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큰 책 '부탄'. 가로 1066mm, 세로 1524mm로 부탄왕국에 기부금을 내면 수제로 책을 만드는 주문방식으로 제작된다. | 가로 세로 각 1mm에 불과해서 돋보기로 들여다봐야 하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책 '올드 킹 콜'. 스코틀랜드 자장가를 담은 이 책은 석판 인쇄 방식으로 수제 제작됐다. |
‘독서의 계절 가을’이라는 전형화 된 말은 사실 지금 이 시대에 그다지 살아있는 문구 같지는 않다. 그만큼 책, 특히 문자와 종이로 만들어진 고전적 의미의 책은 그 존재 가치가 퇴색해가고 있다. 문자 자체가 성스러웠던 존재였고, 그 문자를 담는 책은 말할 것도 없이 귀한 것으로 여겨지던 과거와는 판이해진 현실이다. 종이가 귀하던 과거에 책은 부의 상징이었다. 현대에 이르러 책은 대중화됐고, 지식과 문명의 상징이 됐다. 그리고 지금 책은 때로 오락이고, 때로 예술이다. 책은 모든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책은 상호작용까지 가능하게 됐다. 이 같은 시점에 책의 역사를 한 눈에 보는 책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구텐베르크 성서에서 미야자와 리에 누드집까지
민간인으로는 가장 많은 고서를 소장하고 있는 여승구씨(화봉문고 대표)가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350평, 4층 규모의 화봉책박물관을 건립했다. 그리고 개관 기념으로 흥미로운 전시회도 열었다. ‘세상에서 제일 큰 책, 세상에서 제일 작은 책’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전시는 책이 가진 역사 문화적 의미를 한 눈에 읽게 할 뿐만 아니라 책의 시각적 즐거움도 더불어 안겨주는 문화적으로 풍부한 의미가 담겨있다.
가로 1066mm, 세로 1524mm에 116 페이지, 무게가 약 50kg가 나가는 이 어마어마한 책은 기네스북에 오른 세상에서 제일 큰 책으로 히말라야 산맥 속의 은둔의 나라 부탄의 역사 문화 자연 사람에 관한 사진집 ‘부탄(BHUTAN)’이다. 반면 세상에서 제일 작은 책은 스코틀랜드 자장가를 12페이지에 담은 ‘올드 킹 콜(OLD KING CLUE)’로 가로 세로 1mm에 불과하다.
내년 2월28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이 두 책 외에도 중국 일본 헝가리 멕시코 독일 이탈리아 티벳 등 전세계 30여개국 945권이 소개된다. 구텐베르크의 성서, 1885년판 성가집, 세계 3대 미서의 하나인 잉글리쉬 바이블, 아랍어 코란, 한중일 삼국대장경 습엽집, 조선의 죽간, 중국 갑골문, 인도네시아 패엽경 등 눈으로 직접 확인할 기회가 드문 고서는 물론 미야자와 리에의 누드집 ‘산타페’와 마돈나 누드집, 동계올림픽 선서문 등 각종 책들이 전시됐다.
23년 동안 13만4,000여권 수집
화봉책박물관에는 여승구 관장이 23년 동안 전 세계에서 수집한 13만4,000여권의 책이 소장돼 있다. 고활자본에서부터 고지도 고문서 신문 잡지 포스터 영화사 자료 등 서적의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1982년 종로구 서린동에서 서점을 운영하던 중 ‘서울 북페어’ 개최를 계기로 책을 모아왔다는 여씨는 책의 수집을 위해 일본과 유럽 등 각국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여씨의 소장품 중에는 ‘천로역정’의 일본 초간본과 김소월의 ‘진달래꽃’ 한용운의 ‘님의 침묵’ 초판본, 1568년 발간된 한국 최초의 백과사전으로 알려진 ‘고사촬요’ 등 희귀본이 상당 포함돼 있다.
박물관에만 갇혀 있는 책이 아니라 소장 서적들이 대중과 호흡하기를 원한다는 뜻에서 전시를 마련했다는 여씨는 “우리의 고서는 구텐베르그의 금속활자보다 50~100이나 앞섰다”며, “이번 전시는 우리 문화재를 국민 곁에 가까이 두기 위한 고독하고도 슬픈 노력의 한 방법이라고 인식해 준다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어떤 책이 어떤 시기에 존재했다는 것만으로 그 시대의 문화 정치 사상적 배경을 간파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운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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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