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임순례 감독의 동명영화를 무대화한 작품으로 삼류밴드의 인생역정을 그렸다는 중심 줄거리는 같지만 마지막을 해피엔딩으로 처리, 뮤지컬의 기본 성격인 흥겨움을 살려냈다. |
영화를 뮤지컬화하는 작업은 그다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작년 국내 무대에 올려진 ‘토요일밤의 열기’ ‘풀몬티’ 등이 그렇고,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 ‘왕과 나’ ‘시카고’와 같이 브로드웨이에서 큰 인기를 누린 작품들도 전부 영화가 원작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지금껏 우리나라에서는 영화를 뮤지컬화하는 작업이 시도되지 않았다. 이미 뮤지컬로 자리잡은 작품을 무대에 올리거나 빌려온 형식이었지 처음부터 우리 손으로 바꾼 전례는 없었다. 그런데 올해 국내 뮤지컬계가 영화를 직접 뮤지컬로 바꾸는 노력을 벌이고 있다. 히트 친 한국영화를 중심으로 뮤지컬화하는 움직임이 하나의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인지도 높아 홍보비 절감
그 첫주자로 서울뮤지컬컴퍼니(대표 김용현)는 임순례 감독의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지난 1월31일 무대에 올려 현재 관객들의 호평 속에 무난한 항해를 하고 있고, (주)PMC프로덕션(대표 송승환 이광호)과 영화 제작 및 배급사 쇼이스트(대표 김동주)도 각각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와 ‘친구’의 뮤지컬화를 검토·준비중에 있다.
뮤지컬제작자들이 영화 원작에 관심 쏟는 가장 큰 이유는 흥행성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데 있다. 1차 검증을 거쳤기에 그만큼의 위험부담이 적고 생판 처음 보는 창작물에 비해 인지도가 높다는 점은 분명 불황에 시달리는 공연계를 유혹하기에 충분한 요소다.
서울뮤지컬컴퍼니 박순주 홍보담당자는 “관객이 이미 알고 있는 친숙한 내용이라 마케팅과 홍보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영화에 감동을 느낀 대중에게 좀더 어필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오페라의 유령’ ‘캣츠’ 등 유명 뮤지컬은 비싼 로얄티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수暠봉?떨어지지만 영화를 뮤지컬로 만들 경우 소액의 저작권료만 지불하면 된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들어올 작품은 다 들어왔고, 창작 희곡은 열악한 상황에서 스토리 완성도가 높은 원작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도 뮤지컬제작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창작물 활성화 중간과정
국내 뮤지컬 시장이 외국작 중심에서 창작물 위주로 변하고 있는 시기라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영화나 음악 시장처럼 뮤지컬 시장도 ‘국산’ 위주로 변하고 있는 단계에서 아직 창작 뮤지컬의 토대가 미흡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 발전 과정으로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인 것이다. (주)PMC프로덕션 송승환 대표도 이러한 노력에 대해 “뮤지컬 시장의 고객을 늘리기 위한 중간단계로 궁극적으로는 창작 뮤지컬을 지향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SMG파이(대표 이유리)의 순수창작뮤지컬 ‘페퍼민트’가 남경주, 바다 두 인기스타를 내세웠음에도 저조한 흥행성적을 기록한 것은 아직 완전한 창작물이 받아들여지기에 무리가 있음을 반증하는 사례다.
한편, 영화제작사들도 영화를 뮤지컬화하는 작업을 반기는 눈치다. 버리기엔 아까운 컨텐츠를 새롭게 활용하면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공동제작을 통해 더 많은 이윤도 노려볼 수 있다. 실례로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제작한 (주)명필름(대표 심재명)은 뮤지컬 판권료를 별도로 청구하지 않는 대신 올해 상반기까지 추이를 지켜본 후 하반기에 공동제작 유무를 고려할 계획이다. 좀더 가능성을 타진한 뒤에 투자여부를 정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영화와 뮤지컬 시장의 상생을 위한 방안으로 상부상조의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장르 차이 유념, 재해석 노력
그러나 원작이 흥행성과 완성도를 두루 지녔다해도 뮤지컬이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장르의 속성상 영화와 뮤지컬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뮤지컬의 문법에 맞게 변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주제와 감동적 요인, 캐릭터 등을 재창조하고 특히 장소 변화의 큰 차를 인지, 장면전환에 유념해야 한다. ‘방대한’ 줄거리와 스케일을 좇다 무엇을 말하는지 파악조차 힘든 ‘난잡한’ 작품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뮤지컬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이원종 연출가는 “많은 부분 관객들의 상상력에 의존하는 영화와 달리 실제로 역동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뮤지컬적 문법으로 바꾸는 작업이 힘들었다”면서 “영화의 결말과는 달리 해피엔딩으로 만들어 사람들이 꿈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소중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씁쓸하고 우울한 분위기의 영화를 음악과 춤이 있어 흥겨움을 기본 요소로 갖게되는 뮤지컬로 전환하면서 주제를 수정한 것이다. 영화를 그대로 베끼는 것이 아닌 뮤지컬 장르로의 변형이라 하겠다.
장기적 안목, 창작 여건 마련 시급
영화에서 소재를 차용하는 이같은 추세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제작자들이 흥행성만을 고려해 너무 쉽게 아이템을 구하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다. 창작 희곡의 부족으로 나타난 현상이 도리어 창작 여건을 저해하고 투자를 기피할 수 있다는 걱정에서 출발한 것이다.
한 관계자는 “영화의 유명세에만 너무 의지한 채 정작 작품은 엉성하고 완성도가 떨어지는 위험이 있을 수 있다”며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뮤지컬 고유의 소재 확대와 희곡 작가들의 교육 환경 마련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중적 코드에만 집착해 창조적이고 실험적인 시도가 줄면 당장의 이윤은 있겠지만 더 이상의 발전이 없어 훗날을 봤을 때는 ‘손해’이기 때문이다. 창작 뮤지컬의 활성화로 가는 과도기적 성격을 지녀야지 안일한 마음으로 머무르면 안될 것이다.
그러나 여러 염려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성공한 영화를 뮤지컬로 만드는 사례는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고 아직 국내 뮤지컬 시장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장규모가 커질 때까지는 더 많은 영화가 무대에 올려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