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기지 이전에 필요한 30억~40억 달러(3조5,600억∼4조7,400억)를 우리 정부가 전액 부담키로 합의한 가운데, 국방부는 이전비용을 어떻게 마련해 조달할 것인지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또한, 용산기지 활용문제와 관련해 “매각해서 이전비용을 마련하겠다”는 국방부와 “국립공원이나 공원조성”을 주장하는 서울시가 마찰을 빚고 있다.
천문학적 이전비용 조달 막막
조영길 국방부 장관은 지난 1월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안보관계 장관회의에 앞서 “용산 미군기지 이전비용은 30억-40억 달러 선에서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천문학적인 이전비용을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올해 국방예산이 18조9,412억 원. 이마저도 자주국방을 강조한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돼 올해 1조4,000억원 상당의 국방비가 증가한 것이다. 실질적으로 이전비용을 국방부 예산으로 감당하는 것은 힘들다. 이 때문에 국방부 쪽은 처음부터 이전비용은 국방예산과 별도의 정부 예산으로 충당할 것을 요청해 왔다. 또 국방부에서는 공원용지인 용산기지를 서울시에 매각해 비용을 충당하려 하고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81만평을 평당 430만원에 팔아야 한다.
국방부에서는 기지 땅의 일부를 상업용지로 매각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서울시가 공언해 온 용산기지 땅 민족공원 활용 계획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공개적으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한편, 이명박 서울시장은 1월18일 대변인을 통해 “120년만에 되돌아 온 용산 미군기지는 7천만 모든 민족의 입장에서도 민족의 주체성을 찾을 수 있는 사업으로 국립공원을 지정·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국립공원으로 조성을 제안했다. 이 시장은 이전 비용과 관련해 “서울시 한해 12조 예산 가운데 가용예산은 4조원에 지나지 않으며 이중 8천억원을 매년 절감하고 있는 데 정부도 111조에 달하는 예산을 절감한다면 3∼4조 정도의 공원화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며 “그것도 힘들다면 장기채권을 발행하는 방법도 있다”고 정부를 압박했다.
“용산기지 이전협상 굴욕적”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그 엄청난 비용을 왜 한국 쪽이 몽땅 다 부담해야 하느냐는 근본적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대체부지 구입, 대체시설 건립, 이사비용 부담 등 모든 비용을 도맡아야 한다는 한-미 합의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한.미 양국의 미군 용산기지이전 합의에 대해 한국에 일방적인 부담을 강요하는 굴욕적 협상이라며 일제히 재협상을 촉구하고 나섰다.
참여연대는 1월18일 논평을 내고 “용산기지 이전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강했던 만큼 완전 이전 결정은 당연하지만 이전 비용, 대체부지 제공과 관련해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며 협상 내용을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협상팀은 일부 독소조항이 제거됐다고 주장하지만 이번 협상은 미국의 부당한 요구가 관철돼 한국이 30억달러에 달하는 이전 비용을 부담하고 320만평에 달하는 대체부지를 제공하도록 하는 등 결코 수용할 수 없는 결과물”이라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또 “정부는 이번 협상 결과를 낱낱이 공개하는 한편 여론을 수렴해 차후 협상에 임해야 한다” 덧붙였다.
이에 대해 국방부관계자는 이전비용 전액 부담에 대해 “현재의 소파 규정에는 기지 이전을 먼저 요구한 국가가 이전 비용을 부담하도록 규정돼 있다”며 “지난 1990년 한-미 합의 당시 한국 쪽이 용산기지 이전비용을 부담한다는 것이 기본 전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美, 비용집행내역 확인요청 거부
이전 비용의 한국측 전액 부담이외에도 미국쪽이 이전 비용 집행 내역에 대한 우리 정부의 확인 요청 및 한국물품 우선 구입 요청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이 또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 한국측은 용산기지 이전 협상을 완전 타결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미측이 비용 집행 내역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주장함에 따라 기본합의서(포괄협정) 및 이행합의서를 작성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미국측은 또 미군시설 등에 쓰이는 각종 부품이나 물건을 한국에서 구입할 수 있을 경우 현지에서 조달하도록 하자는 한국 쪽 제의도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는 회담 막판에 이전비용 집행에 대한 통제권을 요구하고 미군시설을 턴키방식으로 지어주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미국쪽은 이에 대해 “뒤늦게 딴소리한다”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한미군 시설 건립에 우리가 돈을 내고서도 사용내역을 확인하지 못하는 이같은 상황에 대해 일반 국민들이 납득할 지는 의문이다. 전액 부담을 약속하고서도 실질적인 실익을 전혀 얻지 못한다면 한미 관계에 또다른 불평등 독소조항을 남겼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하승창 사무처장은 “이전 비용이 얼마나 들지 알 수 없는데다 미국이 요구하면 비용을 대주더라도 그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세부사항들이 정상적이지 못한 협상”이라고 지적했다.
기지부지 활용 방안도 난항
용산 미군기지 이전과 관련해 서울시가 구상해왔던 국립공원화 계획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대도시 안에 국립공원을 조성한 예가 없는 데다 현행 자연공원법상 국립공원 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서울시 국립공원 조성 계획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국립공원으로 할 경우 재원조달 문제도 한 원인이다. 그러나 서울시가 당초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어 이를 둘러싼 정부와 서울시간의 갈등이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서울시는 국립공원 조성이 무산될 경우 차선책으로 기지부지를 도시계획시설상 ‘도시공원’으로 결정, 자체적으로 ‘시민의 숲’을 조성한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이 경우 부지는 시가 정부로부터 무상 양여 받거나 매입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확보해야 하지만 무상 양여는 국립공원 조성 때와 마찬가지로 미군기지 이전비용 충당 문제등을 감안하면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앞으로 용산 미군기지의 용도와 이전비용 충당 등을 둘러싸고 서울시와 국방부간의 치열한 신경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