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출산, 여배우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던 아름다움의 상실 등으로 인해 안방에서 사라져갔던 스타들이 최근 잇달아 복귀하고 있어 화제다. 다시 안방으로 돌아와 배우인생 제2의 ‘봄날’을 펼쳐 보이고 있는 고현정을 비롯, 결혼으로 연예계를 떠났던 이요원도 컴백을 준비 중이고, 이혜영 나영희 등의 중견 배우들 또한 감성적 청춘물 속에서 존재감을 빛냈다. 이들은 단순한 복귀를 넘어 여배우의 새로운 ‘발견’에게까지 이르게 한다는 면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가장 아름다울 때 사라진 고현정
고현정의 경우 여배우들에게 부러운 존재다. 10년 동안 잊혀지지 않은 ‘만인의 연인’이 됐고, 돌아와서 이토록 열렬한 환영을 받으니 말이다. 고현정이란 배우가 이 같은 행운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의 연기력 또한 큰 역할을 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의 마지막 작품 ‘모래시계’가 국민적 드라마였기 때문이었다. 제임스 딘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가장 아름다울 때 가장 강렬한 기억을 남기고 사라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스타로서 탁월한 감각을 지닌 그녀의 의도된 선택이었을 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녀는 여전한 미모와 또 여전히 변하지 않은, 청순함에 넘어가는 한국인들의 기호를 등에 입고 7080세대를 넘어 10대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 됐다.
이미 멜로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등장하기에는 너무 늙어버린 여배우들의 복귀는 고현정과는 사뭇 다르다. ‘말죽거리 잔혹사’에 등장한 김부선은 은퇴한 늙은 여배우에 대한 이미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에로의 여신이었던 김부선은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떡볶이 집의 인심 좋은 글래머 주인으로 등장한다. 그녀에 대한 과거 이미지는 초라해진 버전으로 반복되는 셈이다.
추억의 스타들 화려한 재기,
‘엄마’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이 같은 대중의, 혹은 제작자의 인식에도 불구하고 최근 안방에 복귀한 중견 배우들은 남다른 카리스마를 과시하고 있다. 15년 만에 KBS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통해 브라운관에 출연한 이혜영은 나르시즘에 젖은 과거의 여배우이자 모성애를 지닌 비운의 여성인 오들희 역을 훌륭해 소화해 냈다는 찬사를 얻었다. 물론, ‘오버된’ 여배우 캐릭터는 이혜영에 대한 스테레오타입화된 이미지이긴 했지만 그녀의 연기는 ‘고수의 내공’을 보여주기 충분했다.
‘매춘’으로 기억되는 ‘80년대 배우’ 나영희도 최근 MBC 드라마 ‘슬픈연가’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작년 SBS ‘백수탈출’로 안방에 다시 나타났던 그녀는 ‘슬픈연가’에서 80년대 바로 그 이미지-시련 속에서 잡초처럼 살아온 여성-를 재현해내며 놀라운 존재감을 보여줬다. ‘슬픈연가’ 첫방 이후 게시판을 뒤덮은 찬사 중 절대 다수는 나영희의 연기력이었다.
사실 한국은 여배우들의 나이에 민감하다. 여배우를 아름다움을 즐기는 소모품으로 여기는 풍토도 그렇지만 여성 캐릭터가 워낙 다양하지 못하다보니 중년 여배우가 맡을 만한 배역은 고작 청춘 주인공들의 엄마 정도가 전부였다. 최근 여배우들의 잇단 재기는 이 같은 연예계 풍토의 변화를 말해준다. 이미숙이 복귀해 연하의 남성과 멜로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사회적 가치관의 변화가 결정적 포인트였던 것이다. 문화계 전반에 거세게 일고 있는 복고 바람 또한 여배우들을 안방에 돌아오게 중요한 배경이 되고 있다. 10대들조차 중견 배우들의 옛날 사진을 수집하며 ‘그들의 재발견’에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의 캐릭터는 아직 ‘엄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아쉬움이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