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등 앞길 내가 밝힌다”
끊어진 ‘한국의 빛’ 되살리는 지등작가 전영일
거대한 호랑이 한 마리가 인천에 나타났다! 매서운 눈을 번뜩이며 으르렁대던 호랑이는 옆에 자리한 사천왕에 주눅이 들었는지 이내 얌전히
바닥에 엎드린다. 하긴 해태, 비룡 등 내로라하는 동물들이 주변을 가득 메웠으니 잠자코 있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인천 아인스월드 야외 무대에 상상 속 동물들을 비롯, 불교 조각상 등이 대거 모였다. 그런데 사실 이들은 모두 한지로 만들어진 등이다.
중국의 빙등만을 알고 있던 관객에게 우리나라 전통등의 아름다움을 맘껏 뽐내는 이들은 모두 ‘전영일 공방’ 작품. 국내 유일 전통등의 맥을
잇고 있는 전영일(35) 작가를 만났다.
전통의 현대적 재창조
“우리나라에도 전통등이 있다는 것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것이 제 사명입니다. 끊겼던 전통을 다시 복원하고 나아가 창조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모든 것을 콘크리트화 했던 박정희 시대를 거쳐 우리의 전통등은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 1996년 석가탄신일을 맞아 봉축위원회
지현 스님의 제안으로 동국대 불교미술학과와 홍대 미대 학생들이 이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홍대 조소과를 졸업한 전 작가도 이때 참여했다.
하지만 조계종의 사정으로 위탁연구 지원이 끊기면서 모두 그만 두는 사태가 벌어졌고, 전 작가만이 남게됐다.
“이보다 아름다운 빛이 어디 있어요? 일반 조형물은 차갑지만 등은 참 따뜻하고 포근하죠. 한번 매력에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어요.”
이 일을 계속 해오는 이유를 설명하며 전 작가는 “작업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했지만 사실 6년동안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더 많았다.
돈을 벌기는커녕 생계 유지조차 힘들었고 작품을 만드는 것은 곧 그만큼의 빚을 떠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나가는 것은
다반사였고, 밤이면 인테리어, 벽화, 과외 등의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그러던 2001년 화재로 그간 만들어놓은 작품이며 집기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졌고, 참고 있던 눈물은 터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청소할 필요도 없이 홀라당 다 탔다는 거죠. 청소대행업체를 부를 돈도 없었는데 말이에요.”
그러나 오기와 집념으로 그는 다시 시작했고, 월드컵기념 행사를 비롯한 다수의 전시회에 참가하면서 서서히 입지를 굳혀갔다. 그리고 이제
그는 등에 관한한 ‘최고’가 됐다.
온화하고 해학적인 작품
등을 만드는 과정은 우선 무엇을 만들지 디자인을 하고, 철사나 대나무 등을 이용해 골조를 만든다. 이것이 완성되면 등 안에 소켓을 설치하고,
골조 표면에 한지나 고운 종이, 천이나 비단 등을 이용해 배접을 한다. 보통 종이를 이용하는데 평평하고 탄탄하게 붙이는 것이 중요하다.
또 골조선에 닿는 종이의 면을 최소화하고, 채색할 면을 앞면으로 놓아야 한다. 이 일이 끝나면 묽게 탄 아교를 종이가 완전히 흡수할
때까지 뿌리고, 마르면 밑그림을 그리고 채색을 한다. 이때 불을 켜고 채색을 해야 얼룩이 지는 걸 막을 수 있고, 원하는 조명색을
얻을 수 있다.
“채색이 가장 어려워요. 자칫하면 촌스럽고 천박할 수 있거든요. 잘못하면 기껏 만든 작품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할 경우도 생기죠.”
보통 큰 작품일 경우 4명이 합작했을 때 한달 정도 소요된다. 쉽게 얻어지는 결과물이 아니기 때문에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고 애착이
가지만 특히 귀면 문양을 본뜬 작품이 가장 정이 간다.
“귀신얼굴 모습의 귀면은 역사책이나 여타 자료에 죄다 흑백으로만 나와있죠. 참고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공방식구들과 고민해
2001년 처음으로 채색된 귀면을 발표했어요. 고생은 많았지만 참 뿌듯했죠.”
그의 작품은 화려하고 원색적인 중국과 일본의 등과 달리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해학적이다. “일부러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한국인의
정서가 베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그는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후학양성 가장 보람”
그는 판매용 등은 제작하지 않는다. “돈만 되는” 작품은 싫다는 것이 그의 고집이고, 등을 상품화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전통을 복원하고 나아가 그것을 현대적으로 표현하는 일이 그가 추구해나가는 방향이다. “사상은 이어가되 외형은
현대인들의 정서에 맞게 변형시키는 것”을 목표로 그는 앞으로 한국의 도깨비를 새롭게 재구성하고, 달마를 현실적으로 재현할 계획이다.
그리고 그 후에는 반전사상 등 자신의 주장을 담은 개성적인 작품도 만들 것이다.
“우선은 전통의 기반을 다지는 것이 필요하죠. 맥이 끊겼기 때문에 역사를 먼저 살린 다음 새로운 역사를 이어나갈 겁니다.”
더불어 그는 후학양성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경기도 파주에 새로 마련한 작업실 겸 전시장이 오픈되면 더 많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기술을
가르칠 예정이다. “가르칠 때가 가장 보람있다”는 그는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통등을 알릴 수 있다는 것이 기뻐요. 큰 뜻을 품은 제자를 만나 그와 함께 이 일을 해나가는 것이 꿈입니다.”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