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총리가 5월25일 퇴임식을 마치고 청사를 떠나기 위해 차에 따고 있다. |
고건 전 국무총리는 각료제청권 행사여부를 놓고 “물러나는 사람이 제청권을 행사하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제청권 행사를 심각하게 고민해 왔으며 심지어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이 두 번씩이나 제청권 행사를 요청했으나 아무런 확답을 주지 않은 바 있다.
이에 한나라당은 고건 전 총리를 ‘소신있는 행정가의 표본’이라고 치켜세우고 “고건 전 총리가 제청권 행사를 거부하는 것은 후임총리에 대해 예의를 지키는 것으로 지극히 정당한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열리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소신도 좋지만 공직자로서의 자신의 책무에 우선해야 하지 않느냐’며 유감을 나타냈다. 또 일부 인사는 “고건 전 총리의 제청권거부는 지난 공직생활을 뒤돌아 볼 때 지극히 당연스런 고건 총리다운 행동이었다”며 “부처 개각을 둘러싼 정치권으로부터 불어올 후폭풍을 미리 피하기 위해 자신의 의무인 제청권행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은 지난달 24일 한 라디오프로그램에 출연 “대통령이 그렇게 해달라고 요청한대는 나름대로의 현실적인 이유가 있고 새총리가 인준과정을 거쳐 새 임명 동의 받으려면 한달이상 시간이 걸려 참여정부 집권 2기 구상에 많은 어려움을 안겨주게 됐다”고 말했다. 또 민주노동당 노회찬 사무총장은 “총리가 내일 물러나더라도 총리로서 권한은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함께 한 인사는 고건 전 총리가 민선 서울시장 재직시절(98년 7월~2002년 6월) 각종 위원회를 통한 시정운영을 주도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면서 당시 시청 출입기자들사이에서 고건 전 시장을 놓고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다’라고 말 할 정도로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은 절대로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청와대는 이번 사태를 놓고 자칫 노 대통령과 고건 전 총리의 감정싸움으로 비화될 것을 우려해 공식적인 반응을 자제하고 있으나 대체로 섭섭하다는 분위기 속에 일부에서는 어쩔수 없는 선택아니었겠느냐는 긍정론자도 뒤섞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인사권자는 대통령인데 고 총리가 왜 절차적 규정에 불과한 제청권을 고집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물러가는 총리가 새 장관들에 대한 재청권을 행사하는게 맞는 것인지에 대한 판단의 차이가 아니겠느냐”고 말하는 등 고 총리 입장을 이해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다.
고건 전 총리는 지난달 25일 제35대 총리직을 끝으로 기나긴 공직생활에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고건 전 총리는 퇴임후 계획에 대해 부친인 고형곤(99세) 박사의 건강악화 때문에 “당분간 국내에서 우리나라 통일문제 등 미래역사를 좀 더 공부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주변에서는 행정경험을 그대로 묻어두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든 활용 할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정기철기자 chuki@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