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30일 1차 공개변론을 시작으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심리가 17대 총선 정국 안에서 3차례 열렸다. 1차 변론당시 소추위원측에서 총선이후 연기를 요청했지만 헌재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3차 공개변론 결과 헌재가 증인 채택과 동시에 증거 수집 절차에 들어감에 따라 탄핵심판 사건이 각하될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
헌재는 또 4, 5차 공개변론을 총선이후인 오는 4월 20일과 23일로 결정했다.
헌재, 측근 증인신문 준비 착수
헌법재판소는 4월13일 최도술 씨 등 증인신문 대상 4명에게 변론 출석을 통보하고 서울 지법에 ‘측근비리’ 관련 재판 기록 사본을 송부해 줄 것을 촉탁하는 등 20일, 23일로 예정된 증인신문 변론 준비에 착수했다.
주선회 주심재판관은 3차 변론에서 “변론에서 증거방법으로 채택된 증인들과 사실조회, 문서 및 기록사본 송부 등은 어제 모두 통보 혹은 신청이 됐을 것”이라며 “증인에 대한 신문사항은 소추위가 작성하는 대로 헌재와 대리인단에 제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헌재는 최도술.안희정.여택수씨 등 측근 3명과 신동인 롯데쇼핑 사장 등 4명의 증인이 변론 당일에 출석치 않을 경우, 재출석 요구 여부와 그 시점 등은 평의를 통해 다시 논의할 예정이다.
헌재가 이날 최도술씨 등 대통령 측근 인사 3명과 신동인 롯데쇼핑 사장을 증인으로 채택한 것은 ‘측근 비리’ 부분에 대해서는 국회 소추위원 쪽 의견에 ‘일단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헌재의 의중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다만 이들은 모두 노무현 대통령 재임기간 중에 비리를 저지른 경우로, 대통령 당선 전에 불법 자금을 받은 사실은 심리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최씨와 안씨는 대선 뒤에도 정치자금 등을 받았고, 여택수(39·구속)씨는 대통령 당선 뒤인 지난해 8월 신 사장한테서 3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를 사고 있다. 헌재는 이들 관련 사건의 기록을 보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재판기록 가운데 일부를 복사해서 보내달라는 ‘기록 인증등본 송부촉탁’을 했다. 문병욱 썬앤문그룹 회장 등 5명에 대한 증인 채택을 일단 보류한 것은 재판의 효율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소추위, 대통령 대리인단 측근비리 변론 준비 박차
소추위원 대리인단은 헌재가 측근비리 관련 재판기록의 사본 송부를 요청했다고 통보받는대로 서울지법에서 필요한 기록을 특정하기로 했으며 증인신문이 진행될 4차.5차 공개변론 준비작업도 벌이고 있다.
소추위측 대리인단 관계자는 “측근비리 재판기록은 헌재로부터 연락을 받는대로 법원에 가서 필요한 기록을 선정하게 된다”며 “증인 4명에 대한 신문 사항은 이미 작성됐고 개략적인 신문내용을 내주 중으로 대통령 대리인단측과 헌재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변론일까지는 세부적인 증인신문 전략을 논의하게 될 것이며 신문 내용은 증인들의 비리사실을 확정한 뒤 대통령의 사전 인지나 공모관계를 밝히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대통령 대리인단은 당초 주장과 달리 증인신문이 채택됨에 따라 변론 당일 증인들에 대한 반대신문을 준비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선회했다.
대리인단의 한 변호사는 “재판부가 증인신문을 채택한 것은 측근비리 일반이 아니라 대통령의 비리공모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며 “변론일에 반대신문을 통해 공모관계가 전혀 없다는 것을 밝혀낼 것”이라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방송사측에서 제출할 사실조회 내용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방송기자 클럽 기자회견에서 밝혀야 할 점은 기자가 먼저 질문지를 냈는지 아니면 청와대가 언론에 질문을 요구 혹은 유도했는지 여부”라며 “우리가 아는 한 후자일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측근비리 핵심쟁점 부상
헌법재판소가 9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과 관련해 최도술ㆍ안희정 씨 등 측 근비리 연루자들을 증인으로 채택함에 따라 측근비리가 탄핵심판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헌재는 특히 ‘탄핵사유 증거수집이 국회에서 이미 완료됐어야 하며 지금까지 제시 된 증거만으로 충분한 심리가 이뤄질 수 있는 만큼 추가 증거조사는 필요없다’는 대리인단 주장과 달리 국회 소추위원 측 문제 제기의 타당성을 적극 인정했다는 점 에서 주목된다. 국회 소추위원 측이 제기한 세 가지 탄핵사유 중 선거 법 위반과 관련한 공방은 어느 정도 예상됐다.
그러나 헌재가 이날 측근비리와 관련한 증인 증거 등을 전격적으로 채택하고 법원 에 측근들의 공판자료를 요청함에 따라 탄핵심판 공방의 무게가 ‘선거법 위반’ 여 부에서 ‘측근비리’ 쪽으로 급속히 쏠릴 전망이다.
물론 노 대통령이 검찰 수사 등을 통해 대선자금 내지 측근비리와 직접 연루돼 있 다는 단서나 증거가 확보돼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탄핵 사유로 직결될지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증인으로 채택된 4명 중 가장 핵심 인물은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다.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팀의 수사에서 대통령 측근들이 연루된 대부분 의혹이 사실무 근으로 결론났으나 최씨의 경우 비리가 추가되는 등 여러 추가범행 의혹을 받고 있 기 때문. 따라서 20일로 예정된 4차 공개변론에서는 소추위원 측의 추궁이 최씨에게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선거법 위반은 서류 검토만
헌재는 또 이날 공판에서 유지담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 선관위 관계자 3명의 증인신청을 기각해, ‘선거법 위반’ 부분은 서류 심리만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헌재가 경제파탄과 관련해 “각종 경제지표를 소추위원 쪽이 재판부에 제출하는 것으로 대신한다”며 국무회의 자료 등에 대한 사실조회 신청을 기각한 대목은, 경제파탄 사유가 심판 과정에서 크게 작용하지 않을 것임을 짐작케 한다.
헌재는 지난해 12월 노사모 주최 집회에서 나온 노 대통령의 시민혁명 발언 등 11건의 정치공세 성격의 다른 증거 신청과 노사모 활동과 관련해 명계남씨 등의 증인 신청은 모두 기각했다.
헌재가 이날 채택된 증인들의 심문기일을 오는 20일, 23일로 잡음에 따라 이르면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에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헌재가 일단 보류한 증인들을 다시 채택해 추가 변론기일을 잡을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 8일 평의에서 증인 채택 여부 뿐 아니라 본안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증인 심문을 마친 뒤 한두차례 평의를 거쳐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