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중국에 넘어갈 판, 밤잠도 안 온다”
‘동북공정’의 진행 상황과 전망, 고구려연구회 서길수 회장 인터뷰
고구려사를 놓고 한중 양국이 떠들썩하다. 최근 중국 정부가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기 위한 대대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음이 알려져
학계는 물론, 국가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다. 중국 정부는 2002년 2월부터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5개년 계획을 수립해 본격적인
역사 약탈 작업에 들어갔다.
한국 정부가 심각성을 깨닫게 된 것은 작년 7월 북한 고구려 벽화고분의 세계문화유산등록이 중국의 견제로 좌절되고 부터다. 중국은 반대로
거액을 들여 집안일대 고구려유적을 정비하고 고구려고분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추진중이다. 심사결과가 발표되기까지는 6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급한
상황이다.
고구려 연구에 천착해온 고구려연구회 서길수 회장(서경대 교수)을 만나 동북공정과 대처 방안, 전망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서 회장은 “한국인들
가슴에 새겨진 식민사관과 사대주의 사상을 없애기 위해서는 우리 역사의 우수성을 알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고구려사 연구에 매진, 1986년부터
수 차례 중국을 방문해 생생하고도 방대한 연구 성과를 축적해왔다.
서 회장은 고구려사 중국사 편입 문제에 대해 “한국의 정체성을 모조리 잃어버리게 생겼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움직임이지만 모두들 무관심했다.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사람도 많다”며 안타까워하면서도, “감정 싸움이 돼서는 안 된다. 동아시아 역사를 함께 쓰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역사학자로서의 큰 비전을 강조했다.
고구려사 연구의 일인자인. '고구려연구회' 서길수 회장은 "중국의 프로젝트에 이끌려 가다가는 앞으로 100년간 1000배의 노력을 해도 그 역효과는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며 "총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여러 차례 고구려 유적지를 방문한 것으로 안다. 최근 현지 분위기가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엄청난 차이가 난다. 700호 정도를 이주 보내고 아파트까지 뜯어내고 새 단장을 해 도시가 완전히 바뀌었다. 군인들이 24시간 지키고
서 있는 등 경비 또한 삼엄하다. 중국이 유네스코 심사를 받기 위해 얼마나 물질적 투자를 많이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고구려를 중국사의 일부라고 주장하지 않았나?
중국의 고구려 연구는 1980년부터 본격화됐다. 중국의 민족정책 확립 과정에서 ‘통일적다민족국가(統一的多民族國家)’론이 필연적으로 대두된
것이다. ‘이 땅에 사는 민족은 모두 중국인이며, 이 땅에 살던 선조들도 중국인이다’는 이론의 역사적 합리성을 찾다보니 고구려를 자국사로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게는 생존의 문제였다.
1979년 주체사상에 입각해 북한이 발행한 고구려 연구서 ‘조선전사’도 중국학자들을 자극시켰다. 고구려의 대외투쟁, 영웅적 인물상 등에
초점을 맞춘 이 책이 중국에 번역된 이후 반박논문도 여러 편 나왔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해 음성적으로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1993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1993년 중국 집안에서 열린 제1차 고구려문화 국제학술토론회가 중국의 고구려사 연구의 기폭제가 됐다. 중국 한국 북한 일본 등 각국
학자들이 참가한 이 토론회에서 당시 집안박물관 부관장이었던 경철화가 ‘고구려는 중국문화에 속한다’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북한 김일성대학의
박시형 교수가 ‘고구려 땅이 지금 중국 영토가 됐다고 해서 그 역사를 어떻게 중국사에 갖다 붙이냐’고 반박했다. 이 논쟁은 양국 학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고, 이를 계기로 중국 학자들의 고구려 연구성과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동북공정은 언제 어떻게 시작됐나?
2001년 북한이 평양 인근의 고분군을 세계문화유산 등록 신청하자 중국이 ‘같이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북한이 거절했고, 중국은 이에
자극을 받아 2002년 2월부터 ‘동북공정’을 시작했다. 남북 통일에 대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재중동포들이 ‘만주는 우리땅’식의
주장을 본격화할 것을 중국은 상당히 우려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조짐 있었다. 단지 무관심했을 뿐”
고구려가 중국사라는 논리의 핵심은 무엇인가?
6가지로 크게 본다면 △고구려는 중국 땅에 세워졌다. △고구려는 독립국가 아닌 중국의 지방정권이다. △고구려 민족은 중국 고대의 한 갈래
민족이다. 조선족이 아니다 △수·당과 고구려의 전쟁은 중국 국내전쟁이다. △고려는 고구려를 이어받지 않았다. △한반도 북부 북한지역도
중국의 역사다.
우리 학자들은 고구려가 중국사라는 논리에 반박할 준비가 돼 있나?
빨리 반박하라고 학자들을 부추기는 분위기인데, 20년간 수백 명이 연구한 성과를 하루아침에 반박하기는 어렵다. 우선 그쪽 논리가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등 관련학회가 공동 참여하는 ‘고구려사 연구센터’를 설립하기로 결정돼 위안이
된다. 지금까지 연구가 안 된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의 연구는 성과는 많지만 귀속문제를 소홀히 해왔다면 중국은 그 반대라 할 것이다.
그동안 고구려사에 대한 학계의 관심과 연구성과는 어느 정도였나?
지금까지 고구려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수여한 학자가 14명 정도 된다. 배가 고프니 도리가 없다. 역사 연구가 지나치게 한 쪽으로 편향된
것도 문제다. 14년 전부터 중국의 심상찮은 움직임을 감지했다.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 문제는 갑자기 불거진 것이 아니다. 단지 무관심했을
뿐이다.
“6개월밖에 안 남았다”
중국이 신청한 집안과 환인, 북한이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의 세계유산 등록은 어떻게 될 것으로 전망하나.
세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있다. 북한만 되는 경우. 중국만 되는 경우. 같이 등록되는 경우다. 북한만 된다면 말할 것도 없이 좋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중국은 철저히 준비한 만큼 등재가 거의 확실시 된다. 현시점에서는 같이 되는 것을 바랄 수밖에 없다.
관건은 외교력이다. 중국과의 솔직한 외교로 정확하게 논지를 이야기하고 단판을 지어야 한다.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 보자. 중국이 신청한 것이 등록되고 북한이 신청한 것이 탈락된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나?
그러면 큰일이다. 각국 언론에 한 줄씩만 보도돼도 고구려는 중국사로 낙인찍히는 것이다. 앞으로 100년간 이보다 1000배의 노력을 해도
그 역효과를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고구려사 귀속문제와 맞물려 우리 민족사 전체의 정체성에 돌이킬 수 없는 과오로 남을 것이다.
현 상황은 밤잠도 못 잘 정도로 심각하다. 6개월 남았다. 총력을 집중해야 한다. 세계유산 등재 이후로도 평양 자체를 추가로 등록하는
등 해야할 일이 많다. 1997년 북한문화재를 유네스코에 가입시키자고 운동을 펼쳤지만 그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그때 했으면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안타깝다.
앞으로 국가간의 역사분쟁은 계속 빚어질 것이다. 분쟁을 줄이기 위한 바람직한 연구 방향은?
이번 같은 문제를 중국과 한국이 싸움의 소재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중국은 베트남 파키스탄 네팔 러시아 북한 등 많은 나라와 국교를 맺고
있다. 중국에게 아시아의 평화가 달려있는 것이다. 중국이 중화주의를 벗어나지 나지 못하면 동양의 평화는 어렵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안중근 의사는 감옥에서 죽어가면서도 ‘동양평화’를 외쳤다.
2년간은 부글부글 끓는 과도기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큰 비전은 공존의 역사를 지향해야 한다고 본다. 유럽은 이해관계가 더욱 첨예하게
대립해도 함께 역사 연구를 하면 이견을 좁혀나간다. 세계사 속에 동아시아의 위치를 어떻게 써 내려갈 것인지, 보편 타당성 있는 역사기술을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