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로 인한 초저금리 현상으로 부동산으로 돈이 몰리면서 정부는 투기거래를 막기 위해 수시로 대책을 마련해 쏟아냈다. 하지만 한쪽을 규제하면 다른 쪽으로 돈이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나는 등 발빠른 정보력을 갖춘 투기자의 투기의지를 꺽을 수는 없었고, 정부대책은 ‘뒷북정책’이라는 비난으로 번번히 돌아왔다.
400조원이 넘는 시중의 부동자금이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부동산’은 여전히 재테크 1순위로 꼽힌다. 10·29대책의 약발로 ‘아파트’에 대한 투자 메리트는 사라졌지만, 개발예정지로 지목되는 땅이나 상가의 투자가치가 상승하면서 투기조짐이 꿈틀대고 있다.
화성시 동탄지구 2배 이상 올라
시중 뭉칫돈이 토지로 몰리고 있다. 신행정수도 이전지 결정, 수도권 택지 개발, 고속철 개통, 그린벨트 해제 등 개발 호재가 많은데다 정부가 토지관련 규제를 재검토 하기로 해 토지에 대한 투자 메리트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땅투기 바람은 수도권 신도시 중 가장 입지조건이 탁월한 것으로 평가되는 판교 신도시 일대를 비롯, 삼성반도체 제 2공장이 들어서는 화성 동탄지역, 고속철 역세권인 천안·아산 일대 등에서 거세게 불고 있다.
총 2조5,000억원의 보상이 시작되면서 땅투기에 불을 붙인 판교 인근지역은 보상을 받은 원주민들과 외지인들이 주변 전답에 대한 매집에 들어가 인근 땅값이 두 배나 폭등했다. 최근에는 상가딱지에 투기 자금이 몰려들어 8평 상가 입주 자격이 주어지는 딱지가 5,500~6,0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4월 고속철 개통을 앞두고 있는 천안·아산 일대는 역세권을 중심으로 땅값폭등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역사 주변인 불당동의 경우 2~3개월 전 평당 35~40만원 했는데 지금은 평당 50~60만원으로 40% 이상 올랐다. 화성시 동탄지구도 지난해 평당 400만원하던 것이 올해 700~1,000만원을 호가한다. 인근의 발안지구도 평당 300~500만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100~150만원 정도 올랐다.
투기혐의자 계좌추적
부동산 투기심리가 다시 고개를 들자, 정부는 서둘러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우선 토지투기를 막기 위해 농지거래 허가면적 하향조정, 투기지역 지정, 국세청의 투기혐의자 색출 등 대대적인 대책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재경부 건교부 등 관계당국은 지난해 4·4분기 토지가격 동향을 바탕으로 이달 초 부동산가격심의위원회를 열고 토지관련 투기방지대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재경부는 지난달 13일 ‘부동산 시장 안정 대책반’을 열어 오는 7월부터 부동산 투기혐의자에 대해 금융거래 일괄조회(계좌추적)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계좌추적’이 가능해진 셈이다.
일괄조회 대상 부동산 거래의 범위는 5억원(기준시가)이상으로 세금탈루 혐의가 높고 허위증빙서류 등으로 실거래가를 숨긴 경우로 △투기지역 내 부동산 양도 △2년 이내 단기거래 △60% 중과 대상인 1세대 3주택 이상인 경우 △토지분할 매각 △1년 동안 3회 이상 거래 등 하나의 요건만 충족해도 일괄조회조사가 이뤄지게 된다.
또 △부동산 미등기·분양권 전매 △중개업자의 부동산 거래 △타인명의로 부동산을 취득해 양도하는 행위 등 관계법령을 위반할 때도 국세청의 일괄조회조사가 실시된다. 국세청은 또 부동산 투기 상시감시시스템을 구축하고, 땅 투기 예정지역에 조사단을 급파해 투기를 원천 차단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주택담보비율을 축소하고, 1월부터 1세대 3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대폭 강화했다. 또 예정대로 3월부터 투기지역내 주택거래신고제를 실시하고, 서울 은평과 길음, 왕십리 등 3개 강북뉴타운 건설(3월 착공), 실거래가 전자신고제도(내년 1월부터 전국실시) 등도 적극 시행키로 했다.
투기근절 현실적 ‘불가’
하지만 현실적으로 부동산 투기를 근절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일단은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상황에서 고소득이 예상되는 부동산 투자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는 정부가 아무리 많은 투기방지 대책을 내놓아도 전문투기자의 발빠른 정보력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항상 ‘뒷북정책’에 그치고 만다는 것이다. 부동산 정보업체 스피드뱅크 관계자는 “정부에서 아무리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기 위한 정책들로 위협을 해도 잠시 주춤할 뿐 투기가 근절되진 않을 것”이라면서 “지금은 시중의 부동자금이 부동산으로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아직 땅 투기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지만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눈치를 보던 투기자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동산 거래에 있어 ‘투기’와 ‘투자’의 개념을 구분하기가 애매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정당한 투자자와 상습적인 투기자를 명확히 구분지을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처벌하기 곤란한 문제가 걸려 있다. 관계당국이나 부동산 전문가들은 어떤 것을 ‘투자’라고 해야 하는지, ‘투기’로 봐야 하는지 정할 수는 없다는 것에 난감해 한다.
부동산 투기혐의자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해 탈루세금을 추징하고 검찰에 고발한 특허청 관계자는 “투자와 투기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없으나, 분양권 전매라든가 투기지역거래,단기 부동산 거래가 빈번한 경우 등을 투기로 보고 조사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현재 실시하고 있는 투기조사가 대상자 색출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토로했다. 투기라 해도 세금만 제대로 냈으면 처벌대상이 되지 않고, 단순한 투자라 해도 세금을 안냈으면 불법으로 간주해 처벌이 된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부동산 투기를 편법, 불법으로 거래하는 일이 발생기도 한다. 지난달 검찰이 토지거래 허가구역 내에서 관할관청의 허가없이 토지를 거래한 이들을 부동산 투기사범으로 무더기로 기소했지만 법원이 대거 무죄판결을 받아 부동산 투기대책에 비상이 걸렸다.
재판부는 “토지거래 허가구역 내에서 전매약정 등을 통해 부동산업자와 매매계약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매수자에게 법 위반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힘들고 충분한 증명이 이뤄진 것으로 볼 수는 없다”며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그러나 “사전신고라는 법에 정해진 절차를 위반한 것은 판례가 적시한 법을 어기려는 고의성과 관련없이 엄연한 불법”이라며 즉각 상고했다. 정씨 등은 2002년 11월 토지거래 허가구역인 경기 파주시 교하읍 일대 토지에 대해 당국의 허가없이 부동산 매매계약을 한 혐의로 각각 기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