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단합과 혁신’을 위한 두 마리 토끼를 잡기위해 ‘홍준표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박 대표는 지난달 3~4일 충북 제천에서 열린 의원연찬회에서 당 개혁을 위해 한시적으로 설치키로 한 혁신위원장에 3선의 홍준표 의원을 내정했다. 박 대표는 특히 지난달 18일 대구시민회관 광장에서 열린 대구지하철 참사 2주기 추모식 참석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선(先) 당개혁 후(後) 대권경쟁”을 강조한 바 있어 이번 홍준표 의원의 혁신위원장 내정으로 향후 한나라당 움직임에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그러나 홍 의원이 그동안 철저히 비주류의 길을 걸어 왔을 뿐 아니라 지난 1월23일엔 박정희 대통령 시절 과거사 문제에 대해 “한나라당과 박 대표가 일체일 수 없다”며 박 대표의 홀로서기를 요구해 파문을 일으킬 정도의 반(反)박그룹의 선두주자였었다. 이에따라 당내 안팎에서는 한시적인 혁신위원회의 활동에는 홍 의원의 뜻을 펼치기에는 한계가 있어 부작용도 예상됨에 따라 박 대표와 홍 의원의 관계가 오월동주(吳越同舟)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2007 대선승리에 초점 맞춰
박 대표가 혁신위원장에 홍 의원을 내정한 것은 방향타를 잃고 사분오열돼가는 한나라당을 추슬러나가면서 자신과 정치적 행보를 같이할 동지를 구할 수 있는 시간벌기용 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실제로 박 대표는 지난 1월 말까지 한나라당의 당명을 개정하려 했으나 비주류의 반발에 부딪쳐 뜻을 이루지 못했었다. 이에따라 박 대표는 당초 자신이 직접 혁신위원장직에, 실무작업은 김무성 사무총장에 맡기는 등 친(親)박세력을 중심으로 당의 탈바꿈을 이뤄내겠다는 의도를 여러차례 내비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 대표의 리더십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소장파를 비롯, 반(反)박그룹의 거센 반발로 지난 의원연찬회에서 혁신위윈회 구성을 의결한 후 보름여동안 혁신위 구성조차 못하게 되는 현실에 부딪치게 되자 이들을 잠재우기 위해 어쩔수 없이 ‘홍준표 카드’를 빼들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홍준표 카드’를 이용해 비주류와 반(反)박그룹을 감싸 안으며 당내 계파간의 갈등을 수습하고 동시에 당 변화에도 적극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박 대표는 ‘홍준표 카드’의 활용 여부에 따라 오는 2007년 대권까지 넘볼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고 있어 박 대표측으로서는 잘못되도 그리 손해볼 것은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박 대표측이 홍 의원에 대한 계산과는 관계없이 홍 의원의 당내 입지나 이력이 그렇게 녹녹치 않다는데 있다. 즉 홍 의원의 향후 행보에 따라 한나라당이 너덜날수도 있을 뿐 아니라 만일 예기치 않은 결과가 발생할 경우 이에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박 대표측이 질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홍 의원은 지난달 20일 “박근혜 대표로부터 혁신위원장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고 며칠 고민하다 수락했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자신의 변신에 대해 “가까운 동료 의원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대통령 선거체제에 걸맞게 당을 바꿔야 하는 상황에서 ‘나 몰라라’ 할 순 없는 것 아니냐”며“박 대표도 전권을 주겠다고 한 만 큼 당 쇄신에 전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 의원은 혁신위를 단순한 자문기구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전권 부여를 박 대표에게 요구한 만 큼 그에 걸맞게 당을 바꿔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홍 의원은 지난해 8월 호남연찬회장에서 이재오 김문수 의원과 일부 영남강경파의 ‘박 대표 유신사과와 과거사 청산’ 공격에 박 대표가 ‘탈당하라’고 맞부딪친 것과 함께 홍 의원의 ‘박 대표 홀로서기’가 맥을 같이 할 정도로 박 대표의 반대에 서 있었다. 여기에다 당내 대권 경쟁자인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도지사와는 지난 1999년 미국 워싱턴에서의 연수를 계기로 가깝게 지내고 있다.
이같은 연유로 인해 홍 의원이 마음 먹기에 따라 향후 대권경쟁에까지 영향이 미칠수 있어 벌써부터 걱정하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홍 의원은 자신을 발탁한 배경에 대해 “박 대표 우호세력에게 개혁을 직접 맡기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고 말했으며 “박 대표와 이명박 시장 손학규 경기도지사의 경쟁은 국민적 관심을 모으는 흥행카드가 될 것”이라고 설명, 일부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는 ‘특정인 흔들기’에 대해 일축했다.
중도세력과 연대가 우선돼야
홍 의원은 향후 혁신위 활동에 대해 오는 2007년 대선 승리에 초점을 맞춰 당 조직 개편과 당헌·당규 개정, 노선 재정립, 당권·대권후보 분리 등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홍 의원은 “당 혁신위는 오래 끌수 없기 때문에 늦어도 6~7월까지는 방안을 마련해 실천에 옮겨야 한다”며 혁신위 구성에 대해서도 현재 당 정책위가 교수 출신 중심으로 구성돼 현실과 안맞는 대안을 많이 내놓고 있어 “당직자 중심보다는 외부 인사도 포함하는 방안도 구상중에 있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홍 의원이 자신의 구상대로 대안을 성공적으로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중도세력과의 연대가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홍 의원은 지난해 쟁점법안 가운데 하나인 국보법 폐지 문제와 관련, “열린우리당의 국보법 폐지안 및 형법 보완도 대안이고, 여당안에 동의하진 않지만 이를 무작정 반대해선 안된다”며 “우리도 대안을 갖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보법 소관 상임위인 법사위에 들어가서 토론을 하고, 공청회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도성향 의원 모임인 ‘국민생각’ 대표인 맹형규 의원도 쟁점법안 등에 관해 홍 의원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당내 강경보수세력에 대한 자제를 촉구하고 나서고 있어 중도세력과의 관계유지에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함께 홍 의원이 중도세력 뿐 아니라 소장파와 재야파들까지의 협력 관계를 유지할 경우 현재 한나라당에 깊숙이 박혀있는 ‘보수’ 색깔을 지우는 것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정민철기자 chull@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