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경기침체로 기업들의 자금난이 가중되고 있다. 경기침체의 장기화는 올 하반기 중소기업 발 ‘신용대란’ 가능성까지 점쳐지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정부와 금융권에서는 중소기업 지원대책을 속속 내놓고는 있지만, 현실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의문시된다.
위환위기보다 자금사정 나빠
경기침체 장기화 됨에따라 올 하반기 중소기업발 '신용대란' 가능성이 점쳐지는 등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 (사진은 7月27日 국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활성화 방안 정책 토론회 장면) |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 서울지역 제조업체 260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중소기업들은 자금난이 외환위기 때보다 더욱 나쁜 상황으로 보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자금사정이 가장 나빴던 시기로 40.7%가 ‘현재’라고 답해 ‘외환위기 당시’라고 응답한 35.4%보다 5%포인트 이상 높았다.
또 현재 자금사정에 대해 ‘나쁘다’(43.1%)라는 의견이 ‘좋다’(24.6%)를 훨씬 앞질렀다.
이 같은 결과는 지난 7일 정부의 조사에서도 같은 결과로 나타났다. 정부가 전국 7,000개 업체를 대상으로 한 ‘중소기업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출금 이자나 원금을 연체하고 있는 곳이 17.5%에 달하고 61.2%는 2001년에 비해 경영상태가 더욱 나빠졌다고 밝혔다.
아울러, 중소기업의 71%는 대표나 임원이 개인적으로 대출받아 사업에 돈을 투자하는 등 기업의 자금난이 임원들에게까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연체율·부도기업 늘어나
최근 금융당국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대출금 연체율이 급증하고, 어음부도율이 증가하는 등 재정상태가 악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의 연체율이 2001년 이후 지속적인 상승세를 유지하는 형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001년말 중소기업의 연체율은 1.9%로 대기업 1.8%와 유사한 상태였지만, 이듬해인 2002년부터 그 격차가 점차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은 2002년 2% 지난해말 2.1%로 매년 1%포인트 가량 늘어났던 것이 올 들어서는 3%에 육박할 정도다.
연체액 또한 5월말 5조6,100억원에 육박하는 등 지난해 말 3조7,700억원에 비해 무려 50%(1조8,400억원) 가량 늘어났다.
중소기업 대출에 대한 만기가 속속 돌아오는 것도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6월말 현재 중소기업 대출은 248조8,000억원으로 이는 2003년 말 237조7,000억원에 비해 11조원 가량 늘어난 수치다. 이 가운데 70%에 육박하는 148조원이 1년 미만의 단기대출이어서 중소기업의 자금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34조원의 만기가 1∼3년이고 장기대출인 3년 이상은 35조원으로 최근 수년간에 걸친 대출금의 만기도래로 중소기업의 자금난과 채무상환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
어음부도율은 6월말 현재 0.06%로 전달 0.10%에 비해 0.04%포인트 하락해 수치상으로 좋은 것처럼 보였지만, 대도시의 부도 법인 수에 대한 신설법인의 배율은 전월의 13.6베에서 15.5배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부도가 발생하는 업체가 대부분 중소기업인 점과 연쇄부도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재정상태가 열악한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중소기업을 대기업으로?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현실로 이어지면서 정부가 이를 지원하기 위한 각종 대책을 세웠지만, 그 실효성이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방안은 두 가지 정도.
지난 7일 발표한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종합대책’과 오는 10월 국회에 제출예정인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중소기업 종합대책의 경우 퇴출과 인수·합병(M&A) 등을 통한 솎아내기를 함과 동시에 정부가 맞춤형 지원을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맞춤형 지원이란 해당 중소기업이 혁신 선도형이냐 중견자립형이냐, 소상공이냐에 따라 지원을 달리하는 한편, ‘창업→성장→대기업화(또는 구조조정)’의 성장단계로 지원을 차별화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경제침체는 대기업 중심의 정책에서 잘못됐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업화 한다는 정책에 재계의 시선이 곱지 않다.
이와 관련 업계는 “중소기업 종합대책을 발표한다면서 대기업으로 만들겠다는 발상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현금결제하면 손해
지난 2000년 처음으로 도입된 기업구매전용카드를 위한 현금대출비중을 높이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되고 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물품을 구입한 후 30일 이내에 현금으로 지불하면 저금되는 세액공제 혜택을 60일로 확대 적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국회에 대출 내년부터 시행할 방침이다.
개정안에는 현재 대기업이 물품구입 후 30일 이내 현금결제를 할 경우 결제금액의 0.3%를 세금에서 깎아주고 있는데 내년부터는 31∼60일 사이에 현금결제가 이뤄지면 0.15%를 할인 받을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10억원 가량의 물품을 구입한 대기업이 대금결제를 30일 이내에 현금으로 처리하면 300만원 31∼60일 이내로 대금을 지불하면 150만원을 법인세 등에서 감면해 준다는 내용.
결제방법은 현금을 제외한 환어음,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 기업구매전용카드 등으로 한정된다. 정부는 이번 정책으로 인해 대부분 기업들이 사용하는 90일 짜리 어음의 활용도는 상당히 낮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동성 자산이 필요한데, 유동성 자산의 가장 기초적이라고 할 수 있는 현금결제 제외되면서 그 효과가 의문시된다.
재계는 “일반적으로 현금결제가 중소기업의 자금난에 가장 효과를 볼 수 있음에도 세제 혜택이 없는 것은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말했다. 재계는 또 “30일 이내로 한정돼 있던 세금감면 기간을 60일까지 확대한 것은 90일 짜리 어음을 끊는 기업이 60일 짜리로 조절할 수는 있을 것”이라 면서도 “그러나, 현재 30일 짜리로 대금결제를 해주는 기업은 오히려 60일 이내를 결제기간으로 정해 중소기업에 나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현금결제를 해 줄 경우, 법 개정 이전에 즉시결제를 했던 기업의 세금을 어떻게 소급해 줄 것인가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전제한 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즉시결제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신종명 기자 skc113@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