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진사
무료로 영정사진 찍어주기 20여 년, 공무원 유종산 씨
살아가면서 우리는 숱한 사진을 찍는다. 아기 때 재롱떠는 모습부터
입학, 졸업, 결혼에 이르기까지, 사진을 뒤적이다보면 한 인간의 역사가 눈에 아른댄다. 인생을 통틀어 찍었고, 찍을 수많은 사진들, 그중
가장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 하나만 꼽으라면 어떤 사진일까? 아마도 삶을 마감한 후, 나를 대신해 친지, 친구들을 맞이할 영정사진이 아닐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사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찍어놓은 사진이 없어 주민등록증 사진을 확대해 썼어요. 사진 상태가 너무 엉망이라 못내 죄스럽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유종산(53 공무원) 씨는 1977년 부친 장례식에 제대로 된 사진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 아직도 한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시작한 무료로
영정사진 찍어주는 자원봉사는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상은 주로 사회복지시설이나 양로원에 위탁된, 혹은 생활보호대상이거나
저소득층가정의 노인들을 찍는다. 그간 4,000명에 육박하는 인물들이 그의 카메라에 잡혔고, 수많은 사연과 추억들을 남겼다.
“상계동시립요양원에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중환자 한 분이 계셨어요. 몸을 도저히 일으킬 수 없어 누워있는 상태로 어렵게 사진을 찍었는데
그러고 바로 3일 후 돌아가셨죠. 부랴부랴 사진을 현상해 액자에 끼워 장례식장에 놓아 드렸는데 기분이 정말 이상하더라고요.”
누워서 연신 눈물을 흘리던 그 할머니의 빈소를 나오면서 유씨는 그나마 자신이 찍어드린 사진이 마지막 가는 길에 좋은 선물이 되었다는 안도감과
뭐라 말할 수 없는 울적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 분이 이 세상에 남긴 유일한 흔적은 그것뿐이었죠.”
산간오지 돌아다니며 촬영
유씨는 몇 년 전부터 시골 중에서도 시골, 산간오지를 찾아다니며 촬영을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전북 진안, 강원도 홍천을 다녀왔고, 대개는
액자에 담아 완성품이 만들어지면 다시 한번 방문한다. 행여나 깨질까 싶어 염려도 되고 인사도 다시 할 겸해서다. 사진을 받아드는 노인들은
더러 착잡해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매우 고마워한다. 감사의 표시로 나물을 캐다주기도 하고, 고구마를 주기도 한다. 돈도 없거니와 돈으로
답례를 할라치면 유씨가 화를 내기 때문이다.
“모두 다 내 부모인데 돈을 받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딱 잘라 말하는 유씨는 “후원금도 마다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전적으로 모든 경비는 유씨가 부담한다. 월급을 아껴 돈을 모으고 정 부족할 때는 아르바이트를 해 충당한다. 그가 자동차를 구입하지 않는
것도 유지비가 아까워서다. 무거운 장비를 들고 산간지방까지 다니려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그 돈이면 더 많은 사람들을 찍어줄
수 있다는 마음 때문에 욕심조차 내지 않는다.
“지방에 다니는 게 조금 힘들어서인지 요즘 살이 많이 빠졌어요. 아내는 그것이 늘 불만이죠. 그래도 아내가 없었으면 아마 이 일을 해오는
건 불가능했을 거예요.”
휴일마다 집에 없는 남편, 돈을 모을 생각은 안하고 퍼주는데 급급한 남편을 이해해준 아내와 아버지를 닮아 사회복지에 관심이 많은 자녀들이
있기에 유씨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정작 내 가족들 사진은 많이 찍어주지 못했네요. 언제 날 잡아서 햇볕 좋은 날 다 함께 사진 찍으러 나가야 겠어요. 허허.”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