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준 전 부총리 겸 교육인적부장관이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지난 5일 임명장을 받은지 사흘째인 7일 전격적으로 사퇴서를 제출, 9일 오후 공식 처리됐다. 또 김우식 비서실장과 정찬용 인사수석 등 청와대 인사추천회의 참석멤버 전원이 같은날 이기준 교육부총리의 인사문제에 책임을 지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하고 나섰다.
이와함께 노무현 대통령은 이 교육부총리 임명과 사퇴 파문을 놓고 물의를 일으킨데 대해 국민에게 공개 사과하고 인사시스템 전반에 대한 재점검과 개선책 마련을 지시하는 등 참여정부가 집권 3기를 맞아 최대 혼란을 맞고 있다.
발탁배경 놓고 논란 일어
청와대 관계자는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에 대해 “다소 흠이 있지만 대학교육 개혁을 통한 인재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고 판단했다”며“대학개혁의 전문성, 추진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도덕성 시비가 예상됐음에도 불구하고 발탁한 것에 대해 국민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노 대통령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해찬 총리와 김우식 비서실장이 개인적인 인연으로 인해 ‘인사검증 시스템’을 무시한체 이기준 전 부총리 기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됐었다. 실제로 이기준 전 부총리는 지난 98년부터 2002년까지 서울대 총장을 맡고 있으면서 당시 교육부를 이끌었던 이해찬 총리와 대학개혁 정책에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이해찬 총리가 이기준 전 부총리의 역량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는 시각에 대해서는 반론을 제기하지 않고 있는 점도 발탁배경에 의혹을 더하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이 이번 인사를 결정하기 전에 이해찬 총리와 3차례 심도있는 의견을 교환했다는 사실도 그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여기에다 김우식 실장과 이기준 전 부총리가 공교롭게도 연세대와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61년도에 졸업했으며 이해찬 총리가 교육부장관으로 재임시 각각 모교의 총장을 지냈던 점이 특이하다. 이후 이들은 시차를 약간 두거나 같은 시기에 한국공학기술학회 회장,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이나 부회장, 한국공학교육인증원 이사장이나 원장을 각기 역임했을 뿐 아니라 지난 98년에는 LG칼텍스가스와 LG화학 사외이사를 지낸 것 등이 이번 인사에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 모으고 있다.
추가 검증에 소홀 지적받아
청와대가 도덕성을 생명으로 하는 교육계의 수장을 임명하면서 추가 검증을 소홀히 하는 등 ‘인사 검증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제로 한때 병역기피 의혹까지 샀던 이기준 전 부총리 장남이 한국국적을 포기한 지 한달이 채 지나지 않은 2001년 10월 경기 수원에 신축 건물을 취득한 사실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확인됐다.
청와대 관계자가 이기준 전 부총리에 대해 “서울대 총장까지 지냈는데 그동안 검증은 받을 만 큼 받아온 것 아니겠느냐”고 의견을 피력했다는 것은 스스로가 추가 검증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을 시인하는 꼴이라는 것이다. 이와함께 청와대 김종민 대변인은 “인사청문 대상이 아니어서 본인(이기준 전 부총리)과 부인만을 대상으로 검증했기 때문에 직계존비속의 재산은 알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다 검증을 총지휘하는 박정규 민정수석은 “3일동안 30명을 검증했다”면서 시간제약상 밀도있는 검증이 쉽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등 사실상 인사검증의 부실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줬다.
열린우리당도 이번 인사에서 이기준 전 부총리와 그 가족의 도덕성 문제를 사전에 걸러내지 못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핵심 중진의원은 “이번 사태는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라며“청와대의 인사시스템을 재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청와대 인사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난만큼 이번 일을 계기로 인사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무위원 인사 청문회 실시
노무현 대통령이 인사시스템 보안을 지시한 것도 추가 검증 소홀 등의 지적을 감안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문희상 비서실장 유인태 정무수석 문재인 민정수석의 1기 비서실 체제때는 수석들의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검증절차가 제대로 이뤄졌지만 지금은 활발하게 토론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일단 국회 상임위의 청문회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국세청장을 대상으로 하는 청문회처럼 동의를 구하지는 않지만 하루정도 관련 상임위의 검증절차라는 ‘통과의례’를 거치는 방식이다. 물론 이경우도 당정협의와 함께 법개정 여부가 우선돼야 한다. 이병완 홍보수석은 “동의적 청문회가 아니라 투명하고 공정한 인사를 하자는게 대통령의 뜻”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높은 도덕성’을 겸비한 교육부 수장에 대한 선임이 우선돼야 한다는게 교육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전에도 몇몇 교육부 장관이 비슷한 문제로 정책을 수행하기도 전에 수장에서 물러났던 것만 봐도 사전 검증절차를 철저히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계 관계자는 “교육정책의 본질과 관계없이 이념 논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 곳이 교육계인데 이를 수습하고 봉합하려면 최소한 교육부총리는 이 문제에서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통합위해 김실장 유임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김우식 비서실장과 박정규 민정수석, 정찬용 인사수석 등 인사추천회의 참석멤버 전원이 지난 9일 이기준 전 총리의 인사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의를 나타낸 것에 대해 박정규 민정수석과 정찬용 인사수석의 사표만 수리하고 김우식 실장 등의 사표는 반려했다. 노 대통령은 민정수석과 인사수석의 사표 수리 시기에 대해서도 “연초에 할일이 많고 후임 인선도 준비가 안된 상태”라면서 수리 시한은 시간을 두고 하겠다“고 밝혀, 사표 수리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음을 암시하면서도 이번 인사문제를 마무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이기준 전 부총리의 도덕성 시비로 인해 김우식 비서실장까지 도덕성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김 실장이 경질될 경우 보수진영과의 대화채널에 상당한 차질이 예상돼 당분간 유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 실장은 청와대 인사들가운데 드물게 재계와 보수언론 등에 두터운 인맥을 구축하고 있으며 노 대통령이 역점을 두고 있는 국민통합을 위한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그동안 재계 등과 물밑접촉을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정부여권과 재계는 시민단체인 반부패국민연대가 추진하는 ‘투명사회협약’ 제안을 계기로 과거 불법대선자금이나 정치자금에 연루된 정치권과 재계 인사들을 상대로 오는 2월말게 일괄 사면복권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재계 등은 이같은 사면에 따른 국민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부행위를 대폭 늘리는 방안 등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민철기자 chull@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