서도 이라크 방문기간 동안 미군 군용기를 이용하기로
함에 따라 미군의 주도 아래 현지조사가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했다.
한편, 미국은 이라크에 5,000명 정도를 파병해 달라고 구체적으로 요구하며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부차관보는
9월23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재계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한국의 파병 규모는 5,000명 선이 적절하다”면서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한·미 연례안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하는 10월24일 이전까지 파병결정이 내려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김동옥 기자 aeiou@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