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보다 영화가 뜨거울 수 있을까
스크린에 펼쳐진 멕시코 천재 여류 화가의 자화상 '프리다'
장애인,
양성애자, 공산주의자, 바람둥이 예술가의 아내, 멕시코의 천재 화가라는 다중의 정체성을 안고 뜨겁게 살았던 프리다 칼로. 그녀의 삶과 예술은
각국 언어로 100권 이상의 책을 통해 소개됐으며, 최근에는 미국에서 라틴계 여성 최초로 기념우표가 제작될 만큼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녀의 불꽃같은 삶을 그린 영화 ‘프리다’ 또한 그녀의 생애 만큼 무성한 소문과 관심으로 헐리우드를 달구었다.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프리다의
이름 하나로 모여들었고, 미라멕스는 흔쾌히 투자 계약서에 서명했다. 프리다 역을 둘러싸고 마돈나와 제니퍼 로페즈 등이 탐을 냈지만, 셀마
헤이엑이 주연으로 낙찰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영화는 프리다 칼로 만큼 매혹적이고 감동적일까? 미술팬과 영화팬, 그리고 프리다의 삶을 경탄하는 대중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프리다’가
마침내 뚜껑을 열었다.
평이한
전기영화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
영화는 프리다 생애의 두 가지 상처에 초점을 맞춘다. 하나는 온몸을 산산조각낸 교통사고. 어린 시절의 버스 충돌 사고로 프리다는 첫사랑을
잃고 불구의 몸으로 평생을 고통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하지만, 여자와의 섹스를 ‘형식적인 악수보다 무의미한 행위’로 규정하는 천하의 바람둥이자
당대 최고의 벽화가 디에고 리베라와의 결혼 생활은 교통사고보다 지독한 것이었다. 생애의 두 번째 ‘대형사고’인 디에고와의 만남으로 그녀는
혹독한 마음의 상처를 겪어야 했다.
하지만 불행은 그녀에게 이겨내야 할 대상이기보다 창작의 영감이자 삶을 풍요롭게 하는 원천이었다. 지상의 고통을 천상의 예술로 초월하고 승화시키는
삶의 태도는 눈부시게 아름답고 감동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영화는 그러한 그녀의 삶과 예술 세계를 적절히 담았다. 하지만, 시련을
극복하는 주인공 이야기를 헐리우드에서 지나치게 많이 생산했기 때문일까? 전기영화의 플롯을 비교적 무난하게 따르는 ‘프리다’는 보편적 감동
그 이상을 향해 손을 뻗지만 도달하진 못한다.
프리다
그림의 서사적 해설서
‘프리다’가 고난을 이겨낸 인물의 보편적 전기영화를 넘어서려 시도한 흔적은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영화는 분장과 의상 등을 포함하는 미술과
음악, 연기에 탁월한 솜씨를 발휘하며 현란하게 오감을 자극한다. 특히, 프리다의 내면세계를 프리다의 그림으로 설명하는 기법은 적합할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상당히 만족스럽다. 이 영화는 한 마디로 프리다 그림의 서사적 해설서라고 정리할 수 있다. 그래서 극장을 나설 때는
프리다의 대표작 전시장을 막 빠져나온 느낌을 갖게 된다.
‘프리다’의 OST는 어떤 면에서 영화보다 가치가 높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마이클 콜린스’ ‘에이리언3’ 등으로 이미 실력을 인정받았던
엘리엇 골덴탈의 음악은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 프리다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멕시코 전통 음악과 흥겨운 라틴, 미국의 팝과 블루스를
접목시킨 풍부한 음악으로 올해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미술과 음악은 전기영화의 보편적 감수성을 뛰어넘은 감각과 세련됨으로 서사적 단조로움을 넘어선다. 셀마 헤이엑과 알프레드 몰리나의 연기 또한
인상적이며, 안토니오 반데라스, 제프리 러쉬, 애슐리 쥬드 등이 단역으로 등장해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이 모든 요소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연출력은 부분적으로는 감각적이지만 전체적으로는 평이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영화는 매력적이지만
그녀의 그림, 혹은 삶은 한층 더 강렬하며 탄력적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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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간의 감금, 복수가 기다린다·올드보이 감독 : 박찬욱 / 주연 : 최민식, 유지태, 강혜정 평범한
행복한 |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