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이 새로운 자기계발 키워드이자 성공의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관련서적과 세미나가 쏟아지고, 인맥에 대한 가치관 또한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한국인 라이프스타일 특성과 기업의 대응전략’이라는 보고서에 의하면 신세대의 핵심역량은 네트워크 활용과 관련된 마인드와 기술이다. 어떤 방법을 아는 것(know-how)보다 누구를 아는가 하는 노후(Know-who)가 더 중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10명 중 8명 ‘낙하산 아닌 능력’으로 인식
최근 HR포털 인크루트(incruit.com)의 설문조사 결과는 인맥에 대한 의식 변화를 한 눈에 보여준다. 직장인 1,514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직장인 10명 중 8명에 해당하는 83.8%가 ‘인맥은 낙하산이 아닌 능력’으로 여기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인맥에 대한 의식이 ‘연줄’ ‘빽’ 등의 부정적인 시각에서 ‘인맥도 능력’이라는 긍정적 개념으로 변경했음을 확인시켜주는 결과다.
또한 인맥을 통해 들어갔다고 해서 주변의 시선도 예전처럼 따갑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주변의 시선에 대해 ‘편견 없이 대해준다’는 답변이 75.8%로 가장 높았고, ‘능력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폄하’하는 경우는 10%에 그쳤다. 오히려 연줄을 같이 타자고 친근하게 대하는 경우(4.1%)도 있었다.
설문조사를 하나 더 인용하면 취업사이트 파워잡(powerjob.co.kr)과 대학문화 매거진 씽굿(ithinkgood.co.kr)의 조사 또한 흥미롭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지수’를 물었더니 NQ(네트워크, 공존, 인맥지수)가 SQ(사회성지수) CQ(창조성지수) IQ(지능지수) 등을 앞서 1위(37.8%)로 꼽혔다.
상시 구조조정 체계에서 유용한 취업 수단
인크루트 측은 “인맥에 대한 의식 변화는 취업난과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좁은 취업문에다 상시 구조조정 체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언제든 일자리를 구할 자세를 취해야 하는데 인맥은 이 같은 상황에서 가장 유용한 취업 수단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취업난 속에서 직장인 절반이상(51.3%)이 인맥을 통해 평균 2.2회 취업부탁을 한 적이 있으며 인맥을 통한 취업 횟수도 평균 1.6회로 나타났다. 주목할만한 점은 인맥을 통한 취업제의가 65.8%로 취업부탁보다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인크루트 이광석 대표는 “아는 사람에게 취업을 부탁하는 경우보다 취업제의를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평소 인맥을 잘 관리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라며 “많은 사람을 알아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 사람에게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시키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이 대목은 인맥의 개념 변화 또한 거듭 확인시켜준다. 과거 인맥은 학연 지연 등으로 저절로 주어진, ‘그저 아는 사람’에 불과했지만 현대사회에서 인맥은 부단한 자기계발로 종합적 평가에 통과하고 타인에게 인정받는, ‘노력해서 얻어내는 능력’이 된 것이다.
5회 정도 인맥을 통해 취업, 직장을 단계별로 업그레이드해 온 성주영(32 여 컴퓨터 프로그래머) 씨는 “인맥은 업무 수행 능력 외에도 사회성과 위기대처능력 등 개인 자질을 다각도로 평가 받은 결과”라고 주장했다. 성씨는 “인맥을 통한 취업은 직장과 나의 궁합을 더 많이 고려하기 때문에 성공 확률이 높다. 기업의 공개 채용은 지식 등 획일적 능력만 평가하는데 현장에서 필요한 능력은 이력서나 토익 점수 외에 무수히 많다. 그 다양한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주변 사람들이고 그래서 그 사람들은 내게 알맞은 직장을 적절하게 찾아낸다”며, “그저 아는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능력한 사람을 취직시켜 주는 시대는 지났다”고 강조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과정 NQ의 힘 입증
‘프로페셔널의 숨겨진 2%’의 저자 서미영 씨는 “네트워크 시대의 신 인맥은 평등하게 서로의 정보를 각자 이익을 위해 교환한다. 이른바 윈-윈 전략이다”며,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과정에는 바로 이런 NQ의 힘이 고스란히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지연이나 학연은 물론 돈도 없는 한 정치인이 같은 당 주류 정치인들에게 조차 대접받지 못했는데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네트워크형 평등구조라는 NQ의 힘이 고스란히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씨는 이처럼 인맥이 중요해진 배경으로 인터넷의 등장을 꼽았다. 정보가 소수에게 독점됐던 시대에는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는가’가 능력이자 곧 성공의 관건이었다. 정보를 독점한 소수를 중심으로 이른바 ‘연줄’을 대보고자 하는 다수들이 서열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은 정보의 해체를 가져왔다. 정보의 축적이 무의미해지면서 관계는 평등해졌다. 정보의 적절한 교류와 교환이 중요한 가치가 된 것이다.
소수의 ‘두뇌’가 이끌어가던 관료적 환경에서 다수가 머리를 맞대고 일을 처리하는 민주적 조직으로 사회 체제가 바뀐 것도 휴먼 네트워크의 중요성이 부각된 주요 원인이다. 제임스 서로위키의 사회과학서 ‘대중의 지혜’를 보면, 문제해결 방안을 찾거나 일을 추진할 때 소수의 엘리트 조직보다 평범한 대중의 조직이 우수한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월등히 높다. ‘성공한 CEO 12인의 아침식사를 활용한 인맥관리’의 저자 허은아 씨는 “우리시대에서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함께 같은 목표를 성취해야 할 일들이 대부분이다. 과거와 달리 한 사람의 능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서로의 능력을 결합시켜 최고의 성과를 나타내는 사례는 무수히 볼 수 있다”며, “어떤 일에 기꺼이 협조를 얻어 낼 수 있는 사람이 인맥이며, 그런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인맥은 단순 정보가 아닌, ‘협업적 정보’를 얻는 수단인 셈이다.
비즈니스로 확장되는 디지털 인맥
현재 온 오프라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인도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cafe.daum.net/indiamovie)의 운영자 정광현(32) 씨는 동호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아예 동호회 운영에 전념했다. 저작권 문제 등으로 수익성은 낮은 아이템이지만 온라인 쇼핑몰도 열었고, 민간 문화원으로 발전할 구상도 세워놓고 있다. 인터넷 동호회가 비즈니스로 연결된 경우다. 정씨는 사업파트너는 물론 배우자까지 동호회를 통해 만났다.
웨딩매니저에 적을 둔 서원애(27) 씨는 학원 대신 ‘웨딩드레스 만들기’ 동호회에 가입했다. 단순한 실력을 넘어 인적 자산도 함께 쌓겠다는 계산이다. 국내 최대 라면 마니아들의 모임 ‘라면천국’(cafe.daum.net/ramyunheaven) 또한 5만여명의 거대 회원을 거느리면서 동호회 보유정보를 바탕으로 ‘비법천하 라면천국’(범조사, 2001년)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나이를 묻지 않고 출신 지역을 따지지 않는 온라인 공간은 새로운 휴먼 네트워크를 창출하는 최적의 환경일 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사업의 장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신세대들은 인터넷을 인맥의 확장과 관리의 절대적 수단으로 사용한다. 인터넷 초창기 아이러브스쿨 (iloveschool.co.kr)은 잊혀졌던 학연을 재발견했고, 각종 커뮤니티들은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해냈다. 인맥을 전면에 내세운 커뮤니티들도 각광받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인맥 확장을 위한 파티가 속속 개최되고, 비즈니스 인맥 사이트도 생겨났다.
물론 많은 사람을 단지 안다고 인맥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듯 대형 커뮤니티에 가입한다고 튼튼한 인맥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 나누고 협력의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윈-윈’의 바탕이 마련되는 것이 중요하다. 쉽게 만들 수 있지만 그만큼 쉽게 사라지기 쉬운 디지털 인맥에서 적극적 자세와 ‘먼저 주는’ 능동적 참여는 네트워크 형성의 핵심적 조건인 것이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