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가 끝났다고 영화팬들은 좌절하지 말지어다. 굵직한 독립영화 축제가 잇달아 열려 5월에도 열기는 이어진다. 자유와 인권을 위한 세계 각국 투쟁의 영상물을 소개하는 인권영화제가 이달 21∼26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서울아트시네마와 신문로 아트큐브에서 펼쳐지고, 며칠 뒤인 29일∼6월6일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독립영화 축제 인디포럼이 서울 종로구 소격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개최된다.
감옥의 인권
인권운동사랑방이 1996년부터 인권의식 확산과 인권교육을 목표로 개최한 인권영화제는 처음부터 각종 검열과 탄압을 받으며 어렵게 출발했다. 이제는 상당히 자리가 잡힌 상태. 올해는 ‘감옥의 인권’이란 주제로 8회를 맞는다.
이 주제에 맞게 5편의 해외작이 상영된다. 스티브 제임스 감독의 최신작 `‘스티비’는 한 인물의 불우한 일상을 4년 반 동안 관찰한 감독의 연대기. 가족과 범죄, 사법제도 등의 다양한 문제들을 조망했다. 브레드 리츠텐스테의 ‘아티카의 유령들’은 1971년 아티카 감옥에서 일어난 미국 역사상 가장 폭력적인 감옥 내 반란 진압 사건을 고발했다. 폴로렌스 조제이 감독의 ‘잃어 버린 아이들의 섬’은 니카라과에서 가장 큰 교도소의 재소자들이 자신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는 제작 워크숍 과정에서 동료 재소자와 끔찍한 형벌 공간을 찍으며 이중의 고통을 겪는 모습을 담았다.
헤르츠 프랑크의 ‘제한구역’은 소년 교도소에서 생활하는 소년의 주변부적인 삶을 보여주면서 교정 시설의 음지와 양지에 대해 섬세하게 통찰한다. 캐서린 스콧 감독의 ‘처벌의 이윤’은 카메라는 민영화된 감옥 산업이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 속에서 막대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하나의 산업으로 급부상하는 현실을 포착, 이것이 과연 감옥 속 죄수들의 인권은 물론 우리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생각하는 다큐다.
이와 함께 2003년 청송보호감호소에서 가출소한 조석영씨와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면서 독립영화 스태프로도 일했던 이동희씨가 사전제작비를 지원 받아 제작한 작품을 선보인다.
개막작 ‘아나의 아이들’
2004 인디포럼 포스터 |
개막작은 이스라엘과 네덜란드의 합작 다큐멘터리 ‘아나의 아이들’이 선정됐다. 1950년 아랍 청년과 결혼한 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파괴를 고발해온 유대인 여성 아나의 이야기를 담았다.
개막작을 포함해 일반 해외상영작은 ‘멈추지 않는 그녀들’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 나의 살 나의 피’ ‘회사’ ‘저항하라!’ 등 15편. 국내 일반 상영작은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계속된다’ ‘잊혀진 여전사’ ‘노들바람’ `학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 공모를 거쳐 선정된 15편이 소개된다. 이밖에 애니메이션 6편, 비디오 저널리스트의 작품 4편이 상영된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장애인에게 음향수신기를 나눠주고 일부 작품에 한국어 더빙이나 화면 해설을 넣어 장애인의 영화 관람을 돕기로 했다. 이번 영화제에는 개막작 감독 줄리아노 메르카미, ‘히바큐샤:세상의 끝’의 감독 히토미 가마나카 등 독립영화계의 세계적인 인사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보지만 보이지 않고, 보이나 믿을 수 없는’
올해로 9번째를 맞는 인디포럼은 영화의 본질, 관객과 작가의 소통에 대해 고민하는 ‘보지만 보이지 않고, 보이나 믿을 수 없는’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영화는 관객과 작가의 소통의 매개며, 영화를 만들고 관람하는 것은 사회적 행위다. 하지만 이 사회적 행위 속에는 보는 이와 보여주는 이의 세계에 대한 ‘보이지 않는’ 이해관계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작가는 유통업자와 관습에 의해 길들여지고, 관객은 조작된 세계를 망각하거나 인식하지 못하고 받아들인다. 그래서 시각 매체는 ‘보이나 믿을 수 없는’ 세계다. 이 조작된 세계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이번 인디포럼의 주제.
이번 영화제는 약 380편의 접수 작품 중 국내공식상영작으로 25편이 결정됐다. 사전제작지원작 5편과 해외초청작 25편, 국내초청작 3편을 포함하여 총 58편이 상영될 예정.
이번 국내 공식 상영작은 장르와 매체의 형식 구분 없이 선정됐으며, 상영 편수는 지난해에 비해 반으로 줄었다. 이에 반해 해외 초청작은 지난해보다 10편 정도 늘었다. 전체적으로 장르가 다양해졌고, 장편영화가 늘어났다. 다큐멘터리 여성감독 작품의 두각 또한 눈에 띄는 특징이다. 상영작 목록에서 개·폐막작이 없어진 것도 특이한 사항. 개·폐막작이 인디포럼이 내거는 비경쟁의 가치에 맞지 않으며 인디포럼의 대표작으로 오인되는 경향이 강해 논란의 소지가 많았다.
해외 다큐 풍성
국내 공식 상영작은 박은영 감독의 ‘Rendez-vous’ 최태연 감독의 ‘비두’ 김곡 김선 감독의 ‘자본당선언:만국의 노동자여, 축적하라!’ ‘빛과 계급’ 안현준 감독의 ‘면회’ 이난 감독의 ‘AMNESIA 11518405’ 노재승 감독의 ‘창호는 누구에게 물어보나?’ 손광주 감독의 ‘제3언어’ 채기 감독의 ‘빛나는 거짓’ 전선영 감독의 ‘조우’ 민제휘 감독의 ‘견딜 수 없는 것’ 윤용훈 감독의 ‘사랑하는 나의 임 못보셨소?’ 이지상 감독의 ‘십우도1:심우-소를 찾아서’ 허기정 감독의 ‘TALPEL-DUREE’ 정수연 감독의 ‘봄이오면’ 류미례 감독의 ‘엄마…’ 이경순 감독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곽인호 감독의 ‘구멍’ 박은영 감독의 ‘오뎅 먹는 여자’ 함영준 감독의 ‘그의 평범한 친구들’ 등이 선정됐다.
국내 초청작은 장민용 감독의 ‘The Dark Room’ 장민용 감독의 ‘The Moment’ 김미례 감독의 ‘노동자가 아니다’가 상영된다.
올해 인디포럼은 캐나다, 일본의 실험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초청한다.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미국과 유럽의 실험영화를 국내 관객과 만나게 했던 캐나다 미디어 씨티9 영화제의 화제작 15편과 일본 실험영화 집단 FMIC 그룹의 작품 8편, 일본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작가들의 실험적인 다큐멘터리들 2편 정도가 선보일 예정이다.
이밖에도 같은 시즌에 열리는 주목할만한 작은영화제가 있다. 광주인권운동센터는 30일 전남대 후문 광장에서 ‘차별에 저항하라’는 주제로 미니 인권 영화제 성격의 상영회를 열며, 서울아트시네마는 개관 2주년을 기념하는 영화제 ‘시네필의 향연’을 19일까지 개최한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