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마차가 하나의 기업?
대형화 기업화 우세…세금 안내고 고소득 챙겨
밤거리를
지나다 보면 어디서나 쉽게 눈에 띄는 게 ‘포장마차’다. ‘포장마차’는 서민적 정서가 연상된다. 언론에서는 고위직의 정치인이 포장마차에
갔던 일을 미화시켜 내보내기도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삶의 고통을 표현하고 싶을 때, 으레 포장마차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모 프로그램에서는 유명 연예인이 포장마차에서
난 수익금을 기금모금에 사용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여기서 비춰진 포장마차는 한결같이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안에는 수십개 되는 의자와 탁자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불경기 일수록 포장마차가 성행하기 마련이지만, 요즘의 포장마차는 예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서민을 대표하는 포장마차가 갈수록 대형화·기업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달 수입이 수천?
서울시는 현재 시내 노점 1만5,800여개 가운데 대형·기업형 포장마차가 15% 정도인 2,300여개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 대형·기업형
포장마차가 밀집된 곳은 종로구 관철동, 종로3가에서 5가 사이, 중구 조선호텔과 롯데백화점 주변, 서소문로 유원빌딩 주변, 무교동 코오롱빌딩
주변 등지다.
서울 시내 대형 포장마차가 밀집된 중구 소공동 조선호텔 주변 일대를 둘러보았다. 차로 방향 쪽의 인도 절반 가량을 차지하며 몇 개의 천막을
이어 붙인 초대형 포장마차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불경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포장마차엔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중 한 곳은 마치 관광명소라도 되듯, 붉은 천막에 일본어로 된 메뉴가 빼곡이 써 있다. 20여가지가 넘는 메뉴 가격은 대체로 1만~1만5,000원
사이. 서민들이 이용하기에 저렴한 편은 아니다. 20~30여개의 탁자가 군데 군데 놓여있고 손님을 맞는 주인과 종업원이 바쁘게 움직인다.
4~5년 전부터 이곳에서 장사를 해 왔다는 주인은 “이곳이 워낙 유명한 곳이라 멀리서도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다”면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정·재계 인사는 물론, 외국의 대통령까지 왔었다”고 자랑하듯 얘기한다. 밤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영업을 하는 이곳은 주인 내외와
2명의 아르바이트생과 1명의 조리장이 운영하고 있었다.
대형·기업형 포장마차는 아르바이트생 3~4명까지 두고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소위 포장마차 ‘주인’개념이 아닌 한 기업의 ‘사장’인 것이다.
한달 수입도 많게는 수천만원까지 벌어들인다고 한다.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불법으로 큰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셈이다.
기득권 행사
이들로 인해 시민의 보행권이 침해되고 꼬박꼬박 세금 내며 정당하게 영업하는 인근의 상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또 먹고 살기에 빠듯한 생계형
포장마차들은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최근 포장마차는 생계형보다 기업형이 주류라는 것이 특징”이라면서 “아예 도로변이나 인도를 넓게 잠식한 대형화·기업화된
포장마차가 많이 생겨 여러 가지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들은 불법으로 노점행위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 번 그 자리를 차지하면 마치 그것이 자기 권리인 양 행세한다. 세금도 내지 않는 거리에
불법으로 점령하고 임의대로 자릿세까지 받아내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서울 시내 대형 포장마차 한 곳의 자릿세는
수천만원에서 억단위를 호가할 지경이다. 특히 하루 유동인구가 수만∼수십만명에 이르는 강남과 종로 일대는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보통
노점상간의 내부 직거래를 통해 은밀히 이뤄지기 때문에 정확한 액수를 알기는 매우 힘들다는 게 주변 노점상들의 얘기다. 일부 노점상은 생활이
어려워서라기보다는 일단 목 좋은 곳에 판을 벌이기만 하면 편하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노점상도 대형화되면서 목소리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노점상들이 자체적으로 결성한 노점상연합회의 보호와 통제를 받는다. 이밖에도 전국노점상연합(이하
전노련), 전국노점상총연합회, 서울노점상연합회 산하에 지역과 지부가 소속돼 체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노점상연합회는 관할구청이나 경찰같은 단속기관과 점정 협의를 통해 노점상들의 질서를 자율통제한다.
하지만 한 노점상은 “지역 노점상연합회는 그 지역의 노점자리 배정에서 업종 조정까지 전권을 갖고 있어 자율통제라는 명목이 무색할 정도다”라고
말한다.
일부 대형 노점상들 중에는 조직폭력과 연계돼 운영되고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생계형 포장마차의 경우 설 자리가
더욱 없어지고 피해를 보고 있다.
구멍뚫린
‘단속망’
대형·기업형 포장마차는 보도와 차도를 무단 점거하여 시민 생활피해와 도시미관 저해 등으로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교통을 방해하고
쓰레기와 오폐수 무단배출, 비위생적인 식품조리 및 판매 등으로 시민안전을 위협하는 등 시민생활에 막대한 피해와 불편을 주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세금을 내며 적법하게 영업하고 있는 인근 점포와의 영업마찰 등으로 단속을 요구하는 민원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면서 “특히
장사가 잘 되는 장소를 차지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쟁탈전까지 발생하고 있어 불법과 무질서의 표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 8일부터 이들 대형·기업형 포장마차에 대한 특별단속에 나섰다. 보통 기준이 2평방미터 이상으로, 전체 노점의 52%(8200여개)에
달한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노점이 불법이라는 건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지만 사라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노점상 단속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노점상은 불법이다. 도로교통법과 도시계획법, 건축법, 식품위생법, 소비자보호법, 폐기물관리법 온갖 법망에 다 저촉된다. 그러나 기업형 포장마차들은
규모에 걸맞게 기동성까지 갖춰 단속이 쉽지 않다는 것이 서울시측의 설명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특정 지역의 기업형 포장마차를 단속하기 위해 경찰 1개 중대와 구청 단속인력을 동원해 10분 만에 노점을 걷어냈으나 15분
뒤 다시 노점이 서고 10분 만에 손님이 가득 찼다”며 단속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특히 최근에는 차량을 이용한 노점이 크게 늘어나 단속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 단속을 하면 차를 몰고 사라졌다가 순식간에 다시 와서 영업을
하기 때문.
하지만 인근 주민들은 “계속 그 자리에서 유명지에 속할 정도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은 당국의 감독 소홀이 아니냐”는 주장과 함께 “눈 감아주기식
단속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고 불만을 토로한다.
노점상의 단속근절을 위해 서울시는 전업지원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나 사실상 푼돈이 아닌 목돈을 만지는 대형 포장마차에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단속에 적발되면 강제수거는 물론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범칙금이 현행 최고 50만원으로 정해져 있어 사실상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단속에 걸려도 하루에 버는 수입이 훨씬 크기 때문에 차라리 얼마 안되는 벌금 물고 말지 하는 식으로 계속해서 장사를 한다는 것.
서울시는 기업형 노점에 부과하는 벌금을 현재 5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올리고 단속을 강화한다는 방침이지만 시민들이 노점을 이용하지 않는
이상의 해법은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시민이 불법포장마차를 이용하면 할수록 포장마차가 더욱 증가하여 시민의 보행권과 안전이 보장될 수 없기 때문에 ‘불법 포장마차 이용
안하기’를 홍보하여 시민의 협조를 구할 예정이며 시민으로부터 ‘불법 포장마차 신고’를 받을 계획이다.
홍경희 기자 khhong04@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