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vegetarian)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징어나 쥐포를 유달리 좋아하는 여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들풀처럼 여리여리한 남자. 연애 감정이라곤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여자. 새로운 종족이 나타났다. 이름하여 초식남과 건어물녀다.
혹 주위에 ▲여성과 애인의 선을 넘지 않으며 친분을 유지하고 ▲애인이 있어도 쉽게 성적인 관계에 빠지지 않고 ▲가족, 그리고 어머니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맛집을 찾아다니고 ▲술보다는 커피를 마시며 수다떠는 것을 좋아하고 ▲취미생활이 다양하며 인생을 즐기며 사는 남자가 있다면? 초식남을 의심해 보라.
일본 2009년 주요 키워드 ‘초식남’
초식남이란 일본의 칼럼리스트 후자카와 마키가 지난 2006년 처음 용어로 제시한 말이다. ‘남자다움에 구애받지 않는 온후한 남성’을 뜻한다. 초식남이라는 단어는 일본에서 꽤 주목받아 2009년 주요 키워드로 떠오르게 된다. 최근 일본의 한 결혼정보회사가 30대 미혼 남녀 400명을 대상으로 ‘초식남일 것 같은 연예인’을 설문조사한 결과 일본의 인기 그룹 SMAP의 쿠사나기 츠요시가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마른 몸, 섬세한 표정, 쿠사나기를 보면 일반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다. 반면 중성적이며 자신없어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언뜻 남성 동성연애자를 연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많은 남자들이 보이는 ‘육식동물’ 같은 공격성이 이들에게는 없다. 대신 이들은 양처럼 온순하며 자신의 일과 세계에 집중한다. 이성교제도 그들의 관심이 아니다. 독신생활을 즐기며 개인적인 취미와 일에 집중하는 사람이 바로 초식남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일간스포츠(IS)가 결혼정보업체 '가연'과 공동으로 2월 19일에서 22일까지 25세 이상 39세 이하의 성인 남녀 297명(남자 150명, 여자 147명)을 대상으로 '초식남자'에 대한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여성의 34%, 남성의 16%(본인 포함)가 '주변에 초식남자가 있다'고 답했다. 초식남 현상이 비단 일본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에 비해 초식남자에 대해 긍정적 반응을 보였지만, 이성으로서는 초식남자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식남자가 남녀평등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고(37%), 여성의 생각에 공감한다(29%)'는 장점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조적으로 '친구로는 좋으나 애인으로는 싫다'는 의견이 47%이나 나와 눈길을 끌었다. 한마디로 같이 있기는 좋지만 애인으로 삼기는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메마른 일상이 좋다. 연애도 필요없다. 건어물녀
이런 초식남이 새로운 남성 이미지로 떠올랐다면 새로운 여성 이미지로 ‘건어물녀’가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은 이미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나타난 현상중 하나가 바로 건어물녀 현상이다. 건어물녀들은 누구보다도 자기 일에 대한 열정도 크고 일도 잘한다. 하지만 일이 끝나면? 미팅이나 데이트 등 미래의 신랑감을 고를 소위 ‘건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곧바로 집으로 직행이다.
집에 온다고 해서 별다른 일이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차가운 맥주 한캔과 오징어 안주. 무릎나온 트레이닝복, 고무줄로 질끈 묶은 머리다. 주말에도 약속을 잡기 보다는 ‘방콕족’이 되어 먼지가 뒹구는 방안을 굴러다닌다.
처음부터 그녀가 이랬던 것은 아니다. 일에 집중하면서 몇 년을 살다보니 연애는 거추장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다. ‘실전’이 없다보니 ‘삘’도 떨어진다. 연예세포가 말라붙어 건어물처럼 되어버린 여자들. 바로 건어물녀다.
건어물녀라는 말도 물 건너 일본에서 넘어왔다. 2007년 7월 ‘일본TV'에 반영된 '호타루의 빛’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 마미야 호타루가 건어물녀의 전형이다.
퇴근후 연애 감정이라고는 1g도 없이 지내던 호타루는 우연한 기회에 아내와 별거중인 회사의 남자 부장님과 같은 집에 살게 된다. 그와 소소한 대화를 나누다 이 대화는 연애 상담으로 발전하게 되고 호타루의 죽어가던 연애 세포가 다시 살아나게 되어 결국 사랑을 얻는다는 것이 드라마의 줄거리다.
초식남과 건어물녀, 이 새로운 종족들은 공통적으로 연애에 관심이 없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기 쉽다는 특징을 가진다. 그간 젊은이들에게는 적극적이며 진취적인 행동 양식이 의무처럼 요구되어 왔다. 반면 이들은 이런 세상의 관념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급격히 변해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성공 성취라는 단어보다 개인의 욕구에 충실하는 이들. 현대인의 한 단면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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