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검찰단은 지난 10월15일 단행된 육군 장성 진급인사에서 비리가 있었다는 내용의 괴문서가 지난달 22일 국방부 인근 건물 지하주차장에 살포된 것과 관련해 육군본부에 대해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군 검찰은 23일 오전부터 압수한 진급 심사 관련 서류를 정밀 조사하고 있으며 괴문서 내용의 일부가 사실로 확인된다면 관련자들의 징계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군 검찰이 육군본부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하기는 창군이래 처음있는 일로 최악의 경우 괴문서의 사실 여부를 떠나 남재준 육군참총장의 문책과 용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져 나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례·유형 구체적 나열
11월22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인근의 장교숙소인 레스텔 건물 지하 주차장에서 육사 00기 동기생 모임회원과 국방부·육군본부 대령 연합회원 명의로 된 A4용지 두쪽짜리 투서 10여장의 괴문서에는 남 총장을 비롯한 육군 수뇌부 3인방이 준장 진급이 되어서는 안될 인물 20명(16명 실명 공개)을 진급시켰다면서 10가지 사례와 유형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문서에 등장하는 부당 진급자 10대 사례는 △음주운전 뺑소니 전력자 △비도덕적 행동으로 민간인들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은 자 △품위손상과 부대지휘 결함으로 처벌을 받았던 자 △조직내 갈등을 유발해 보직해임이 됐던 자 △업무능력 부족 등으로 부하들의 지탄을 받는자 △인사청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자 △정확한 기준도 없고 다음보직도 고려되지 않은 채 진급된 자 △외부기관의 입김에 의해 근무실적도 없이 진급한 자 △남의 업무실적을 가로채고 부인을 상관 집에 식모살이 시킨 자 △기타 군내 여론상 진급돼서는 안되는 자로 정리돼 있다. 괴문서는 여기에다 개인 진급 비리뿐 아니라 “육군참모총장이 새로 설치한 인사검증위원회가 유능한 야전부대 인원의 진급을 가로막고 있다. 육군 인사 관련 장성 3인방이 측근들만 챙기고 있다”는 등 인사 시스템 전반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괴문서는 이와함께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금년도에 진급한 장군들을 영원히 ‘똥별’ ‘돈별’ ‘식모별’로 취급하겠다”는 격한 표현도 서슴지 않고 있다.
장성인사 4심제로 진행
육군은 물론 해군 공군에서도 장성 진급때만 되면 각종 괴문서와 투서, 소문이 끊이지 않았던게 관례다. 이들 대부분은 무시됐으며 투서자 및 소문 발설자에 대한 조사도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던 것에 비추어 볼 때 이번 군검찰의 전격적인 육군본부에 대한 압수수색에 대해 군관계자들은 당황한 기색이 뚜렷하다.
그러나 육군 관계자들은 여전히 투서 내용 중 상당수는 과장됐으며 장성인사는 철저한 심사와 검증을 거쳐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육군 장성인사는 4심제로 진행하고 있어 검은손이 침투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갑을병 3개의 선발위원회에서 각각 진급 후보자를 추천한 후 최종 선발위원회는 3곳 모두에서 추천된 사람을 1순위, 2곳에서 추천된 사람을 2순위, 1곳에서 추천된 사람을 3순위로 분류하게 된다. 이후 최종 진급대상자들은 육군참모총장과 국방부 장관의 결재를 받은 뒤 국무회의를 거쳐 진급이 확정되는 절차를 거치고 있다. 여기에다 올해는 청와대 인사추천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최종 대상자들에 대한 검증 절차를 밟았으며 이 과정에서 2명이 교체되는 사례도 발생했었다.
수색영장 ‘월권논란’ 등 반발
육군 장성들은 군의 생명인 지휘권을 문란케하는 음해성 투서는 조사하지 않고 장성진급 과정에 비리가 있었다고 주장한 무기명 투서를 근거로 육군본부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단행한 것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육군의 ㄴ소장은 “이번 조치로 모든 육군 장성들이 비리에 연루된 것처럼 비쳐져 부하들을 지휘하기가 힘들어 졌다”며“비리의혹을 제기한 것은 진급에 탈락한 장교들의 음해의도가 다분함에도 이를 근거로 압수수색 한 것은 군검찰의 폭거다”라고 주장했다.
이와함께 군사법원이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와 관련장교들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해 준 데 대한 월권행위라는 주장도 펼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현행 형사소송법에는 ‘범죄 수사에 필요한 때’에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수사의 필요성은 수사기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제한없이 영장을 발부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는 것이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즉 압수수색의 대상과 범죄사실의 관련성, 압수대상물이 지정한 장소에 존재할 개연성, 강제처분 비례의 원칙 등이 충족돼야 영장을 발부할 수 있는데도 단순히 무기명 투서를 근거로 영장을 내준 것은 ‘초법행위’라는 것이다.
이에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한 군사법원 관계자는 “군판사가 영장에 기재된 내용을 읽고 범죄혐의가 있는 것으로 판단해 영장을 발부한 것으로 안다”며 무리한 영장발부 지적을 전면 부인했으며 검찰단 관계자도 “내사를 벌이던 중 대령 1명의 범죄혐의가 포착돼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으며 이는 투서의 부정확성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청와대·국방부 기획수사설 제기
군 검찰은 11월24일 육본 인사참모부 소속 대령(진급예정)과 중령 2명을 소환조사했으며 25일부터는 장성급으로 수사를 확대해 선발위원회 등 인사 결정라인에 대한 소환 대상자를 선별하는 작업을 진행중에 있다. 이처럼 수사가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진행되자 일부 육군에서는 이번 수사 배경에 청와대와 국방부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번 인사비리 의혹은 이달 초 이미 청와대에 접수됐고 이달 중순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의 지시로 지난달 18일부터 육군본부에 대한 내사를 실시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내사과정에서 군 검찰이 필요한 자료를 육군에 요청했으나 2차례나 거부당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수사를 진행하는데 의혹의 시선을 보내는 우선적인 원인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육군 장성들은 조영길 전 국방부 장관이 올 4월 군 안팎에서 난무해온 악성루머나 음해성 투서에 강력 대응하겠다고 한 약속이 윤광웅 국방장관이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장성흔들기를 위한 기획수사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청와대측은 이에 대해 “투서가 접수되자 정상적으로 해당 기관에 전달했을뿐 어떠한 특정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 수사는 엄정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또 신현돈 국방부 공보관은 “수사결과에 따라 관련자를 적법한 절차대로 처리할 것”이라며“괴문서 작성자는 반드시 색출해 엄벌한다는 것이 확고한 방침”이라고 말했다.
또 열린우리당은 “군 인사비리 투서사건에 대한 국방부 조사결과가 미흡할 경우 군 인사 전반에 대해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며 국방정책 담당인 안영근 제2정책조정위원장은 “이번 투서사건으로 뇌물과 식모살이는 물론 인맥을 동원한 로비, 내사람 감싸기, 위인설관 등 그동안 소문처럼 떠돌던 ‘진급비리 7거지악’이 수면위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그동안 장성진급 때마다 외부 권력 동원이나 금품 로비 등의 잡음이 무성했으나 진상규명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사상 처음으로 수사차원의 조사가 시작된만큼 인사비리 의혹의 실체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