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 북한의 6자 회담 불참 및 핵보유 선언 이후 미국과 일본, 중국 등 관련국의 회담복귀 요구 움직임이 본격화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같은달 20일 서울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에서 가진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남북간 대화가 잘 안되니 필요하다면 꽉 막힌 관계를 풀기 위해 역할을 할 수 있다”며“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초청할 경우 북한을 방문해 여러 현안들을 중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참여정부 출범후 그동안 여러차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북 특사론을 제기해 왔던 점을 비추어 볼 때 이번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은 경직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2000년 6월14일 밤 평양에서 북한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 5개항에 걸친 역사적인 남북공동선언문에 합의하고 서명함으로써 반세기 이상의 한반도 분단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공했다. 당시 두 정상이 자주적인 통일원칙을 천명하고 양측의 통일방안에 대한 공통성을 인정한 부분은 대결과 반목의 남북관계가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전환하는 신호탄으로 작용하기에 충분했다.
이후 진행된 남북한 화해무드는 △남북철도 도로 연결사업 △개성공단 건설 △금강산 관광사업 등 3대 경제협력사업과 함께 ‘독도 수호’를 위한 남북한 모바일게임 공동개발, 용천역 폭발사고 지원, 북한 문화유적 유네스코 등재 등을 위한 민간교류까지 광범위하게 확대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같은 공로로 인해 2000년 12월11일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후 지속적인 햇볕정책을 펼치게 되며 정권을 이어받은 노무현 정부 역시 대북 강경책보다는 유화책에 무게중심을 두게되는 현실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지난해 쟁점법안 가운데 하나인 국보법 폐지와 관련된 법안을 상정하기에 이르렀으며 이에따른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논란을 일으키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미,책임론 중,불확실성도 한몫
이같은 사실에 비추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번 방북관련 발언은 결자해지의 성격이 짙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김 전 대통령은 최근 불거진 북한의 6자 회담 불참과 핵보유 선언 등이 자신의 햇볕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세력이 아직도 상당부분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과의 만남 등으로 인한 설득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기에다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으로 인한 노벨평화상 수상이 국민들의 고통을 외면한 자신만의 명예로 보는 시각도 부담스럽게 작용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의 초청으로 두 번째 만남이 성사될 경우 지난 2000년 6월 당시 김 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서명한 남북한 공동성언문에 명시된 남북정상회담의 정례화를 촉구하는 의견도 제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북의 답방 또는 제2차 남북한 정상회담을 성사시킬 경우 남북한 긴장관계는 쉽게 해결할수도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듯 하다.
김 전 대통령은 이와함께 지난달 17일 최근 대표직에 다시 선출된 민주당 한화갑 대표와 당 지도부의 예방을 받고 “북한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핵을 포기하고 검증받겠다는데 미국이 왜 안전보장을 확실히 안 해 주느냐’는 것”이라며“그것은 일리가 있는 말이고 해결책은 그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지난해 11월 노무현 대통령이 “북핵이 자위수단이란 북한의 주장은 일리 있는 측면이 있다”고 말한 것과 의미를 같이하고 있지만 이는 곧 북한의 핵개발 포기보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체제보장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또 김 전 대통령은 “북한은 왜 정당한 주장을 하면서 6자회담을 외면하느냐”며“미국과 일본의 강경파에게 큰 구실을 주는 등 주장은 옳은데 방법은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김 전 대통령은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과의 만남을 통해 미국의 책임론을 거론하는 한편 ‘6자회담에 참여한 북의 주장을 강조’하는 북한 달래기에 나서, 햇볕정책에 대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핵보유 선언을 한 북한을 다시 6자회담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는 것은 중국밖에 없다는 주변국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직접 북의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려는 데는 중국의 대북 관계가 예전처럼 긴밀하지 않으며 중국이 미국의 요구대로 언제까지 매파노릇만 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당초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의 방북은 북한과 정당간 정기 교류 차원에서 예정돼 있었던 것이었으나 북한의 돌발적인 선언 이후 그 배경을 파악하고 회담 복귀를 설득하기 위한 것으로 성격이 바뀐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북-중 관계가 지난 96년 북한의 큰 수해를 기점으로 서서히 냉각되고 있으며 과거 혈맹관계라는 이유로 간신히 끈만 유지되고 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한편 뉴
욕타임스가 중국인 전문가의 말을 인용, “중국이 북에 대한 원조를 중단하면 한반도는 남한에 의해 통일 될 것이고, 미국은 통일된 한반도 북부에 미군기지를 둘 것”이라고 말한뒤 이것은 중국에게는 거대한 재앙이 될 것이라는 등 중국의 속내를 분석하기도 했다.
정치적 계산이란 의견도 제기
김 전 대통령의 방북발언과 관련해 일부 정치인들은 노벨평화상 수상자다운 거시적인 방북이 아니라 자신과 여당의 입지 확보 등을 위한 정치적인 계산에서 고려됐다는 의혹의 눈초리를 감추지 않고 있다. 노무현 정부 출범후 여당내 정치권에서는 노 대통령의 입지 강화와 남북한 긴장 완화를 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북특사론이 여러차례 거론 된 바 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측에서는 햇볕정책을 수행시 보좌했던 박지원 전 문화공보부 장관, 임동원 전 국정원장, 권노갑 민주당 최고위원 등 측근들이 고초를 겪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했다는 후문이 전해지기도 했다. 이로인해 김 전 대통령의 이번 방북발언은 시민단체을 중심으로 정치와 경제계 등 범국민적 차원에서 펼쳐지고 있는 반부패사회협약체결을 계기로 한 이들의 사면복권 문제 해결에도 한몫을 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다 김 전 대통령의 방북이 성사될 경우 오는 4월30일 예정으로 있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는 물론이고 향후 정국운영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어 야당 등 일부 정치권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민철기자 chull@sisa-news.com