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강쇠와 옹녀
제 5강 호녀(好女)
방랑시인 김삿갓은
산천경계를 구경하면서 천하를 주유했다. 고생도 많지만 때로는 즐거운 일도 더러는 있었다. 그는 단천 땅을 지나갔다. 단천에 한 노처녀가
있어서 사람들이 이 노처녀를 김삿갓한테 중매를 섰다. 그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김삿갓이 장가를 들었다. 그로서는 횡재가
아닐 수 없었다. 신랑신부는 다른 신혼부부들이 하듯 식을 올리고 첫 밤을 맞았고 그 첫 행사도 치렀다.
첫 행사를 치른 다음 이 방랑시인의 짓궂은 장난 끼가 발동했다. 그는 붓을 들어서 아내의 치마폭에다 한 수의 시를 휘갈겨 썼다.
모심내활 필과타인(毛深內闊 必過他人)
털이 깊고 그 속이 넓으니 틀림없이 이미 다른 사내가 지나갔도다.
신랑이 휘갈겨 쓰는 시를 본 신부는 어이 없어했다. 가세가 가난해서 나이 많도록 시집을 못 가고 노처녀가
되었다고 신랑이 처녀성을 의심하니 억울하기도 하다. 그러나 신부는 아무 말 않고 신랑의 붓을 넘겨받아서 한 폭의 시로 화답한다.
남산황율불봉개,계변양류불우장(南山黃栗不蜂開, 溪邊楊柳不雨長)
남산의 누런 밤송이 벌이 쏘지 않아도 열리고, 시냇가 버들가지 비가 오지 않아도 자란다오.
역시 시인의 짝이 될만한 여인이었다. 남녀의 정분이 더욱 농하고 짙어질 수밖에. 누런 밤송이 저절로 열리고
버들가지 스스로 자라듯 나이가 들어 성년에 이르면 여인의 몸도 이와 마찬가지인데, 속 좁은 사내들은 그것을 까탈 잡아서 처녀니 아니니 투정을
한다. 털이 깊고 안이 넓으면 처녀가 아니라고!
이 시를 보더라도 역시 그곳의 숲은 길고 깊어야 한다고 우리는 믿어왔고, 자고로 그곳의 숲이 길고 깊은 것을 일품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이런 고정관념이 반드시 옳을까.
필자는 ‘진시황제’라는 장편 역사 소설을 쓰면서 중국 대륙에서는 사내들이 좋아하는 호녀(好女)의 개념이 우리와는 크게 다르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지금으로부터 2천 3백여 년 전에 살았던 시황제는 아방궁을 짓고 그곳에 3천 궁녀를 두었다 하니 불가불 그 당시 중국대륙의 성문화(性文化)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러 기록과 전적을 상고해본 결과 저들은 진시황제 이전에 이미 성에 대한 경전과 춘화도(春花圖) 따위를 대나무에 새겨서 그것을 소중하게
보관해 왔다는 것을 알아냈다. 대나무에다 새긴다 하여 이것을 일컬어 죽간(竹簡)이라 하는데, 종이가 없던 시절에는 이 죽간이 종이를 대신했다.
옛날의 사관(史官)들은 이 죽간에다 임금의 일거수일투족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록했고, 이것이 뒷날 그 임금의 치적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었다.
그래서 폭군들은 가끔 사관을 협박하여 죽간의 내용을 고치려 하였으나 이들은 목숨을 내놓고 이것을 지켰다. 이른바 직필(直筆)이다. 곡필과
직필은 이렇게 다르다. 절대 군주 밑에서도 직필은 꺾을 수 없었는데…
각설하고, 민간에서는 성에 대한 것도 이 대나무에다 새겼고, 이것이 성을 다룬 경전의 바탕이 되어서 저들은 그 후로 ‘소녀경’, ‘황제내경’,’옥방비결’따위의
성서(性書)를 남겨서 그것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온다. 그런데 이 성서들은 한결같이 호녀의 조건으로 반드시 털이 없는 여인을 꼽았으니
이것 역시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으리라.
‘소녀경(素女 )’에서는 호녀를 사내들이 꺼리는 오녀(惡女)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쓰면서 호녀를 입상여인(入相女人)이란 말로 바꾸어 불렀다.
경은 입상여인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했다. 참고삼아 말하자면 소녀(素女)는 남자와 한 번도 접촉을 갖지 않은 숫처녀를 의미하나 '소녀경'의
소녀는 황제에게 성을 교습하는 천녀(天女)를 의미한다.
소녀는 황제에게 이렇게 아뢴다.
“입상여인은 천성이 온순하고, 목소리에 윤기가 있으며, 삼단 같은 검은 머리털에 부드러운 피부, 아담한 체격에다 공혈(孔穴)이 위로 치올라
붙어 있고, 음부에는 털이 없으며, 음액(陰液)이 많은 여자를 말합니다. 또한 교접할 때는 음액이 넘쳐흐르고, 온몸을 비비꼬며,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고,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남자에 쫓아 행동합니다. 이러한 여자를 거느리는 남자는 비록 법도를 따르지 않더라도 몸을 상하는
일이 없습니다.”
여러 분들의 여자는 어떠하며 또한 여러분들은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다른 것은 다 그럴듯한데 음모 문제 있어서는 우리와는 관념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백(白) 무엇과 교접하면 재수가 없다느니 하는 말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그것이 너무 맛 좋은 별미여서 다른
사람들이 맛을 보지 못하도록 하려는 연막전술인지도 모른다. 맛 좋은 계란을 어른 혼자서 독차지하려고 아이들이나 여자들이 그것을 먹으면 뼈가
굳어지지 않는다는 따위의 말을 만들어 냈던 음흉한 늙은이들이니 그럴 수도 있으리라. 어두육미(魚頭肉尾)니 하는 말도 이래서 생겨났다. 생선은
대가리 맛이고, 육은 꼬리 맛이라고? 그렇게 해서 어른들은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생선 뱃살을 먹고, 아이들이나 여자들은 생선 대가리를 어적어적
씹어 먹었으리라.
‘옥방비결’은 호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여자를 고를 때는 반드시 젊은 여자를 골라야 한다. 살집이 좋고, 삼단 같은 머리털에, 눈은 작고 흰자위와 검은자위가 뚜렷한 여자로,
목소리가 고우며, 체격이 크지 않고 아담한 여자가 좋다. 또한 음부와 겨드랑이 아래에 털이 나지 않았거나 났어도 가늘고 부드러워야 한다.”
저들이 쓴 성에 대한 어떤 경전에도 음모가 많이 난 여자를 호녀라 않음은 분명하니 우리와 비교하여 어떠한가.
호녀냐 아니냐를 알고자 하면 어떻게 하는가. 저들은 이렇게 가르친다.
“호녀인가 오녀인가를 알고자 하면 마땅히 음부와 겨드랑이 밑의 털을 잘 살펴 보라!”
“그 까닭은?”
“털이 부드럽고 윤택해야 하는데, 만약 털이 뻣뻣하고 윤기가 없으면 남자에게 해로운 여자이다. 음부에 긴 털이 없고 세모만 있는 경우는
호녀중의 호녀라 할 수 있느니라! 반대로 다리에 털이 나 있는 여자도 해로운 여자이니 이런 여자와 단 한 번 교접한다 하더라도 백 번을
교접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남자에게 해로우니라!”
그래서 요즘 여인들은 면도기로 다리에 난 털은 말할 것도 없고, 겨드랑 밑의 털도 깎아 버리는가. 그러나 과문하여 음모를 깎는 여자가 있다는
말은 아직 못 들었지만 음모가 없는 여자가 호녀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날이면 음모를 잘 깎을 수 있는 특수한 기계를 만들어내면 크게 재미를
볼 수 있으리라.
남자가 특히 꺼려야 할 여인은 어떤 여인인가?
피부가 거친 여자, 살집이 없이 바짝 마른 여자, 언제나 위로 오르기를 좋아하는 여자, 목소리가 사내 같은 여자, 다리에 털이 많은 여자,
질투가 심한 여자, 음이 냉한 여자, 불순한 쾌감을 즐기고자 하는 여자, 밥을 너무 많이 먹는 여자, 나이 40이 넘은 여자, 뱃속이 좋지
않은 여자, 머리털이 뻣뻣한 여자, 몸이 언제나 냉한 여자, 뼈대가 억센 여자, 곱슬머리나 목뼈가 불거져 있는 여자, 겨드랑이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여자, 음수가 나오는 여자 등등을 저들은 꺼려했다.
다른 것들은 모두가 그럴듯한데 위로 오르기를 좋아하는 여자와 질투가 심한 여자를 특히 꺼려야 한다는 대목은 어떠한가. 이쪽의 힘이 없으면
위로 올라가 이쪽의 수고를 덜어줄 줄 아는 여자, 이쪽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질투와 시새움으로 온 몸이 불처럼 달아오르는 여자라면 구태여
꺼려야 할 것은 없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것들은 호사가들이 지어낸 말일뿐이어서 족히 믿을 바는 못되니 여러분들은 어떤 여자를 호녀라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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