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에 죽고 삼겹살에 산다
맛있게 먹고 멋있게 사는 그들, 이색 동호회 ‘삼겹살’
매주 금요일 맛집을 찾아다니며 삼겹살을 즐기는 동호회의 정기모임 '삼겹살데이' 현장. |
지글지글 고기 굽는
소리가 고소한 서울 명동 삼겹살 전문점 ‘코기코기’. 웃음도 많고 목소리도 큰 10여명의 남녀가 삼겹살을 맛깔스럽게 먹으며 소주잔을 부딪치고
있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면 친밀감이 높아진다고 했던가. 더할 나위 없이 유쾌하고 다정해 보이는 이들은 삼겹살에 죽고 삼겹살에 사는
동호회 ‘삼겹살’(www.freechal.com/pigmoim)의 ‘삼겹데이’ 참석 회원들이다. ‘삼겹데이’란 매주 금요일 소문난 맛집을
찾아 삼겹살을 즐기는 동호회의 정기모임을 말한다.
“삼겹살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
삼겹살을 좋아하지 않는 한국인은 별로 없지만, ‘삼겹살’ 회원들은 그 사랑이 유별나다. 회원 박미정(28) 씨는 “공휴일이 겹치거나 동호회의
다른 일정 때문에 모임이 없는 금요일은 우울하다”고. 박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이혁찬(31) 씨는 “모임이 없는 금요일은 혼자라도 집
앞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꼭 먹고 들어간다”고 말했다.
운영자 유지영 씨(22)는 “모임에서 평균 한 사람당 3인분 정도의 양을 먹는다. 운영자인 나도 ‘과연 삼겹살 커뮤니티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며 웃었다. 회원 12명이 삼겹살 5kg을 싸들고 리조트에 들어가 하루종일 삼겹살만 먹은 경험도 있다니 삼겹살에 대한 이들의
애정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된다.
거의 매일 삼겹살을 먹는다는 유씨는 “메뉴가 풍부해 얼마든지 다양하게 먹을 수 있다”는 점을 삼겹살의 장점으로 꼽았다. 유씨의 말에 따르면
시판되는 삼겹살 메뉴는 13가지 가량 되지만 응용요리는 셀 수 없을 만큼 방대하다. 이씨 또한 삼겹살 애찬론을 펼쳤다. “삼겹살은 대표적인
서민 음식 아닌가. 맛도 좋고 피부에도 좋다. 더구나 삼겹살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
이씨는 ‘삼겹살 비만론’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고단백 식품에다 야채를 많이 곁들이기 때문에 의외로 비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회원이 표준 몸매며, 특히 운영자 유씨는 모델 같은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유씨는 야채를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삼겹살을
실컷 먹고도 뚱뚱해지지 않는 비결이라고 귀띔했다.
바짝 익힌 후 뒤집어 육즙 스며들게 해야
마니아 답게 회원들은 삼겹살 맛에 대해서도 민감했다. 유씨는 “삼겹살을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바짝 익힌 후 뒤집는 것이 중요하다. 살짝
익은 상태에서 뒤집으면 육즙이 쏟아져 맛이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김경완(29) 씨는 “기름을 완전히 뺀 솥뚜껑, 자갈, 옹기 삼겹살”을,
박씨는 “차돌박이 맛이 나는 대패 삼겹살”을 권했다.
이씨는 삼겹살 고수답게 “6㎜ 순생삼겹살을 따라올 것이 없다”고 일축했다. “가장 씹는 감촉이 좋고 익히기 좋은 두께가 6㎜다. 적당한
세기의 불에 한 번만 뒤집어 익힌 6㎜의 순생삼겹살은 삼겹살 고유의 맛을 가장 완벽하게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들이 ‘삼겹살’을 좋아하는 것은 단지 삼겹살 때문만이 아니다. 회원들은 다른 장소에서보다 유독 동호회 모임에서 삼겹살을 많이 먹는다고
입을 모았다. 모두가 맛있게 먹으니 식욕이 살아나기도 하지만, 편안하고 흥겨운 분위기가 삼겹살 맛을 북돋운다는 것.
이씨는 “삼겹살 하나를 매개로 삶의 애환과 단상을 서로 교류한다는 것이 좋다”며 동호회의 결정적 매력은 인간적 유대감이라고 밝혔다. 어느
회원의 말처럼 “각박한 대도시에서 클릭 하나로 만나서” 맛있는 음식을 즐겁게 같이 먹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기적인 것이다.
먹음직스럽게 익어가는 삼겹살(왼쪽) 작년 7월 1주년을 기념해서 야외에서 열린 삼겹살 파티 장면. |
유령회원은 용납 못해
‘삼겹살’의 자랑인 가족적인 분위기는 꼼꼼한 운영의 결과다. 2001년 7월에 만들어진 이 동호회는 항상 50~60여명의 회원수를 유지한다.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동호회 게시판에 추천 맛집 2군데를 명시해야 하고, 운영진의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야 준회원의 자격을 부여받는다.
따라서 두어달을 가입대기 상태로 기다리는 사람도 많다.
정회원으로 승급되기 위해서는 더욱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름하야 333원칙. 모임 참석 및 후기 작성, 맛집 추천을 모두 3회
이상 해야한다. 정회원까지 올라가도 활동이 불성실하면 제명된다. 유령회원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삼겹살’의 운영 지론이다. 그
결과 회원수는 현재 48명으로 소수지만, 정기모임에 참석하는 인원은 30~10여명으로 몇 천명을 거느린 동호회와 비슷하다.
‘삼겹데이’ 외에도 정회원을 위한 ‘공짜 삼겹데이’가 매달 열리고, 모임 및 협찬 물품을 지원할 공식 후원 업체를 현재 선정중이다. 운영자
유씨는 “맛있고 멋있는 커뮤니티를 꿈꾼다”며, ‘삼겹살’에 대한 지향점을 분명히 했다. “평균 10:1~30:1까지의 경쟁률을 뚫고 가입한
회원인 만큼 ‘삼겹살’ 식구 모두가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의 고향’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삼겹살’ 운영자 유지영 씨가 추천하는 맛집 베스트 4 |
토실배기 고바우덩어리생고기 |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