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퇴출, 실업자 100만시대
52개 부실기업 퇴출사태, 살얼음판 월급쟁이들의 삶터
11월3일 은행권의 기업판정에 따라 52개의 부실기업이 퇴출조치됐다. 삼성상용차 등 18개기업이 청산되고, 대한통운·우방 등 11개기업이 법정관리조치 됐으며 대우자동차 고합 등은 매각, 현대건설과 쌍용양회는 조건부 회생의 길을걷게될 듯 하다. 청산·합병·법정관리·매각… 듣기에도 섬뜩한 단어들이 의미하는건 곧바로 기업정리와 대량실업에 모아진다.
퇴출, 실업, 실직자 행렬…
“이번 조치로 2만8천여명 정도의 실직자가 추가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이에따라 금년 4/4분기 실업률은 3.9%, 실업자수는 85만명대, 연평균으로는 4.1%에 90만명 수준을 기록할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 강순희 연구원의 지적은 밝지않다. 구조조정이 제대로 마무리되어 경제에 선순환의 효과를 가져올 경우 내년에는 실업률 3.5%에 실업자수도 79만명 정도로 낮아질 전망이라지만 “당장 실직가능성이 높은 건설일용직 등 취약계층 가운데 고용보험 등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한시적 생계보호 대책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연계 또는 별도의 조치로 특별 강구될 필요가 있다”는게 연구원측의 덧붙인 지적이다.
훤히 들여다 보이는 실업자 100만시대. 정부의 이번 퇴출결정은 시장의 신뢰회복이라는 명분아래 충격을 흡수하면서까지라도 부실대기업을 과감히 퇴출시킨다는 여론에 충실했던 조치였지만 냉정한 ‘시장의 요구’앞에 내몰려진 실직자들의 충격앞에선 정부도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 할 것이란 얘기다.
정부와 채권단이 총 287개의 부실징후 기업을 대상으로 퇴출과 지원여부를 평가해 내놓은 ‘살생부’인 11.3 기업퇴출은 실업자 100만시대를 예고하는 것이어서 더욱 살벌한게 사실이지만 정작 문제는 이제부터다. 정부는 이번 11.3조치를 통해 일시적으로 유동성이 부족하지만 은행의 한차례 지원으로 회생이 가능한 기업 28개를 분류하고, 69개사에 대해서는 자금난을 겪고있지만 사업전망상 은행이 책임지고 회생시키기로 결정했으며, 또 136개 기업은 독자생존이 가능한 정상기업으로 분류조치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번 조치가 주목받는 이유는 퇴출이후의 사후수습 여부에 모아진다. 지난 98년6월 1차퇴출에서 살아남았던 대우나 동아건설이 과연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가를 직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채권단의 자세전환을 요구하고 나선 여론의 근거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살리기로 합의한 대우나 동아에 대해 보여준 채권단의 태도는 경쟁적인 자금회수 이외엔 아무것도 없었고, 결과는 이번 11.3 2차퇴출로 이어졌다. 채권단의 사고전환과 함께 협력업체들의 연쇄도산을 막기위한 정부의 유동성 지원대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도 이때문이다.
근본적인 실업대책 강구 정부가 나서야
“대대적인 감원바람이 또 불겠죠. 벌써 몇 개월째 월급도 못받고 있으니 불과 1~2년전에도 동료가 잘릴지 내가 잘릴지 전전긍긍 했는데…” 제2의 실업사태를 몸으로 절감하는 월급쟁이들의 한탄은 뼈에 사무친다. 기업퇴출은 어찌됐든 잘한 일인데 한겨울 거리로 내몰릴 해고상태를 떠올리니 절로 탄성이 나올뿐이다. 해고노동자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실업대책 강구가 화두로 떠오르는건 당연하다.
퇴출판정에 따른 후유증을 얼마나 빨리, 효과적으로 극복해 나갈것인가. 정부는 이번 2차 기업퇴출이 1차와 달리 ‘원칙대로’였음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실업의 문제, 실직의 문제에 있어서는 어떨까.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의 지적은 “현재 실직자들이 고용보험에 의한 실업급여를 받는정도, 혹은 공공근로에 참여하는 정도이외에 다른 사회보장제도 혜택을 기대하는건 연목구어(緣木求魚)”라는 목소리가 높다. “사회보장 문제를 간과하고 있는 정부를 상대로 한 사회보장 예산확보 운동을 전개할 것”이라는 시민단체의 지적이 실업자 100만시대를 더욱 절감케 할 뿐이다.
현은미 기자 emhyun@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