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되기 싫었던 어른을 위한 우화
‘마흐말바프 필름 하우스’의 엄마,
마르지예 메쉬키니의 ‘내가 여자가 된 날’
아빠가 만든 영화학교에
온 가족이 동기동창으로 입학해 다섯 식구가 모두 영화 감독이 된 마흐말바프 가족. 놀라운 영화적 성취와 영화만큼 드라마틱한 제작 과정으로
화제가 된 마흐말바프 가족의 작품이 예술영화 전용극장 씨네큐브에서 릴레이로 상영된다.
‘내가 여자가 된 날’은 그 첫 상영작으로 엄마 마르지예 메쉬키니가 메가폰을 잡고, 아빠가 각본을, 딸이 스크립터, 아들이 편집을 맡은
작품이다. 이란 여자의 삶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엮은 이 영화의 문법은 헐리우드물에 익숙한 관객에게 낯선 것일 수도 있다. 거기다 페미니즘
영화라는 타이틀은 얼마나 거북한가. 하지만, 미리 겁먹거나 선입견을 갖는 것은 금물이다.
간결한
일상적 언어, 시적 영상
평범한 생활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일상적 화법으로 깊은 철학을 담아내는 것이 이란 영화의 묘미. ‘내가 여자가 된
날’ 또한 이란 영화 특유의 향기와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인생의 국면을 셋으로 나누어 삶 전체를 압축하는 독특한 구성이나, 간결한
언어로 삶을 사유하는 명상적 깊이, 곱씹을수록 새로운 시적 영상은 극장을 나온 뒤에도 한참동안 영화적 이미지를 재생산 한다.
아홉 살 생일을 맞아 갑작스럽게 주어진 규범들 때문에 당황하는 소녀, 자전거 경주를 포기하라고 소리치는 남편과 가족들의 협박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페달을 밟는 젊은 부인, 전 재산을 털어 평생 가지고 싶었던 물건들을 잔뜩 사는 할머니. 세 여자의 이야기는 독립된 에피소드로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한 여자의 일대기를 압축해 놓은 셈이 된다. 전편의 인물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영화의 메시지는 완벽하게 정리되고, 누적된 감정은
승화된다.
무엇보다도 페미니즘 영화가 빠지기
쉬운 구호와 성토의 함정을 슬기롭게 빗겨나가 상징과 우화의 힘으로 호소하는 것이 이 영화의 결정적 미덕. 우화적인 설정은 ‘내가 여자가
된 날’이 단지 이란의 여성에 대한 영화가 아님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영화는 제도의 억압과 구속, 사회화의 고통을 경험한 모든 인간을
위한 우화인 것이다. 힘들게 왼손잡이를 교정 받은 경험, 젓가락질을 제대로 못해 꾸지람을 들은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에 공감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란
영화, 순수의 힘
이란 영화의 또 하나의 매력이라면 자연 풍경이다. 그 동안 이란 영화에 등장하는 산골마을, 황토빛 골목길에 마음이 포근했던 관객이라면 ‘내가
여자가 된 날’의 바다와 하얀 모래밭에서 정신적 자유를 느낄 것이다. 자연 그 자체만큼이나, 이란 영화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 엄청난 제작비와 제작편수를 자랑하는 헐리우드 영화나 그 헐리우드 제작 기법을 답습하는 한국 영화가 땀흘려 이룩한 노하우가
이란 영화의 순수성 앞에서는 무력해지는 느낌이다. 기술적으로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이 영화의 울림은 결코 모방할 수 없는, 깊은 사색과
축적된 문화의 결과물인 것이다. 최근 정형화된 틀과 흥행 공식에 매달려 정체된 한국영화계 또한 내면에서 해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영화에 바람난 마흐말바프 가족 | |
1996년 마흐말바프가의 당시 16살이던 큰 딸 사미라는 영화공부를 원했고 평범한 학교 생활은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딸의 결심 앞에 아빠 모흐센은 제도적인 교육으로는 아이들에게 영화를 가르칠 수 없다고 판단, 자신의 이름을 붙인 학교를 세운다. 학교는 가족 전원과 친구들, 총 여덟 명의 학생을 맞이해 그들의 집에서 소박하게 출발한다. 가족과 함께 영화를 만들고 영화를 통해 자녀들을 교육시킨다는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원칙에 따라 이들에게 영화는 곧 삶이 된다. | 영화학교를 세울 때, 모흐센은 이미 10편 이상의 영화를 만든 대가였으며 이제는 다섯 식구 모두가 감독이 됐다. 올해 최연소 베니스영화제 진출감독으로 화제에 오른 15살 막내 ‘하나’는 이미 8살 때 로카르노 영화제에 단편영화를 내놓은 감독이다. ‘마흐말바프 필름 하우스’는 ‘마흐말바프 영화 학교’의 제작파트다. 한 집 안에 학교와 제작사를 동시에 세운 것. 이들은 영화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집과 자동차, 편집기조차 팔고 또 되찾는 일을 반복하면서도 순수성을 훼손하는 제작비는 받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집스럽게 지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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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