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익은 비누 맛 보실래요?
내 피부에 꼭 맞는 비누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수제비누 동호회 ‘안개 향기’
물질적
가치보다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추구하는 웰빙(Well-being)이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 떠오르면서 천연비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비누가 각종 화학품과 방부제로 범벅됐으며, 천연비누가 화장품 못지 않은 미용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최근에는 ‘더
이상 슈퍼마켓에서 비누를 사지 않겠다’고 결심한 개성파도 늘어나는 추세.
그렇다면 이들은 비누 없이 세수하나? 비누 만들기 동호회 ‘안개 향기’ 회원들은 비누 공장이 만들어지기 이전 8∼19세기 작업 방식으로
비누를 직접 제작한다. 귀찮지 않냐구? 이들을 입을 모아 말한다. “천만에, 쉽고 재미있고 행복하다.”
선물용으로
인기 많아
비누 향기 가득한 서울 성동구 도선동의 공예전문 카페 ‘지랑예랑’. 비누를 만들기 위해 각 지에서 모인 10여명의 회원들이 운영자 최윤석(31
공예 전문 강사·카페 ‘지랑예랑’ 사장) 씨의 설명에 따라 분주히 손을 움직이고 있다. 이날 만든 비누는 반제된 베이스 비누를 녹여 모양,
색, 향을 결정하는 MP법에 의한 일종의 투명비누로 저마다 비누 속에 넣을 사진들을 하나씩 준비했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투명비누 베이스를 용기에 넣어 중탕으로 녹이고, 녹인 비누 액에 선택한 향과 염료, 색 등을 넣어 잘 섞는다.
준비한 비누 틀에 비누 액을 넣어 굳히고 굳은 비누를 꺼내 잘 말린 후 사용하면 된다. 최씨는 “종류에 따라 제조법이 다양하지만 어떤 기법이든
직접 만들어보면 쉽게 익힐 수 있다”고 말했다.
“천연비누 가격이 부담스러워 내 손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혼자 터득하기 어려워 동호회에 가입했다”는 배은정(29 여) 씨는 “생각보다 간단하고
재미있다”며 비누 만들기를 적극 권했다.
수제비누는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많다. 이날 모임에 처음 참석한 박선영(18여) 씨는 “현재 아빠가 지방에 있어서 자주 만나지 못한다. 내
사진을 넣은 비누를 선물하면 아빠가 내 얼굴을 매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누 만들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선우경(23 여)
씨는 “남자 친구와 만나지 곧 2,000일이 된다. 기념 선물로 커플 사진을 넣은 비누를 만들고 있다”며 수줍게 웃었다.
‘안개 향기’라는 예쁜 이름은 운영자 최씨가 안개꽃을 좋아해서 붙여졌다. 올해 9월에 오픈,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동호회인데도 회원수가
120여명에 이른다. 회원의 연령과 직업은 다양하지만, 20∼30대 주부와 직장인이 많은 편이다. 성별은 역시 여자가 압도적. 최씨는 “동성이
없어 외롭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정기모임은 월 1회지만, 신입 회원을 위해 수시로 투명비누 만들기 번개모임을 갖는다.
다양한
첨가물로 효능 극대화
수제비누가 워낙 장점이 많아 회원들의 호응은 뜨겁다. 비누를 직접 제작하면 자기 피부 상태를 고려한 맞춤 비누를 만들 수 있고 색과 향,
모양도 취향대로 선택할 수 있다.
운영자 최씨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비누는 단가를 낮추기 위해 동물성 기름 등 저급 오일을 원료로 하며, 비누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글리세린을
빼내 화장품의 보습원료로 판매한다. 또한, 블랜딩 과정에서는 세정력을 높이기 위한 합성세제, 보존기간을 높이는 방부제, 합성 향 등 각종
유해한 화학첨가물이 들어간다”며, “천연비누의 재료는 모두 식용으로 안전하며, 고급오일에 글리세린이 들어있어 보습효과도 우수하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환경보호를 위해서도 천연비누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최씨의 주장이다. “합성 세제는 자연 분해가 잘 되지 않아 환경 오염의
주된 요인이 되고 있으나 천연비누는 24시간 안에 자연 분해된다”는 것.
첨가물을 얼마든지 추가할 수 있다는 점도 천연비누의 장점이다. 최씨는 “천연비누는 기본 오일, 향이 되는 에센셜 오일, 그리고 한약재,
꽃잎이나 가루 등의 첨가물과 조화를 이루어 상승된 효과를 얻는 것이다”며, “자기에게 필요한 효능이 무엇인가를 판단해 첨가물을 조절하면
고급 화장품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노화방지는 포도씨, 아토피는 동백유, 주름 제거는 로즈힙 시드유, 세정력 강화는 코코넛유, 여드름에는 삼백초, 우울증은 버가못,
스트레스는 제라늄, 피부 재생은 당근 등을 첨가하는 식이다.
비용면에서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천연비누의 효과는 알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망설이는 경우가 많은데 직접 제작하면 월등히 높은 품질에 시판
천연비누의 1/3 이하로 가격을 낮출 수 있다. 기구도 주방도구를 응용할 수 있으며, 그나마도 최씨가 운영하고 있는 ‘지랑예랑’에 비치돼
있어서 재료비 이외에 특별히 가중되는 비용은 없다.
“비누처럼 향기롭고 투명한 사람들의 모임”
무엇이든 사람과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만드는 과정을 친분을 두텁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비누는 더욱 그렇다. 만드는 단계 중간 중간
쉬는 시간이 있어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기회가 잦다. 과일주를 익히듯이 4주라는 숙성기간을 거쳐야 효능을 발휘하는 수제비누의 특성도
회원들의 친밀감을 높이는 원인이다.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 재료 계산 때문에 한번에 1kg 단위로 제작된다. 유효기간도 있고, 첨가물도
다양하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비누를 서로 바꾸고 나눠 쓸 수 밖에 없다. 손수 제작한 것을 서로 교환하다보면 가족 같이 가까워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
“좋은 향과 깨끗한 느낌. 비누의 대표적 이미지처럼 회원들의 마음이 정말 깨끗하고 투명하고 향기롭다. 남 주는 거 좋아하고 서로 챙겨주고.
그러다 보니 항상 웃음과 여유가 넘쳐난다.” 최씨의 말에 의하면 비누는 ‘안개 향기’의 분위기 메이커인 셈이다.
앞으로 돌이나 결혼 등 회원들의 특별한 행사에는 품앗이로 비누를 제작할 생각이다. “더 알찬 동호회로 키워야죠.” 최씨는 천연화장품, 아로마테라피,
향초, 한약 정보 등 비누와 관련된 모든 지식을 정리하고 지역 모임도 활성화시킬 방안을 찾고 있다. 봉사활동도 중요한 계획 중 하나다.
안팎으로 비누 향기 가득한 동호회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