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빗 뱅킹, VIP, 플래티늄 같은 말이 요즘 심심찮게 쓰인다. 국내 상위 2% 이내의 소수의 사람들이 누리는 특별함. 평범한 샐러리맨은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것들이 이 안에는 있다. 그들의 삶을 그려보면 대충 - 최고급 서비스에 양탄자가 깔린 넓고 쾌적한 공간에는 고가의 명품 인테리어로 장식돼 있고 우아한 클래식 음악이 흐른다. 사람들은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몸을 감싸고 있고, 그들을 대하는 서비스맨들은 항상 최고의 대우를 자청한다-아마도 흔히 TV에서 보는 이런 것들을 상상할 것이다.
부자열풍이 불고, 결혼상대로 ‘사람’보다 ‘돈’을 더 따지는 세상, 신데렐라 신드롬이 이는 것도 이런 특별한 그들만의 삶에 끼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심리때문일 것이다. 경기악화로 서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반면, 한쪽에선 가격에 상관없이 ‘나’만을 위한 특별한 서비스에 만족하며 돈을 물쓰듯, 써댄다.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말이 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는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특별해지길 원한다. 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한 VIP 기법을 마케팅에 도입해 활용하는 업체들이 크게 늘고 있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VIP’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과는 딴 세상에 사는 사람들, 때문에 거부감을 갖게 되는 대상이었지만, 요즘은 일상용품에서 금융서비스까지 전 산업범위로 VIP 마케팅이 확대되고 있어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광고없이 ‘입소문’으로만 판매
국내 마케팅 전문가들은 일반고객에 비해 부자고객을 상대로 한 마케팅이 20배 이상 더 수익효과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경기변화에 영향에 민감한 일반 소비자 수십명보다, 자신의 가치를 최고로 생각하는 상위계층 1명의 고객에게 잘하는 게 훨씬 더 이득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흔히 말하는 VIP 고객의 기준은 어디까지 일까.
일단 업체들은 VIP고객에 대한 정보를 절대 밝히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딱히 어디까지라고 말할 순 없다. 그야말로 ‘특별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것마저도 ‘특별대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VIP라 함은, 국내에서 은행에 최소한 현금 1억원 이상을 은행에 예금해 둔 사람이다. 국내 약 90만명이 이에 속하고, 10억원 이상을 예금해 둔 사람들도 5만명 정도 된다. 연소득이 1억원을 넘는 기업체임직원들이 약 2만명이고, 230여만명의 자영업자 중에서 약 80만명 이상이 연소득 1억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계층의 소수만을 대상으로 하는 귀족마케팅은 TV나 신문광고를 하지 않고, 그들만의 ‘입소문’으로 판매하는 것이 특징이다. 최고가의 가치를 지닌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정성’인 셈이다. 귀족 마케팅은 높은 가격을 받는 대신 최고의 품질과 서비스를 해 준다. 선택된 소수만을 위해 제공되기 때문에 무엇하나 거슬릴 게 없다. 이런 만족감에 고객은 일반 제품의 몇배에서 몇십배에 달하는 돈을 기꺼이 지불하는 것이다.
LG투자증권 김남순 PB(Private Banking) 사업본부장이 VIP 고객 247명의 금융기관 이용성향을 분석한‘금융기관 자산관리업의 마케팅 전략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VIP 고객들은 금융회사 선택시 금융상품 수익률보다 직원서비스와 지점 환경 등에 더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직원이 투자상담을 잘해주거나 고객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잘해주는 금융사가, 금융상품이 다양하거나 금융상품 수익률이 높은 곳보다 고객유인도가 더 높다는 것이다.
IMF이후 귀족마케팅 활발
국내에서 귀족마케팅의 역사는 굉장히 짧다. 그렇다면 최근들어 귀족마케팅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일까. 삼성경제연구소의 ‘고급소비와 기업들의 대응’ 자료에 따르면 특히 IMF이후 우리 사회에 소득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으며, 이는 소비의 양극화로 이어졌다. 즉 상위 20%의 ‘가진자들’의 구매력과 소비가 나머지 ‘못가진자들’보다 훨씬 매력적인 대상으로 부상했다는 점이다. 또한 이면에는 소비세력들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즉 예전에는 고가품을 구입하는 층이 극히 한정돼 있었지만 지금은 부유층의 증가와 고가품에 대한 실수요자가 늘고 있다. 또한 소비자들의 고가품에 대한 거부감이 약화된 것도 요인 중 하나다.
귀족마케팅에서 거론되는 소집단 파워는 파레토의 법칙인 80:20의 법칙을 응용해 20% 가진자들에 대해 적용되며 제품의 런칭에서 마케팅 방법, 사후관리, 현재 각광받는 CRM기법 등이 모두 적용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귀족마케팅은 기존의 마케팅에서 행하고 있는 예측(prediction)을 무시한다. 즉, 제품 또는 서비스에 대한 개인적 가치가 가장 중요한 요인일 뿐, 일반 마케팅에서 행하는 마일리지, 쿠폰제 등의 할인제나 one plus one 등의 끼워주기 등 가격과 이코노미컬한 부분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귀족 마케팅은 특히 이부분에서 일반 여타의 마케팅 대상과 확연히 차별화 된다.
귀족마케팅의 대상인 부유층은 일반 마케팅 대상과는 전혀 다른 성향과 행동패턴, 소비패턴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마케팅 방법으로는 이 계층에게 충분히 매력을 주지 못한다. 효과적인 방법에 대해 정석은 없으나 부유층 특성에 맞는, 설사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라도, 통한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홍경희 기자 metell@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