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2003년 8월 열린 제1차 6자회담을 시작으로 지난 6월 베이징 3차 6자회담(2004년 6월23~26일)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한 핵 폐기’와 ‘그 첫 단계로서의 동결 및 검증’이라는 원칙하엔 공감하는 등 회담자체에 매우 희망적인 요소가 보이기도 했다. 이에따라 참가국들은 제3차 6자회담에서 상당한 이견을 보였던 동결 범위와 검증방법, 보상 방안과 그 시점 등을 논의하기 위한 제4차 6자회담을 지난달 말 이전에 개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북한은 최근 남한 핵물질 실험의 진상이 규명되기 전에는 6자회담에 참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미 대선 문제 등과 맞물려 제4차 6자회담의 연내 개최는 사실상 물건너갔다는 의견들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과학자 핵 실험이 화근
한국원자력연구소 과학자들은 지난 2000년 1월~2월 실험차원에서 첨단기술인 레이저 분리법에 의해 우라늄을 농축한 적이 있으며 정부는 국제법상 규정에 따라 이같은 사실을 관련기구에 신고했다.
하지만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9월16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남조선 비밀 핵실험 사건의 진상이 완전히 해명되기 전에는 우리의 핵무기 계획에 대해 논의하는 마당에 나갈 수 없다”며“미국의 날로 노골화 되는 대 조선 적대시 정책과 최근 남조선에서 연이어 드러난 핵관련 비밀실험이 커다란 난관을 조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아사히 신문은 ‘설마 한국에서’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번 실험은 북한과 합의한 비핵화선언에도 반하며 북한에 대해 핵포기를 요구할 정당성을 잃을 수 있다”며 한국 정부를 강력히 비판했다. 또 미국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언론도 “이번에 사용된 레이저 이용 우라늄 추출방식은 너무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어 주로 정부 주도 무기개발 프로그램과 관련이 많다”며 한국정부 관련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핵무기 제조 관계없어
국제원자력기구(IAEA)직원이 계속적으로 한국에 상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과학자들이 굳이 우라늄 분리실험을 한 이유는 무엇이며 실험후 2년이나 지난뒤 관련기구에 신고한 것은 무엇일까.
이에대해 정부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핵무기제조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학기술부는 “원자력연구소의 우라늄 분리 실험은 원전 연료 국산화 연구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지, 우라늄 농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설명했다. 우라늄은 자연 상태에서 원자량 238과 235가 섞여 있으며 원자력 발전 및 우라늄 핵폭탄에 사용되는 우라늄은 235다. 그러나 자연상태에서는 우라늄235가 전체의 0.7%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농축과정이 필요하며 핵폭탄은 그 비율이 90% 이상이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 과학자들은 우라늄농축에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으며 핵 반응 속도를 늦춰 원전 운용에 도움이 되는 천연 우라늄에 포함된 가돌리늄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추가적으로 분리된 우라늄 0.2g만을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신고시기에 대해 농축당시에는 신고대상이 아니었으나 지난 2월 우리나라가 비준한 ‘IAEA안전조치 추가의정서’에 의하면 신고대상에 포함돼 있어 2000년 초 실험차원에서 첨단기술인 레이저 분리법에 의해 우라늄을 농축한 사실을 뒤늦게 신고한 것이며 보관중인 우라늄 0.2g은 방한중인 IAEA 사찰단에 공개했다고 덧붙였다.
미국내 북한 강경자세도 문제
이와함께 제4차 6자회담의 연내개최가 어렵다고 주장하는 데에는 미국 대선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북한이 회담 불참의 핑계로 한국의 핵 실험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속내는 미국과의 껄끄러운 관계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미국은 제3차 6자회담에서 ‘단계적 해법’을 수용하며 일시적으로 유연한 태도를 보였으나 최근 미 대선에 나선 부시정부가 북한을 강경하게 압박하는 카드를 내세워 대선승리에 이용한다는 점이 북한을 자극하고 있다. 이에따라 북한은 불과 1개월여 남짓 남은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제4차 6자회담에 참여해 봤자 아무런 실리도 챙기기 못할게 뻔한 상황에서 회담에 응한다는 것은 북한에 대해 강경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선거운동만 도와주는 꼴이 되므로 회담을 미대선후로 미뤄자는 속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내부사정도 한 몫
하지만 북한이 제4차 6자회담을 연기하는 데에는 북한내 사정도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여기에는 미국의 행정부 및 군 당국자, 정보 분석가 15명이 극비리에 방한해 지난 9월15일부터 사흘간 서울에 머물면서 주한 미 대사관에서 비공개 북한 동향 분석을 한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북한 동향을 가장 먼저 접하고 이를 분석해 상부에 보고하는 미국의 북한 실무자들이 비밀리에 서울에서 회동한 것 자체가 북한내 심상찮은 변화가 감지된 것 아니냐는 추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같은 추측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우선 평양 시가지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사진과 포스터에 스프레이 페인트가 칠해진 것이 목격됐고 김 위원장을 비난하는 메시지를 담은 전단지가 뿌려졌다는 첩보가 미 행정부에 입수됐다는 데 있다.
이와함께 미 행정부 관계자는 용천역 폭발에 대해서도 김 위원장과의 연관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정보소식통은 용천역 사고가 김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숙청하기 위한 자작극이란 설까지 제기하고 있을 정도로 북한내 사정이 어지럽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국과 북한의 회담자세가 중요
그렇다면 앞으로 개최될 제4차 6자회담은 언제쯤 가능하게 될까.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북한과 미국의 회담방식은 철저한 ‘기브 앤드 테이크’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3차 회담에서 핵 동결에 대한 보상으로 △미국의 200만Kw 대북 전력 지원 참가 △북한에 대한 미국의 테러지원국지정 해제 △대북 경제제재 해제 등을 요구했었다. 이에 미국 스콧매클렐린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은 3차회담에서 제시된 미국의 제안에 대한 북한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는 등 여전히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6자회담의 차기회담 개최까지의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 등 탄력을 받고 있는 점에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서도 향후 개최 예정인 제4차 6자회담 시기에 대해서는 한국 핵실험 사찰결과 및 미국 대선 등의 영향으로 내년 초가 유력한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6자회담이 예정대로 내년 초에 개최된다고 하더라도 북-미 양국간 불신의 골이 여전히 깊어 상대에 대한 요구수준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경우 협상 전망은 맑지 않을 것만은 확실하다.
정민철기자 chull@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